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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와 졸업사진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다.

by 권호원

사진 찍는것과 찍히는 것, 굳이 고르라면 찍는 것을 좀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사진을 잘 찍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둘 중 고르라면 찍히는 것이 더 별로다. 그 이유는 어색한 자세나 포즈, 표정, 그리고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이 말 그대로 ‘어색하기’ 때문이다. 웃는 모습도 어색하고, 왜 사진에 나오는 내 앞머리는 이 모양인지, 왼쪽 모습보다 오른쪽 모습이 더 어색하기도 하고, 얼굴엔 왜 이리 점이 많은지. 내가 나온 사진은 불만투성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게 보편화되고 나선 곧바로 지운다. 아직도 셀카를 찍고나선 화들짝 놀란다. 자세와 표정에 자신이 없다. 얼굴에도 자신이 없다. 왜 그럴까? 예전 앨범을 펼쳐보자.

유치원 졸업사진은 나쁘지 않다. 점잖게 잘 나왔다. 7살 어린이가 사각모를 쓰고 약간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졸업사진으로서는 인생사진이다. 국민학교 졸업사진을 볼까? 사춘기가 일찍 온 것인가. 반항이 빨랐던 것인가. 시대를 앞서갔던 것인가. 인자하게 서계신 할머니 옆에 키가 삐쭉한 졸업생은, 슬리퍼를 신고 있는게 아닌가. 빨간색 점퍼, 그 안쪽에는 아래위 트레이닝 복이다. 아뿔싸~! (부끄러움 (1990년 열두살, 2017년 서른아홉살)에 나오는 그 트레이닝복이다.) 5학년 1학기때 작은 아버지가 형에게 준 옷을, 6학년이 된 내가 물려받았다. 형도 키가 자랐으므로 당연히 내 차지였는데,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얻어낸 옷이라서 트레이닝이 짧아질때까지 입은것 같다. 발목 복숭아 뼈에 간당간당하게 내려가던 트레이닝복이 복숭아뼈 3cm 위까지 올라올 때까지 꾸역꾸역 입다가, 결국 졸업식 복장으로 등장했다. 이 왠 난리인가. 졸업식을 맞아, 할머니는 ‘졸업식 할머니 복장 - 단아한 스웨터와 목도리’ 엄마도 졸업식 복장 ‘상하의가 잘 어울리는 콤비 정장’ 그런데 가운데 졸업을 맞는 국민학생은,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이라니.. 이번을 계기로 잊자. 물론, 졸업사진은 아버지 집, 우리 가족 앨범에 떡하니 자리잡혀 있고, 사진옆에 메모까지 적혀있다. 아버지가 해놓으신 메모인데다 그 자리에서 빠진다면 ‘조선왕조 실록’을 훼손하는 일이므로, 이제는 예전 흑역사를 없애는 일은 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기억도 나의 기억이고, 우리 가족의 역사이니까 내가 함부로 손댈수 없다. 다만 아직 우리 아이들이 별다른 언급이 없는걸 보니, 보고나서 잊어버렸거나 아직 확인하지 못한 듯 하다. 아무튼 나의 국민학교 졸업식 사진은 굴욕 그 자체다.

중학교 졸업사진은 나쁘지 않은듯하다. 머피의 법칙인가, 졸업앨범의 행방이 묘연하다. 중학생은 어린이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라고 하지만, 내 모습은 자신있었다. 국민학교 졸업은 3학기를 보낸 전학생 (5학년 2학기 ~ 6학년)이었으므로 조금 위축된 학창생활이었다. 그러, 중학교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자신있고 당당하게 보냈다.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조금 이른 사춘기도 접한것 같고, 열심히 공부했고, 최선을 다해 운동도 했고, 할머니를 여읜 일도 당하는 등 생로병사의 상당부분을 겪은 시기라고 자부한다. 자연스레 중학교는 패스~ 그러나 할말이 없지 않다. 스포츠 머리와 교복이 있긴 했지만, 앞머리 단속이 심하지 않던 시기였다. 어떻게 하면 티나지 않게 앞머리를 조금 더 길러볼까,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건데, 왜 그리 앞머리에는 집착을 했을까. 휴가나 외출 명령을 받고 나온 군인들의 모습을 길거리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군인의 모습은 언제나 멋지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유니폼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다. 유니폼 자체가 주는 느낌은 그 조직을 이야기해준다. 군대가 좋고 나쁨을 떠나, 휴가 나오는 군인들은 사춘기 학생 이상으로 신경을 쓴다. 구두(전투화)는 더럽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광을 낸다. 군복(전투복)은 더하다. 다림질에 많은 신경을 쓴다. 구김만 없으면 될것을, 칼 주름에다 어깨와 등, 옷깃에 잔뜩 힘을 준다. 무엇이라도 심지어, 계급에 따라 각을 잡을 수 있는 종류와 갯수, 옷깃의 모양 등이 알게모르게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등병은 옷깃을 빳빳하게 접을 수 없다!)

중학교 졸업사진은 문제가 없었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이후로 앞머리 정리가 걱정이었다. 조금더 길게 앞머리를 길러보고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반곱슬 머리기 때문에 무언가 어색했다.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고나면 촉촉하게 물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스타일링이 됐지만, 물기가 마르면 앞머리는 원하는 모양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집에서 헤어 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나뿐이었다. 누나 역시 젖은 머리를 말리는 용도였다. 가끔 엄마가 사용하는 헤어로션 같은것으로 앞머리를 넘겨보았지만, 그 역시도 여의치 않았다.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머리를 깨끗하게 잘 감고, 잘 말리는 것이었다. 헤어로션은 영양분 공급하는 것일뿐 반곱슬을 해결책은 아니었다. 외출하기전, 머리름 감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나서, 엄마의 헤어제품을 머리에 바를때까지는 괜찮다. 옷을 입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보면 그때야 비로서 완전히 마른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희한한’ 모습으로 꼬여버린다. 엄마는 이해해주셨지만, 아버지는 염색, 파마를 비롯해서 머리 모양에 신경쓰는 것은 ‘금기사항’에 가까웠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것은 요즘에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청소년기는 먼저 허락을 받고 행동해야 한다. 염색해도 괜찮냐 물어볼수도 있었지만, 가정내 묘한 분위기에서 쉽지 않는 시도였다. 왜 반곱슬머리를 주셨냐고 엄마에게 짜증낸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저 염색이랑 스트레이트 파마를 해도 될까요?’라고 허락받을 용기는 없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고등학교 1학년 전후로 키가 완성이 된다. 중학교때 교복은 2학년 기준으로 맞추다보니, 교복이 헐렁한 애들은 1학년이고, 교복이 꽉 끼거나 다리가 짧은 교복을 입은 친구들은 3학년이라 해도 그냥 믿는다. 그러나 고등학생은 이미 키가 다 자랐기 때문에 교복도 제법 잘 어울린다. 곤색 재킷과 같은 색상의 바지, 흰색 와이셔처, 곤색 넥타이까지 착용하다보니, 체형이 괜찮은 친구들은 제법 모델 같은 애들도 있다. 두발도 자율이었다. 너무 길지만 않고, 형형 색색만 아니라면 가벼운 수준의 염색도 허용되었다. 선도부 선생님이 계시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걸어서 30분, 자전거를 타면 15분 정도 거리였다. 버스를 타면 4정거장 정도인데, 버스타러 가는데 5분 이상이고 기다리니 차라리 친구들이랑 걸어다니는게 더 편했다. 당시에도 헤어 드라이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침 시간은 늘 바쁘다. 머리감고 세수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린다음, 얼굴에 로션 조금 바르고, 교복 입고 출발이다. 자전거를 타면 너무 좋았다. 시원했다. 시원하게 자전거를 달리면, 자연풍에 기분좋게 마른다. 이마까지 시원하게 넘어가서 그야말로 원하는 스타일이 된다. 내리막이 있었기 때문에 땀도 별로 나지 않았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남자 고등학교였으므로 상관없다. 그치만 외모에 대한 관심은 중학생과는 다르다. 이발소는 가지 않았다. 미용실만 다니게 되었다. 잘 해주는 곳과 아닌 곳이 판가름 나는 상황까지 이른다. 2000원 더 비싸도 커트 기술이 좋은 미용실은 예약까지 동원되는 분위기였다. 마치, 휴가 나온 군인들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휴가 직전 부대내에서 준비하는 마음이랄까. 고등학생은 그저 고등학생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모 신경쓰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시기가 바로 고등학생이다. 앞머리의 일부를 약간 붉은 색으로 염색하는 경우도 있었고, ‘블루블랙’이라는 애매한 색깔로 전체 염색하는 경우도 있다. (블루블랙은 형광등 아래에 있어야 염색했는지 티가 난다) 3학년 여름방학이 지나면 졸업앨범 촬영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은 평생동안 들춰보는 앨범이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쓴다. 염색도 좀 하고, 예쁘게 커트를 하기도 한다.

중학교때부터 불만이었던 나의 앞머리, 반곱슬이라 오른쪽과 왼쪽의 결이 다른 이 앞머리는 어떻할까, 자전거 타고 등교할때는 문제가 없지만, 비오는 장마철이나 추운 겨울은 자전거를 탈 수 없어 앞머리는 지속적으로 걸리적 거릴 뿐이었다. 졸업앨범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바로 곱슬머리를 ‘직모’로 바꿔주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들었다. 이미 여러명이 성공했다. 실패사례가 있다고도 했다. ‘성공과 실패? 이것은 실험인가?’ 성공과 실패가 존재했던 이유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우리끼리’했기 때문이다.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한다면 실패는 없다. 하지만, 비싼 파마약과 고급 기술의 인건비까지 한다면 꽤나 비쌌기 때문에 용돈이 궁한 고등학생에게는 ‘셀프 스트레이트 파마, 스트레이트 파마 품앗이’가 유행했다. 할까 말까 고민했고, 늦 장마가 절정이었고, 졸업앨범 촬영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결정을 해야했다. 평생가는 졸업앨범에서 구불구불한 앞머리? 절대 용납할수 없었다. (실제로 내 머리는 곱슬머리가 아니고, 구불거리지도 않는다. 그냥 시원하게 뻗은 직모가 아니라는 사실, 찰랑거리는 머리결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찰랑거리는 직모는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반곱슬을 많이 부러워한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사실을 공감한다)

결정? 하면 손해, 하지 않아도 손해라고 한다면 ‘그럼 해보자~!’였다. 역시 질풍노도의 청소년답다. 다행히 친구집이 비었고, 파마약도 어렵지 않게 구했다. 급한 성격 때문에, 내가 먼저해보고 싶었다. 머리감고, 적당히 말리고, 파마약을 골고루 펴서 바르고, 1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중화제를 바르고, 잠시뒤 머리를 감으면 고부라진 내머리는 찰랑거리는 직모가 되리란 상상을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너무 웃긴다. 친구 3명이 같이 서로 스트레이트 파마약을 바르고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상상했던 그 때의 파마는 모두에게 좋은 경험만 남긴채 마무리되었다.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라고 했던가. 우리 모두 좋은 경험을 했다. 첫번째 파마 실험 대상이었던 나는 두피 부근까지 지나치게 많은 염색약을 발라서, 너무 곧은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두번째 실험대상인 친구는 중화제를 늦게 하는 바람에 실패, 마지막 친구는, 남은 파마약을 다 사용하는 바람에 염색이 끝난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해졌다. 나는 헤어젤로 고정한 이후 졸업앨범 촬영을 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친구는 미용실에 가서 스포츠 머리로 다시 잘랐다. 나는 좀 긴 머리가 되버렸고, 두친구는 군입대를 앞둔 훈련병 머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 나이에는 뭘 입어도 예뻐, 뭘해도 잘생겼어. 젊음이 제일 멋진 것이야~ 그 시절엔 절대 공감할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여겼다. 나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음이다. 내가 들은 말을 후배들에게 하진 않는다. 다 겪어봐야 한다. 서슴없이 보여주는 중학교 앨범, 지금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국민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앨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들을걸 하는 후회도 있지만, 겪어봐야 한다. 어른들이 시키는데로 옷을 입고, 머리모양을 한다면 ‘추억이나 경험’은 기억나지 않는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한다. 그러니 너희 마음대로 한번 겪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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