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한 달 살기 : 불과 세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찰나의 순간
Prologue
퇴사 날짜가 확정되기 전,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시작을 해야 정말 시작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카이스캐너와 카약을 일주일이 넘도록 날짜를 바꿔가며 검색을 해 인천-토론토, 몬트리올-멕시코시티, 칸쿤-인천 세장의 티켓을 12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구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퇴사한 33살 유부녀의 70일간의 혼자 여행엔 왠지 모를 부담감과 주변인들의 조언과 질타가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꼭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일까.
내가 여행을 하며 무엇을 얻어오든, 얻어오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다.
새로운 길이 그곳에 없다고 하여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곳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는 것 조차가 현실도피일 테니.
나는 그냥 철없이 지금을 즐기려고 한다.
-내 미래를 걱정하는 고마운 마음들에 안부를 전하며
밤 10시에 도착한 퀘벡은 춥고 깜깜한 밤이었다.
숙소는 구글맵에 의하면 기차역에서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낯선 공간의 늦은 시간이라 우버를 부를까 아주 잠깐 고민하다 걷기로 결심했다. 장기 여행자에게 필요한 건 편리함보단 체력이다.
지도는 정확하게 15분이라고 말해줬지만, 불행하게도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구글맵은 나에게 비탈길이라고 까진 알려주진 않았다. 긴 여정에 지친 몸과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30분은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빨리 들어가서 대자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30일 동안 장기 숙박할 곳이라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고심 끝에 예약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frederick은 기꺼이 내 짐을 3층까지 올려주었다. 숙소를 둘러볼 새도 없이 대충 세수만 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천근만근 피곤한 몸이지만 마음만큼은 왠지 피곤하지 않았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 비행기로 13시간, 토론토에서 퀘벡까지 기차로 11시간.
24시간을 지나 나는 지금 퀘벡에 도착했다.
일어나자마자 잽싸게 집 앞의 마트로 걸어갔다. 걸어서 5분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지만 왠지 기분 좋은 산책길 같았다. 마트라기라고 하기엔 쑥스러운 작은 구멍가게에서는 몇 가지 과자와 음료, 그리고 간단한 전자레인지용 음식들을 판매한다. 생수 2병과 과자 한 봉지,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라자냐를 구입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자레인지에 라자냐를 돌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퀘벡의 첫 끼니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 같아 뿌듯했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춥다던 퀘벡의 날씨는 화창했고, 당분간 이 길이 나의 동네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모든 곳을 빨리 둘러보고 싶은 분주한 마음과 지도는 일단 접어두고 발걸음이 닿는 데로 산책을 시작했다. 일단 사람들이 북적이는 데로 길을 따라가니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샤또 프롱뜨낙 호텔이 나왔다. 올드 퀘벡의 랜드마크라는 샤또프롱뜨낙 호텔이 숙소에서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린다니. 이런 행운이 더 있을 수가 없다. 샤또 프롱트낙 호텔 바로 앞 테라스에는 마치 바다같이 큰 세인트로렌스 강이 흐르고 바로 뒤편으로 보이는 언덕이 그 유명한 도깨비 언덕(Parc du Bastion-de-la-Reine)이다. 살짝 흥분된 마음을 채 고르지도 않은 채로 도깨비 언덕에 올라갔다. 잔디밭에 풀썩 앉아 샤또 프롱트낙 호텔과 세인트로렌스 강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불과 세 달 전에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했던 순간에 나는 지금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