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미국 대선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또는 재미있으면서 불안한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한다.
하긴 내가 어릴적부터 듣고 배운 그리고 잠깐이나마 둘러본 적이 있는 미국과 최근 미국이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 미국은 너무 적나라하다.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가 한창 진행될 때마다 여지없이 등장한 성조기를 보면서 미국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다. 성조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국은 6.25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혈맹이자 앞으로도 한국의 장래에 무한한 지지와 협력을 마다않는 나라일게다. 언제나 미국은 우리편이라는 믿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각 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협력하고 갈등하는 행보가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교육의 입장에서는 늘 그렇지않다. 자신들이 봐왔고 믿어왔던 것, 은연중에 몸에 밴 믿음이 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우방이자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주리라는 생각의 발로일 게다.
나 역시 영향력측면에서 그러겠거니 했다. 198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이 무역으로 상호마찰을 일으키면서 그 믿음에 금이 갔다. 우리나라의 상품을 사주고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시장역할을 하던 미국이 한국에 압력을 가해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일이 신기했다. 당시로서는 한미간의 마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게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미국을 상대로 민족주의적 입장을 내비치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제적 측면의 갈등과 긴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현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준거모델이었던게 분명하다. 수많은 유학생이 몰리고 경제적 성공 모델을 찾는 곳이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선거인단을 뽑는 간접선거제도의 승자독식체제로 인해 실제 득표율과 선거인단 수가 불일치해 더 적은 표를 받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도 적절한 시점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TV토론에서 보여주는 정책대결의 모습, 청문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장관의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하는 모습 등을 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정치적 시스템의 안정을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처사였다.
최근들어 많은 것이 깨졌다.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인명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모습도 낯설고 불법이민을 막겠다며 장막을 치는 모습,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모습, TV토론에서 후보들이 보여주는 낯뜨거운 인신공격도 볼썽사나웠다. 최종승자가 거의 결정이 된 상황에서도 불복의 패러다임으로 몰고 가는 현직 대통령의 이해불가한 대응은 내가 아는 미국 혹은 미국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당혹스럽다.
무엇보다 각 후보를 지지하는 진영논리가 극대화하면서 갈등과 불복이 격화되는 모습은 뜻밖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는 진영논리가 저곳에서도 어쩔 수는 없는 걸까.
미국이라는 사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정부를 맞을 것이다. 그 역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씩 우리 정부와 접촉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아무리 시스템을 운운해도 결국 한가지로 귀결된다. 어떤 시스템이든 누가 운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었더라도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되기도 하고 제3세계 변방의 사람들에 조차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4차 산업혁명이니 AI시대니 해도 아직 인간이 여전히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준 듯하다.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이재근/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