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Incheon To Denpasar

03. "발리 첫 번째 집"에 도착하기까지

by 게으른 기록자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짐 싸기를 마무리하고, 오래 집을 비우기 전 필요한 조치를 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데리러 가니 아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마침 어버이날이라 직접 꾸민 카네이션을 자랑스러운 표정과 부끄러운 몸짓으로 건네주었다. 한 손엔 꽃바구니를, 한 손은 아이와 맞잡고 집으로 돌아온 뒤,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서울에서도 가장 동쪽에 사는 우리는 공항까지 가는 것만 해도 짧은 여행이다. 공항에 가까워져서야 슬슬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지난한 짐 싸기의 피로 위로 설렘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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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지만,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평소 잘 사주지 않는 초콜릿을 사주겠다고 꾀어서 탑승 게이트까지 갔다. 면세점에서 살 것이 있던 남편은 구경하러 가고, 나는 스타벅스 옆 너른 공간 의자에 아이와 마주 앉아 쎄쎄쎄를 했다. 덥고 지친 상태로, 주위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두리번거리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쎄쎄쎄를...


이미 연기된 탑승 시간이 한 번 더 연기되어 예정보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올라 창가에서부터 나-아이-남편 순으로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아이들을 위한 기내식이 먼저 제공되었다. 아이는 나름 세 번째 비행이라고 자연스럽게 헤드폰을 착용하고 영화를 보며 밥을 먹고, 후식으로 제공된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승무원이 나눠준 색칠놀이와 따로 준비해 간 워크북도 하며 긴 비행시간을 잘 보내는 듯했다. 그러다 점점 피곤하고 불편해서 몸을 배배 꼬기 시작. 그러면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잠자기를 거부했다.


나 역시 옆에서 밥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개봉했을 때 보러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룸 넥스트 도어>를 봤다. 물론 중간중간 아이의 시중을 들면서...


나중에 들어보니 복도 쪽에 앉은 남편은 주변에 탄 아기들이 번갈아 울어대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에어팟 노이즈캔슬링 기능도 무용지물이었다고. 그래도 우리 아이가 우는 게 아니라 차라리 나았다고도.


아이의 첫 비행 때를 떠올려본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이륙 중에는 안전벨트를 풀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 났던 순간을. 그래, 차라리 다른 아기 울음소리를 견디는 편이 낫지. 아이가 많이 컸음을 또 한 번 실감했다.


버티고 버티다 아이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자리가 불편한지 한참을 이쪽저쪽으로 뒤척이다가 막판에는 거의 서는 듯이 의자에 기대어 잤다. 나도 영화를 끝까지 보고는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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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뿌둥한 몸으로 도착한 발리 공항은 듣던 것보다는 컸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훅 끼쳐오는 습하고 더운 공기. 예상보다도 더웠다.


예약해 둔 택시 기사님과 만나서 우붓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기사님과 우리는 어정쩡한 곳에 다소 뻘쭘하게 서 있었다. 아이가 면세점에서 산 유산균 젤리를 달라고 하여 하나를 건네주고는, 기사님에게도 몇 개 나눠드렸다. 아이가 껍질 까먹는 걸 어려워하자, 기사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젤리를 받아 들고(아이도 엉겁결에 건네주었다.) 껍질을 깐 뒤, 젤리를 손으로 꺼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말 따스한 친절이지만, 손 씻기 전에는 간식을 주지 않는 나로서는(씻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껍질을 깐 뒤 아이의 입에 대고 봉투를 눌러 내용물만 입에 쏙 넣어주는 방법을 쓴다.) ‘동공 지진’이 일어날 수밖에.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에 탈 때도, 미리 요청해 둔 카시트에 앉히기 위해 자연스레 아이를 안아 들려는 모습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역시 감사한 친절이지만, 서울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거리감이라서. 아이도 안기기를 거부했다. 이렇게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운 친절을 보며 기사님도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으려나, 아니면 인도네시아 자체가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문화인 걸까, 생각했다.




우붓으로 향하는 밤거리. 차선을 지키는 차가 별로 없는, 어딘지 이상해 보이는 교통체계를 보며 혹시 사고가 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길가의 버려진 듯한 건물들을 보며 스산한 느낌도 들었다. 공항에서 도시로 향하는 길 같지가 않은 느낌이랄까. 만일 우리가 낮에 도착했다면 느낌이 또 달랐을까? 도착했다는 설렘보다는 빨리 숙소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보려 노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의 풍경이 어느덧 우붓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의 숙소. 늦은 시간이라 체크인을 못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바로 직원이 나와서 환영해 주었다. ‘발리’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하얀 꽃(플루메리아)들이 바닥에 무심히 툭, 툭,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잔뜩 신이 나서 꽃을 줍더니 내게도 하나를 줬다. 그 꽃을 귀에 꽂고 체크인을 마치고, 예약한 방으로 향했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드디어 “발리 첫 번째 집” 도착이다!


하루를 꼬박 이동하는 데 쓴 우리는 너무 피곤하여 씻는 데 필요한 짐만 대충 꺼내 씻고 바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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