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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먹는 명절음식 특집

인도식 아니고 한식 

by 폼폼토스 Jan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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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맞는 두 번째 새해, 3년 차의 해 2025년이 밝았다. 


 외국에 있으니 한국의 설날과 추석은 그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보통의 날들이다. 그래도 새해 첫날은 회사도 쉬고 학교도 방학이라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는데, 작년에는 마음이 어쩐지 허전해 한국에서도 안 만들던 명절 음식을 부산 떨며 만들어봤다. 인도에서 먹는 명절 음식이 궁금하다고? 한국과 똑같다. 비록 어딘가 조금씩 빠지는 맛이긴 하지만 말이다. 


푹 퍼지는 떡국은 사골 엑기스로 전문식당 느낌 내기  


 새해 첫날에는 떡국을 먹어야 한다. 인도에서도 가래떡을 썬 떡국떡을 한인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인도산 쌀로 만들어 그런지 쫄깃한 맛이 없고 국물에 넣고 끓이면 금방 푹 퍼져 버린다. 그래서 국물에 한 번 담근다는 생각으로 아주 짧은 시간 삶고 불을 꺼야 한다. 안 그러면 냄비 바닥에 납작하게 눌어붙은 떡을 긁어내 먹어야 한다. 


 국물은 간편하게 한국에서 쟁여온 사골 엑기스로 해결한다. 오로지 사골과 소금만 넣었다는 포장박스의 문구를 증명하듯 국물맛은 너무나 훌륭하다. 이 작은 봉지에 담긴 엑기스로 깊은 사골 국물맛을 낼 수 있다니, 떡은 좀 퍼질지라도 마치 내가 몇 시간 동안 사골을 끓여낸 것 같은 착각에 뿌듯해진다. 여기에 달걀지단, 김가루, 잘게 썬 파까지 올리면 새해 첫날 떡국 완성이다.  

사골 엑기스가 있으니 떡국은 평소에도 쉽게 끓여 먹게 된다.사골 엑기스가 있으니 떡국은 평소에도 쉽게 끓여 먹게 된다.


비비고 만두에 패배한 손만두 


 설날이면 할아버지 댁에 모두 모여 만두를 직접 빚는 게 우리 집 명절 행사였다. 초등학교 이후로 집에서 만두 빚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인도에 와서 오랜만에 손만두를 빚게 된 이유는 한인 슈퍼마켓에서 파는 비비고 만두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었다. 비비고 만두는 자고로 냉동실에 봉지째 넣어 놓고 만둣국에도 넣어 먹고, 구워 먹고, 쪄먹고 하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국에 비해 너무 비싸 먹으면서도 자꾸 한 알 한 알 세게 된다. 이렇게 먹고 싶지 않아 만두를 직접 빚어 보기로 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만두는 돼지고기, 두부, 부추, 마늘, 숙주를 넣은 이북식 만두. 다행히 이 모든 재료를 한인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어 당장 사 왔다. 다진 돼지고기에 물기 뺀 두부를 으깨 넣고 부추와 숙주를 잘게 썰어 섞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간장과 소금으로 간하고 만두피 한 팩 뜯어 만두를 빚으니 약 50개 정도 분량의 만두를 만들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명절에 빚었던 것처럼 쟁반 위에 진열하고 나니 뿌듯하다. 


 과연 맛은? 돼지고기는 냄새가 잘 안 잡혀서 약간의 시큼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간장과 소금을 꽤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짭짤한 맛이 부족해서 싱거웠다. 갓 쪄낸 만두를 맛본 아이가 말했다. 


“비비고 만두 없어?” 

모양은 그럴싸하다만 맛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손만두 모양은 그럴싸하다만 맛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손만두 

기름 한참 떼어 내고 요리하는 갈비찜 


 미트 가이가 인생에 나타난 후로 나는 다양한 소고기 부위를 주문해서 신나게 요리했다. 명절을 앞두고 주문한 부위는 ‘Short Rib’. 갈비찜에 쓰는 바로 그 부위였다. 때마침 인도에 방문하신 친정 엄마의 생신이기도 해서 나는 용감하게 갈비찜에 도전했다. 고기에 간장 넣으면 대충 다 맛있으니까. 


 그런데 미트 가이가 가져다준 갈비는 기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원래 갈비가 기름기가 많은 부위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기름 좀 떼고 달라고 할걸... 갈비를 2KG을 샀는데 기름만 한 500G을 떼어낸 것 같다. 미트 가이… 그는 분명 생명의 은인이 맞지만 이번엔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름 손질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당근과 무를 돌려 깎고 양송이버섯과 브로콜리도 잘라 넣었다. 그리고 갈아 만든 배와 간장, 미림, 참기름을 넣고 육질이 연해지도록 오래오래 끓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의 생일상 겸 명절상에 갈비찜을 냈다. 그날 갈비찜은 다 없어졌다. 미트 가이를 원망하다니 내가 잠깐 미쳤었다. 인도에서 무려 소갈비찜을 먹을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지 시시각각 상기하자.  

한국에서도 요리해 본 적 없는 인도에서 먹는 소갈비찜 한국에서도 요리해 본 적 없는 인도에서 먹는 소갈비찜 


두 손으로 모시고 먹어야 하는 비싼 깻잎전 


 명절엔 기름 냄새 좀 맡아줘야 하는 법. 만두소를 만들고 남은 게 있어 깻잎전과 동그랑땡을 부치기로 했다. 인도에는 깨는 많지만 깻잎은 없다. 그래서 사려면 한인 슈퍼마켓에 가야 하는데 문제는 깻잎이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이다. 그마저도 겨울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 그렇지만 명절마다 항상 먹었던 깻잎전이 있어야 명절 기분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을 머금고 한 봉지 사서 모조리 깻잎전에 투입했다. 


 깻잎 안에 고기를 듬뿍 넣고 부침가루에 묻혀 달걀물을 입히고 기름에 지글지글 구웠다. 역시 기름에 지지면 뭐든지 맛있던가. 비비고 만두에 패배한 손만두에 넣은 속이었는데 깻잎전과 동그랑땡으로 부치니 냄새도 안 나고 너무 맛있다. 역시 전을 부쳐야 명절 느낌이 난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그런데 깻잎이 너무 비싸서 두 손으로 모시고 먹어야 할 것 같다. 먹고 남은 깻잎전은 냉동실에 소중하게 얼려 두고두고 끝까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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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으로 처음 부쳐보는 깻잎전, 동그랑땡, 꼬지전

 이것들은 모두 작년에 해 먹은 명절음식이다. 올해는 무려 남편이 한국 출장길에 들고 온 국산쌀로 만든 오색 떡국떡이 들어간 떡만둣국(여전히 사골 엑기스는 함께), 부식으로 잔뜩 쟁여 놓은 하나씩 세며 먹지 않아도 되는 비비고 만두(손만두는 남편이 다 먹어치움), 미트 가이에게서 산 안심으로 부친 육전(찬양하라 미트 가이!), 겨울 배추로 아삭하게 무친 겉절이(겉절이가 제일 쉬웠어요)이다. 이게 바로 인도 살이 2년 차와 3년 차의 차이인가. 어느새 한국에 살 때보다 더 잘해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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