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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때와 만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by 폼폼토스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꽂는 햇살과 숨이 턱턱 막히는 습한 공기. 티박스에서 나도 모르게 휘청했다. 온도는 40도를 찍었고, 체감상 온도는 45도쯤 되는 듯하다. 이런 날씨에 골프를 치다니, 시간이 넘쳐 나는 없는 인도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치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꼭 쳐야 하는 날이다. 바로, 나의 유일한 고정 골프 멤버 J와 함께 하는 마지막 골프이기 때문이다.


J는 4년의 주재 생활을 마치고 올해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24년 2월에는 K, 12월에는 H였다. 골프를 함께 치던 친한 무리 중 나만 인도에 남게 되었다. 이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인도라는 낯선 나라에서 정신없이 적응하고 좌충우돌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인도 생활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람이다. 혼자서 할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보니 누군가를 꼭 만나야 한다. 한국에 살 때는 늘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는데 인도에 오고 나서 인간을 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이 넘쳐나는 시간을 감당하기 힘들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누군가를 만나 이곳 생활의 고단함을 털어놓아야 견딜 힘이 생기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원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공개해야 한다. 시간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주재지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교민보다는 주재원이 많은 곳이다 보니 어느 회사, 어디 사는지만 알아도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귀는 데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특히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너무 다행히도, 내가 만난 K, H, J와는 적당한 시간과 거리를 두고 친해졌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아주 큰 부분이 골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골프를 치다 보니 쓸데없는 소문, 시시콜콜한 집안 사정 등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골프 치는 시간은 그저 공에 집중하고 멀리 보내고 물에 빠뜨리지 않는 것에 신경 쓰는 단순 명료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도 정리되고, 쓸데없는 생각도 사라진다. 그래서 집에서 며칠만 있다 보면 또 골프 치러 나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카트를 타고 달리면서 J와 나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없음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다. 이런 골프 동반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먼저 떠난 멤버들은 혼자 남겨질 나에게 새로운 동반자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골프를 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골프를 치지 않았어도 가까워졌을 사이였던 것 같다. 골프도 함께 치고, 친해지게 되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그 모든 적절한 타이밍이 감사하다. J는 혼자 남게 될 나를 걱정하지만,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이 단단하게 쌓여 있기 때문에 혼자 있게 될 앞으로의 시간도 꽤 괜찮을 것 같다.


18홀을 다 치고 락커룸으로 들어섰는데 그동안 같은 골프장을 다니면서 얼굴을 익힌 마담들이 짐을 챙기고 있다. 인사를 하고 내 락커를 여는데 예전에 한번 조인했던 마담 한 분이 다가온다.


“방학 끝나면 같이 골프 칠래요?”


J와 마지막 라운딩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골프 멤버라니, 반가우면서도 신기하다. 그토록 노력할 때는 생기지 않더니, 역시 인연이 따로 있나 보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든 잠시 헤어지는 사람이든 나를 거쳐가는 그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과의 시간을 정성스럽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 타 한 타 정성을 다해 치면서, 나머지 주재 기간을 잘 버텨보리라. 골프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나는 스윙한다, 고로 존재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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