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by 어스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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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관적으로 정리된 세계사에 큰 의문을 갖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의 원제는 독일어 Weltgeschichte + 영어 to go의 조합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붙인 제목이 원제보다 나은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은 예외적이다. 원제보다 한국의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 더 흥미롭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든 역사책은 저자(혹은 당대의 서사)의 관점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역사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관점으로 정리된 결과이므로 자신 역시 유럽인의 시각으로 쓸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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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선택한 관점은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이”(19)라는 것이다. 우리 즉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기술하려면 약 1만 2천 년 전의 농업 혁명을 시작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문명적 존재’ 일 때 역사에서 관찰할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분류하는 시기는 야스퍼스의 분석에 따랐다고 한다. 1. 언어와 도구가 탄생한 시기, 2. 왕국을 건설한 시기, 3. 별을 탐구하고 철학하고 사상의 구조물을 짓고 세계종교를 탄생시킨 시기, 4. 기술과 과학의 시대로 구분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 날짜, 이름 대신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당시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만의 독창적인 주장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해들을 수용하여 서술했음 역시 밝힌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목차는 임의적이고 다소 산만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앞서 자신이 제시한 입장에 충실하게 쓰여 있다. 유럽인의 관점을 택한 저자의 글이 때론 불공정할 만큼 유럽중심적이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약자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서양 또는 유럽 모델의 장점”(136)이라는 대목은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못해 화가 났다. 약자에 대한 존중이 가장 부족한 곳이 바로 유럽이 아닌가. 세계 1, 2차 대전을 일으킨 주범이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지화했던 유럽이 약자를 운운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저자는 '1장 단숨에 살펴보는 46억 년의 이야기'의 말미에 진보에 대한 두 가지 주장-1. 인간은 창의적이므로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독창적인 혁신을 찾아낸다. 2. 진보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52-53)-을 나란히 제시해 놓는다. '진보'를 말할 때, 주로 긍정적인 면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두 가지 시각을 모두 제시하여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3장 아름다운 도시에는 사연이 있다'에서 “그리스인들의 가장 위대한 발명인 철학은 원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가리킨다.”(84)며, 철학은 결국 “질문의 정신”이고 정의한 부분도 좋았다. ('여는 글을 대신해'에서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 생각이 저자만의 생각이 아닐지라도.) “그리스인들이 가져온 혁명은 어떤 질문이든 그 가장 깊숙한 곳까지 철저하게 따져 물었다는 데에 있다”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 역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장 한없이 인간적인 인간들의 세계사’에서 역사는 우연의 산물이기에 역사 속 영웅 역시 대체 불가능한 개인은 아님을 말한다.

“역사적 위대성은 늘 사후의 표식에 불과해 신뢰하기 힘들고, 변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125)

‘6장 예술로 보는 인간의 시대’에서 르네상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역사를 회고적으로 돌아볼 때마다 등장하는 문제, 즉 사후적 분류에 관한 것이다. 르네상스라는 개념은 일종의 이름표와 같다. 매우 유용하고 실용적이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이름표, 1,300년경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 1,600년경 어느 시점에 끝나는 아주 긴 시기에 임의로 붙인 꼬리표다.”(189)

이 부분은 데리다의 '전미래' 개념(?)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라며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이 역사적 유물론자의 과제라고 말한 이유도 우리가 아는 역사란 결국 '승리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승리자의 입장에 맞게 정의되고 서술된 역사이기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약자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5장 역사를 바꾼 거대한 생각들’을 읽으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생겼다.

“민주주의는 최후의 진실이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내가 남보다 잘 모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개념이 무수히 오용되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초라한 모습을 띠고 있을지라도 민주주의는 어쩌면 자유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또 가장 겸허한 인류의 이념일지도 모른다.”(164)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어떤 희망과 실천이 필요할까. 앞으로도 이 고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7장 아담에서 애플까지 역사를 바꾼 발명’에서 베이컨이 말하는 인간을 무지하게 만드는 네 가지 요인에도 정말 공감했다.

“첫째는 권위에 대한 지나친 존경이고, 둘째는 관습이며, 셋째는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이고, 넷째는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다.”(213-214)

‘8장 역사 속의 악당들과 보통 사람들’에서 악당은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는 견해에도 동의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은 무사유에서 나온다. 이 책에도 제시된 밀그램의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오히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선택을 하기 쉬운 존재들이다. 슬프게도 “모두가 동의한 일에 맞서는 힘겨운 선택을 해서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야말로 예외적인 존재”(244)이다. 우리는 히틀러를 절대악으로 간주하고 비난하는 대신 히틀러가 되지 않기 위해, 즉 계속 사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앞부분들도 공감이 되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10장 모든 역사에는 끝이 있다'와 '닫는 말을 대신해(맺음말)'였다.

“역사를 둘러싼 중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들이 지금 벌어진 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279) “역사에서 우리를 아연케 하는 점은 대부분 전혀 기대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는 점이다.”(280) “역사는, 브루클린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버스처럼 갑자기 당신을 덮칠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단연코 가장 예상치 못한 쪽에서 올 것이다.”(282) “가령 ‘세계화’를 중심으로 역사를 관찰하는 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중략> 다만 그렇게 역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든 다양한 무엇인가에 억지로 질서를 부여하려는, 용기 있지만 동시에 절망적인 시도라는 점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288)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신경 쓰지 않고 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에 의미를 부여”(290)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어떠한 목적(목적론적 가치관(혹은 종말론적 세계관)과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은 서양인의 이념(294-296), 특히 기독교적 사고임을 저자는 지적한다)을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어야 한다. 역사는 (무언가를 향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나 인도인의 생각처럼) 순환하는 것이라면, 순환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할까.

저자는 이러한 자유(붙잡거나 지향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유)에 대한 선택이야말로 선물이면서 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유 속에서 세계가 의미 있음을 믿으면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세계에 대한 긍정은 현실 그 자체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부단히 개선하도록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개선책 역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더라도.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랜덤으로 놓인 현실 속에서, 혹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선을 선택하는 용기가 조금 더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면 나는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고 싶다.

'닫는 말을 대신해'에서, 저자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역사를 꿰뚫어 보게 되지는 않는다며 배움이란 모르는 것이 분명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이 쌓이며, 지식은 어차피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자신이 아는 것에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 의문을 던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평소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천을 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지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나 역시 어떤 순간에는 내 지식을 확신하는 게 아니었을까 반성도 해 본다. 너무 단언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조금 더 멀리 지켜보는 것과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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