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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Dec 10. 2024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한국 입맛

매일 뭐먹고 살지?

 작년 1월, 인도로 먼저 출국한 남편이 우리가 살 아파트를 계약했다며 주소를 보내 주었다. 나는 구글맵으로 아파트 주변을 탐색하며 앞으로 펼쳐질 나의 외국 생활을 신나게 상상했다. 곧 이 길을 서울처럼 구석구석 알게 되겠지? 미지의 세계를 내 손바닥 안처럼 알게 된다니 이보다 더 설레는 일이 어디 있을까! 늘 외국 생활을 꿈꿔 왔던 나에게 한국이 아닌 외국 어딘가에 또 다른 나의 집이 생긴다는 사실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삶은 여행 같이 매일 설레지도, 특별히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건 바로 나의 신분 변화에 따른 역할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인에서 가정 주부가 된 나의 주요 업무는 '하루 세 번 밥 하기'. 삶은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인도에서도 끼니는 무한히 반복된다. 그러나 고기와 생선을 마음대로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요리라고는 주말 한 끼 정도 했던 내가, 성장기 어린이를 먹여야 해서 영양이 잘 갖춰진 식단을 하루 세 번 차려내기란 목적지가 없는 지난한 여정과 같았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넘어져서 다쳐도 멈추지 않고 끝끝내 걸어가야 하는 길, 순례자의 길이었다. 


 마흔이 넘어 외국에서 살아 보니, 이곳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갈수록 더욱더 뚜렷해지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빠른 행정 처리, 깨끗한 길거리를 걷는 자유, 하룻밤만에 도착하는 새벽 배송, 돈 쓰기 좋은 쇼핑몰과 백화점 등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이 모든 편리하고 좋은 혜택이 없어도 큰일나지 않는 삶이 있다는 걸 인도에서 살며 알게 되었다. 그러나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국 음식이었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란 한국인이니까. 여행을 온 게 아니니 커리와 난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내가 이렇게 한식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한국이었다면 생각나지 않았을 각종 음식들이 매일매일 그리웠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먹고 싶고, 기운 없는 날엔 삼겹살 구워 쌈에 싸 먹어야 하는 건 내가 40년간 먹고 자란 그 음식들이 나의 몸만 아니라 나의 정신 또한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고작 여덟 살, 인도에서 2년을 산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가는 평일이면 집에 와서 먹는 저녁밥은 꼭 쌀밥에 반찬을 고집한다. 학교에서 외국식으로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역시 한국 사람은 쌀밥에 반찬을 먹어야 든든하고 힘이 난다. 그래서 나는 온가족을 먹이기 위한 밥 짓기 업무를 게을리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채식의 나라에서 치열하게 한식 메뉴를 브레인스토밍한다. 나는 한국 입맛을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니 말이다.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한국음식을 잘해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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