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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Dec 27. 2024

달려달려 버팔로 ♬

고기롭지 못한 그 고기

 고기, 고기, 고기... 인도 식생활은 고기의 부재를 시시각각 확인하는 생활이다. 매 끼니 고기 반찬이 없이는 밥을 못 먹는 그런 사람은 우리 가족 중 아무도 없었기에 내가 이렇게까지 고기에 목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은 아니지만, 인도 정착 초창기 나의 생활은 매일이 고기 투쟁이었다. 돼지고기, 소고기가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집밥 메뉴의 거의 절반을 요리할 수 없었다. 국을 끓여도 꼭 고기를 넣어 국물을 내야 바로 한식 아니던가! 코인육수는 훌륭한 맛을 내지만, '씹는 맛'이 없으니 마음이 허전해서 자꾸 국그릇을 뒤적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고기 반찬을 포기해야 하는데, 40년간 한식을 먹고 산 내 머리로는 고기가 아닌 반찬을 생각하는 게 더 힘들었다. 간절한 그만큼 고기를 대체할 그 무엇인가를 더욱 집착하고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 슈퍼마켓 냉동 코너에서 불고기감 비슷한 빨간 고기를 발견했다.


 설마 이게 소고기인가! 당장 집어 들고 표장용기에 쓰인 라벨을 읽어보니 '버팔로'란다. 순간 내 귓가에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핑크퐁 동요가 자동 재생됐다. "버팔로~ 달려달려 버팔로 아프리카 사바나 즐거운 내 집, 꼬부라진 뿔 내가 바로 버팔로~" 설마 내가 아는 그 동요 속 버팔로인가? 빙고.

노랫말처럼 '꼬부라진 뿔'이 참으로 멋진 버팔로. 그러나 맛도 멋질까? <이미지 출처: Pinterest>

 원산지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깔끔한 진공 포장이 아닌 플라스틱 용기를 랩으로 대충 둘둘 만 포장 상태가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도축 일자도 유통 기한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의심스러운 그 고기를 살까 말까 대체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르겠다. 먹을 수 있는 것이니 팔긴 할 텐데 비리거나 누린내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좀 더 풍요로운 식생활을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한 법. 나는 돈을 버리는 셈 치고 용감하게 그 고기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물소도 소는 맞잖아? 믿음직하지 못한 포장 상태와 어딘지 모르게 힘 빠져 있는 빨간 고기색이 마음에 걸렸지만 인도와의 고기 전쟁에서 꼭 승리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전의를 불태웠다.


 집에 와서 포장을 뜯고 해동해 보니, 나름 결결이 얇게 썬 모양새가 불고기감 생김새와 똑같다. 일단 외모는 합격. 이번에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불합격. 익숙한 냄새가 안 난다. 분명 소고기 냄새는 아니었고, 내가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였다. 늪에 빠진 듯이 축축하게 피어 오르는 불안한 물비린내. 역시 “물소”라 그런가. 그 냄새는 미림과 간장이 가라앉혀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는 불고기 양념을 시작했다.


 양파, 버섯, 파를 썰어 고기와 함께 그릇에 담고 간장, 미림, 설탕을 넣어 무쳤다. 생강 가루와 다진 마늘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에 참기름 한 스푼 두르고 참깨를 뿌리니 영락없는 불고기 비주얼이다. 코를 대고 다시 냄새를 맡아 보니 간장과 참기름 냄새를 여전히 뚫고 올라오는 물비린내. 구우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주문을 외웠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버팔로 고기를 볶았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귓가에 자동 재생되는 핑크퐁 버팔로 노래를 애써 머릿속에서 쫓아내며 나는 익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너는 과연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뛰는 동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우리의 식생활을 한층 풍족하게 해 줄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냐.

 

 내가 아는 익숙한 간장 양념 맛이 1차로 위장을 통과했다. 아직 위장에 도달하지 않은 고기는 내 입 속에 머물러 있었다. 불고기에 기대하는 부드러운 식감과 한참 동떨어진 퍽퍽하고 퍼석퍼석한 낯선 식감이 입안을 공격했다. 그리고 한국산 간장과 미림으로도 지워지지 못한 물비린내 마무리까지. 아, 이래서 물소였구나. 내가 맛본 것은 고기가 아니라 고기의 진한 부재였다.


 퇴근한 남편에게 버팔로 불고기를 했는데 혹시 한 번 먹어 보겠냐고 그렇지만 맛은 별로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남편은 흔쾌히 어디 한 번 먹어보자 한다. 몇 점 먹어보더니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한다. 그럴 리가 없다. 열심히 요리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일부러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아니면 고기 없는 이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버틸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남편은 고기롭지 못한 그 고기를 다 먹었다. 하지만 나는 버팔로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로 남는 게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양념하지 않은 남은 고기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고기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어느 버팔로를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자, 이제는 더욱 커져 버린 고기의 빈자리를 다시 온몸으로 느껴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 버팔로는 잊고, 닭고기와 절친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방학 때 한국에 가면 캐리어 하나를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가득 채워 오리라 다짐하며 겨우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웃의 아이 친구 엄마에게 그 분을 소개받게 된다. 그 분을 만난 후로 우리 가족의 인도 식생활은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분은 바로!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버팔로 맛에 충격받아 버팔로 불고기 사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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