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시절 해외여행을 꿈꾼 적이 없다. 여러 가지 대외활동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본심은 남들 다가는 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인턴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사회생활이 끝을 향한 후였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만 잘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두어 달의 사회생활-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가슴을 깊게 스미던 때였다. 사람에게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아침에 인사를 하면 사람들 있을 때는 받아주고 사람들 없을 때는 그냥 보고 지나가던 22살의 어린 사수, 인턴이라 언제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정도 주지 않고 점심도 같이 먹지 않겠다던 차장님, 이모티콘(^^)을 메신저에 한번 썼다가 '친구 하러 회사 온 거 아니다'라고 했던 과장님, 담배를 싫어하는 내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말을 보탰던 과장님.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은 입사 4일 차에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했는데 인턴은 근태가 중요하다며 택시 잡는 곳까지 알려주고 집에 보내고선, 두 달 뒤 그때 팀원들 다 남아있는데 왜 집에 갔냐고 했던 것이다. 정규 직원들은 늦게까지 일해도 그다음 날 늦게 출근할 수 있다며 나를 먼저 보내 놓고선.
물론 아량을 보여주신 동향의 선배님, 힘이 되는 동기들이 있었으나 내가 극복해야 할 건 그들이 아니었다.
다시 취준생이 되었지만 사람이 무서워 회사 가기가 겁이 나는 상태였다. 자소서에 썼던 나 자신을 모두 부정하게 되고 그게 전부 다 내 탓인 것 같은 한숨의 세월이었다. 사실 그때는 내 부족한 점만 큰 구멍처럼 보여, 사람 대 사람으로존중받지 못했다는 사실조차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이 업무적으로 내게 지침을 내릴 순 있어도 내 존재까지 지우는 건 자책의 분량이 아니었음을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야 알았다.
사진 출처 : tvN 꽃보다 누나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주저하던 시절, tvN에서 나영석 PD가 총괄한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승기가 선배 배우들을 챙겨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내용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온 이승기는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회초년생 같아 보였다. 이승기는 해맑고 열의가 많지만 선배 이서진처럼 누나들을 능숙하게 이끌지는 못했다. 짐꾼이 아니라 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그때 프로그램 기사에 익명의 사람이 쓴 댓글이 생각난다. "우리 회사에도 어리바리한 신입이 있는데, 맨날 언제부터 잘할 거냐고 채근만 했었다. 그런데 '이면에는 저렇게 뛰고 있었겠구나, 노력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입한테 더 잘해줘야겠다." 순간 인턴일 때 우체국에 정신없이 뛰어가 소포를 붙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늦어서 혼날까 봐 빨간불의 횡단보도에서 안절부절, 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광화문을 뛰어다녔었지......' 나는 그 댓글을 보며 왠지 힘이 났고 <꽃보다 누나>란 프로그램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리바리하지만 애쓰는 짐꾼 이승기가 지중해의 햇살을 받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마음은 타들어갔겠지만 젊어서 예쁠 수밖에 없는 모습. 처음으로 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햇살을 받아보고 싶었다.내게 있는 젊음도 뽀얗게 빛날 수 있으리라.
사진 출처 : tvN 꽃보다 누나
그러나 그것으론 여행을 결정하긴 어려웠다. 시간과 돈이 맘에 켕겼다. 나는 취업준비생이라 구직 기간이 길어질까 조바심이 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는 덴 넘쳤고 여행을 하기엔 조금 부족했다.
그러다 마침내 여행을 결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본 어느 외국인의 <20대에 이혼하면 배울 수 있는 10가지>란 글을 보고 나서였다. 내용은 이혼 전에 들었던 감정과 이혼 후에 오는 깨달음들을 적어둔 것이었다. 결혼이란 인생 과업은 내게 아득한 일이었지만 무언가 하기 전에 망설여지는 속성은 같았다. 그 글엔 내 명치를 치는 문장이 있었다.
당신이 기대했던 바가 아니더라도 결말은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
미래, 그것은 항상 긍정을 꿈꾸지만 부정을 예상하게 만드는, 부담스런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글이 내 심리적 선입견을 깨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