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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Jan 07. 2025

밥상 치트키 '소고기 미역국'

네, 그 소고기(Beef) 맞아요

 우리 가족 인도 식생활의 일대 대변혁을 가져오신 그분은 바로 ‘미트 가이(Meat Guy)’다.


 그분은 당연히 자기 이름이 있지만 그를 아는 우리 아파트 이웃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기쁨과 힘을 주는 이름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미트’는 듣기만 해도 즐겁고 ‘가이’는 믿음직하다. 그래서 그는 ‘미트 가이’다.


 그를 알게 된 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를 통해서였다. 아이들도 나이가 같고 똑같이 외동딸에다 인도에 온 시기도 비슷해서 우리는 꽤 자주 만났는데 얼마 전 버팔로 고기에 호되게 당한 나는 어쩌다 그녀와 고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고기 못 구하는 거 너무 힘들지 않아? 한국 사람은 고기 없이 못 사는데 여기 진짜 힘든 곳이야.”

 “나 호주 사람인 거 너 알잖아. 나 항상 최고의 소고기만 먹고살았어. 여기 진짜 그야말로 충격적이야.”

 “나 얼마 전에 버팔로 고기 샀다가 다 버렸잖아. 그건 고기라고 할 수 없어. 돈만 버렸어.”

 “너 고기 구하는 데 다른 곳 알고 있어? 내가 알려줄까?”

 “버팔로라면 됐어. 한국 갔을 때 많이 사 올래.”

 “버팔로 아니야. 비프(Beef)야.” 


 인도에서 버팔로가 아닌 소고기를 구할 수 있다고? 벙어리 귀가 뚫리고 장님 눈이 뜨이는 소리였다. 그녀는 ‘잠깐만’ 하더니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 보겠다 하였다. 소고기를 파는 게 인도에서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경로가 필요한가 보다 짐작하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 누군가의 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자기도 남편 회사의 아내 모임에서 나름 비밀스럽게 받은 정보라며 그가 괜찮다 하면 연락처를 알려 주겠다 했다. 그가 바로 ‘미트 가이’였다.


 곧 그의 오케이 답이 왔고 그녀는 나에게 왓츠앱 메시지로 미트 가이의 연락처와 그가 취급하는 고기의 가격표를 보냈다.


 그녀가 보낸 가격표에는 놀랍게도 안심, 등심은 물론 채끝, 티본스테이크, 립, 사태, 다짐육 등 내가 대충 알만한 소고기 부위가 낱낱이 쓰여 있었다. 버팔로 물비린내에 당했던 지라 일단은 그 맛이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그녀 말이 정말 소고기랑 맛이 똑같다고, 자기도 의심스러워서 어디서 온 소고기냐고 물어봤는데 인도 남부 쪽이라고 했단다. 청정우의 국가 출신이니 소고기 맛에 대해서는 한우의 국가 출신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믿고 당장 고기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아파트에 배달 온다고 했다. 한 번 주문할 때 최소 주문량은 2KG 이상. 나는 고심해서 등심 1KG, 안심 1KG, 다짐육 1KG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집 문 앞까지 배달하지 않는다고, 동 앞에서 전화하면 나오라고 했다.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나는 그마저도 믿음직스러웠다. 아파트에 뭔가를 배달하게 되면 반드시 로비에서 가드의 검사를 받는데 소고기를 배달하니 당연히 그럴 수가 없을 터. 소고기를 구할 수 있다면 동 앞이 아니라 아파트 밖 큰길까지도 나갈 수 있다. 나는 그날 외출도 하지 않고 미트 가이를 기다렸다.


 드디어 미트 가이가 동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쏜살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동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누군지 찾고 있으니,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키 큰 남자가 주차해 놓은 흰색 승용차 옆에서 손을 흔든다. 아! 나의 구원자가 저분이로구나! 그는 인도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소고기를 취급하니 아마도 중동 어느 쪽의 사람일 듯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그가 트렁크에서 꺼내 준 고기 봉지를 받아 들고 누가 볼세라 집으로 달렸다.


 꽁꽁 싸맨 봉지를 여니 얼음이 가득하다. 얼음이 담긴 봉지 안에 또 투명한 봉지가 있어 열어 보니 정말 놀랍게도 냉동이 아닌 냉장 고기가 들어있다. 얼른 꺼내서 보니 빨간색이 내가 아는 그 소고기가 맞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봤다. 합격! 이건 진짜 소고기 냄새였다. 비리지도 않고 물냄새도 안나는 신선한 그런 소고기 말이다.

미트 가이에게 주문한 첫 소고기. 감격스러웠다.

 이 고기를 바로 냉동실에 넣는 건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당장 등심을 300G 정도 잘랐다. 고기가 숭덩숭덩 잘 썰렸다. 그리고 아주 신선하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고 고기를 볶았다.


“촤아악!”


 최적으로 달궈진 냄비와 생고기가 만나 합주하는 경쾌한 소리! 그 뒤를 따라오는 소고기 익는 흥겨운 냄새! 오늘 저녁은 소고기 미역국이다! 미역과 물을 넣고 오래오래 끓였다. ‘진짜’ 소고기가 있으니 동전 육수 따위 넣지 않아도 된다.  


 뽀얗게 기름이 올라온 국물을 떠서 한 입 맛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그래 이 맛이야.”


 고기를 찾아 투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갑자기 인도가 살만한 곳으로 느껴졌다. 고기의 출처는 알 수 없었지만 인도 남부에서는 소고기를 먹는다고 하니 꺼림칙할 것도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우는 너무 비싸 자주 못 먹이더라도 유난 떨며 호주 청정우 정도는 아이에게 먹였었는데, 그런 기준은 이곳에서 의미가 없다. 인도에서 무려 소고기를 구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이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더니 한 그릇 더 달라고 한다. 그러니 출처를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랴. 이제 새로운 식생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의 구원자 미트 가이, 그의 사업이 더욱더 번창하길 진심으로 빈다.

소고기 미역국만 있으면 밥 두 그릇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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