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2014년 6월에 있었던 여행을 바탕으로 쓴 여행기이다. 7년 뒤 브런치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어리고 여렸던 날들의 서툰 글솜씨를 목격하기도 했다. '와, 이때는 이렇게 생각한 거야? 이거 정말 내가 쓴 거야?'하고 감탄하는 일은 안타깝게도 적었다. 어린 글들을 큰 수정 없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재공유하는 이유는, 내가 이런 기록들을 일관되고 꾸준하게 해왔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가 크다. 그리고 이 여행기는 그다음 여행기를 쓰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왜 썼는가? 다시 떠올려본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풍부한 감정들을 "대박! 진짜 좋았어"라는 말로 간단히 끝내고 싶지 않아 상세하게 기록하게 되었다. 다시 어떤 여행을 한다 해도 이처럼, 모든 순간에 깨 있고 많은 것에 감탄할 수 있을까. 인생의 여름을 지나고 있지만 감히 이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여행은 다시없을 것 같다.
출발 전에 '미래는 좋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라는 말에 기대어 여행을 떠났다.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미디어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첫 회사의 기억을 지울 만큼 성숙하고 관용이 많은 선배님들이 있는 회사였다. 미래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로 양립하지만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걸 그해 진실로 알게 되었다. 해서, 인생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여행하면 되겠다'는 지혜가 생겼다. 첫 해외여행에서 얻은 자산이다.
이 여행에서 얻은 자산들이 몇 가지 더 있는데 소개하고 싶다.
하나, 여행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지 않은 채로는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시공간을 이유로 여행지에서의 나는 일상을 보내는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이렇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빡빡하게 일정을 짜는 편이다. 거리 공연을 매우 좋아한다. 음식은 무엇을 먹어도 상관없다.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를, 도심보다는 자연을 더 좋아한다. 박물관/미술관을 선호하진 않지만 알아보려 한다'
둘, 나는 담대한 사람이다. 그동안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왜냐면 놀이기구도 무서워 놀이공원도 안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나는 패러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날고 짚라인으로 길을 건널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기 전에는 떨려 하지만 하면서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셋, 개를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됐다. 어렸을 때 동네에 유기견이 많았다. 말도 안 통하는 개들과 마주치면 난 늘 친구 뒤에 숨거나 빠른 걸음으로 앞만 보고 도망갔다. 개가 짖기라도 하면 혼비백산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개를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는 내 안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주인만 따르는 개들이랑 자주 마주치다 보니 개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가끔은 귀여워서 만지기도 했다.
넷, 유럽 사람들을 나라 별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얼굴형, 수염, 키 등등으로 조금씩은 구분할 수 있다.
다섯, 이탈리아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기억하건대 이탈리아 사람의 고정 이미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 생겼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축구선수 토티가 반칙하고 선수단 전원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었다. 안정환 선수는 이탈리아 구단에서 방출되기도 했었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도 이탈리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고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탈리아는 좋은 게 없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여행 후, 이탈리아 사람의 이미지는 옛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보존하는 사람, 그리고 잘생긴(!!!) 사람으로 바뀌었다.
여섯, 세계사에 관심이 생겼다. 세계사는 내가 중학교 때 어려워했던 과목이다. 루이 몇 세, 고딕 양식, 비잔틴 양식 등등 키워드들이 잘 외워지지 않았다. 왜 중요한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유럽의 구시가지들을 돌아보며 설명을 들으니 세계사가 어렸을 때만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을 듣지 않고 유적을 돌아보면 허투루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 여행이 끝난 후에도 검색해서 역사적 배경들을 더 알아보게 되었다.
일곱, 세계 뉴스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내가 가본 곳에, 친절한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취향이 생기고 삶은 좀 더 풍성해지나 보다.
떠나보기 전에는 남들 다 가는 거라 흥미가 없었던 여행, 갔다 온 후에는 '남들 다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름나운 나이,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정성스레 엮은 이 여행기를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