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무주 가는 길

[북리뷰]

by 구자룡 Jan 06. 2025

상무주 가는 길, 김홍희, 불광출판사, 2018.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글 이미지 2


<훔치고 싶은 한 문장>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있는가?



<리뷰>

사진가 김홍희 작가의 사진과 필력을 다시 느끼며 음미하고 또 음미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5년 전 처음 사진 공부를 하면서 만난 스승님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수를 알려주셨지만 미력하여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장 한 장의 사진과 한 자 한 자의 글자에 녹여진 순간과 생각을 엿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도 공부가 필요하고 사진도 공부가 필요하다.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이 책에 소개한 암자를 찾아가서 동일인 화각으로 촬영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이 바로 상무주요 암자이니 멀리 갈 것 없이 주변에 있는 암자를 찾아 나서는 것 역시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 아닐까?


“나 어느 날 카메라도 버리고 남은 한 자루의 펜도 버리고 더 버릴 것이 없을 때, 봄나무와 봄꽃의 거름이 되듯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가슴이 먹먹하여 더 이상 읽기 어려웠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대장암 진단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아닐까 감히 미루어 짐작해 본다. 이 책이 쓰인 2018년 이후 6년이 지났고 그 사이 코로나19 팬데믹도 지났다. 병마를 이겨내고 최근의 왕성한 활동을 보며 작가님의 선생님의 열정에 기쁨으로 리뷰를 작성한다. 


나 역시 60이 넘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던 차에 이 문장을 접하면서 사라지기 전에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카메라도 펜도 다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니 어찌 섭섭하지 않으랴. 나 역시 이런 때가 온다면 카메라도 노트북도 버릴 수 있을까..


단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사진이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직접 대면으로, 온라인 동영상으로, 사진책으로 작가님을 뵈면서 계속 공부하고 있다. 어떤 순간을 끊는다는 것이 참으로 묘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으로 사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암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가장 깊은 산속에 있으니 그곳까지 걸어서 찾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적어도 이런 수고로움을 이겨내야 진정한 나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p.9. 암자를 간다는 것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을 간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 그곳이 바로 상무주(上無住)다. 그 위로 더는 머무를 곳이 없는 곳을 향하는 것이 바로 암자를 향한 발걸음이며, 그 길이야말로 상무주를 향한 길이다.

p.141.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있는가?

p.242. 세상의 모든 존재 중에 어느 것 하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p.244. 이 하루는 길고 긴 시간 속에 찰나와 같지만 이 시간의 자리에는 과거 천년, 미래 천년이 동시에 존재한다.

p.282. 나 어느 날 카메라도 버리고 남은 한 자루의 펜도 버리고 더 버릴 것이 없을 때, 봄나무와 봄꽃의 거름이 되듯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p.349. 산 높아 / 구름 더욱 깊네 / 길은 오래전부터 / 오리에 무중이니 / 상무주를 찾는 이여 / 발밑을 보라



<함께 읽으면 좋은 문헌>   

<나는 사진이다>, 김홍희, 다빈치, 2005.

<사진 잘 찍는 법>, 김홍희, 김영사, 2019.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 언어에 대응할 '미래 언어가 온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