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산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만큼 낮은 동네 뒷산이다. 하지만 구청에서 이리저리 계단도 만들어 놓고, 구석구석마다 철봉이나 운동기구가 있어서 동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정상에는, 사실 정상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조깅트랙이 있다. 가운데에는 인조잔디가 펼쳐져 있고 가장자리에 트랙이 있어서 사람들이 걷거나 조깅을 하곤 한다.
나도 가끔 가곤 했는데,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나가기가 어려웠다. 3월이 되고 나서야 몇 번 다녀왔다. 조깅트랙은 한 바퀴가 380미터라고 씌어있는데, 예전에는 한 바퀴를 뛰어서 한 번에 돌기가 어려웠다. 380미터를 한 번에 못 뛰다니, 하지만 항상 뛰다가 삼분의 이 지점에서 멈춰서서 다시 걷곤 했다.
요사이 한 바퀴를 한번 채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뛰어보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아주 느린 속도지만 뛸만 했다. 예전에는 그 한 바퀴를 뛰고 나서도 종아리 뒷부분이 아파서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발의 중간부분 부터 디뎠다. 그리고 뛰다보면 상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다리가 아니라 상체에 힘을 주고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깨에 힘을 뺀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고. 습습- 후후. 호흡을 신경쓰면서 천천히 뛰니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예전에 최동훈 감독의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이 조깅하고 있는 염정아에게 다가와 호흡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습습- 후후, 이렇게 숨을 쉬어야지.' 어쩌구 하면서 훈수를 두는 장면이 습습 후후를 할 때마다 생각이 난다. 그런데 실제로 습습은 잘 안하게 된다. 후후. 내쉬는 숨만 신경쓰면 들이쉬는 건 자동으로 된다. 힘들어서 입을 크게 벌리느라 헉헉 - 후후 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오늘도 며칠만에 조깅트랙에 갔다왔는데, 오늘은 두 바퀴를 한 번에 도는데 성공했다. 후후,후후. 발을 디딜 때마다 후후, 숨을 크게 내쉰다. 코로 숨을 내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코로 숨을 쉬어봤는데, 힘들어서 입으로 숨을 쉬고 있다. 뛰면서 팔을 조금 힘차게 흔들어주었더니 어깨가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760미터를 한 번에 뛰었다고 브런치에 쓸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기록을 해두고 싶었다. 두번째 바퀴를 뛸 때, 좀 힘들었지만 아주 조금씩만 더 뛰니 두 바퀴가 채워졌다. 누가 들으면 마라톤 코스 완주한 줄.
어쨋든 당분간 뒷산에 조금 자주 갈 예정이다. 어깨 부상 때문에 강한 강도의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차였는데, 살짝씩 뛰어보니 좋은 느낌이 있다. 다음은 생각하지 말고, 조기 조 앞에까지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