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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Mar 17. 2023

잊을 수 없는 순간

아폴로 18 warm

한 번 겪으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세상에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예전에 남편과 함께 안산에서 열리는 락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그 때문에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바닥은 엉망진창이었다.  우리는 비를 피해 천막이 있는 공연장으로 들어가서 쉬고 있었다. 그 때 당시 베테랑이 개봉했을 때라 영화 홍보팀에서 일회용 선캡을 나눠주었다. 완전히 젖은 주제에 비를 피하겠다고 그 선캡까지 쓴 나의 모습은 아마도 가관이었을 것이다. 비때문에 지치고 힘들었다. 천막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남편이 아폴로 18이라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제대로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었던 나는 시큰둥했지만, 뭐 한번 가보지 하면서 비를 뚫고 천막에서 나갔다.


아폴로 18이 연주하는 스테이지 앞쪽은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발이 푹푹 빠졌고 비에 홀딱 젖어 온 몸에 한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를 시작했을 때,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모인 사람들이 음악에 취해 원을 만들어 돌기 시작했고, 웃통을 벗은 한 남자가 깃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뭔가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숭고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것을. 아직도 그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기억이 난다. 커다란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거기 모인 사람들을 덮는 것처럼. 거기 모인 사람들의 뇌가 모두 연결된 것처럼. 우리는 공명하고 있었다.  한 리듬에 속도가 맞춰진 메트로놈처럼. 아폴로 18의 음악에 공명하고 있었다. 텅 비어있지만 꽉 차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처럼. 


그 이후에 그들의 공연을 기다렸지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래동에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타리스트는 이미 취해있었다. 소주를 마시고 왔다고 했다. 공연은 흐트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숭고함은 다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슬픔을 내가 다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런 음악을 하면서 먹고 살기 쉽지 않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 후로 10여년이 지났지만 아폴로 18의 새 앨범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나는 그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들은 어떤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얼마나 텅 비어있으며 동시에 충만할 수 있는지 알려준 사람들이라고. 일면식도 없는 우리들의 뇌가 공명하는 순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다시 그들이 모여 그 순간을 만들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https://youtu.be/tsEuCyaam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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