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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Aug 09. 2020

고백을 망설이는 이유

결말이 좋지 않을 거라면, 시작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아주 먼 길을 돌아가다 누군가 울음을 참는 소릴 들을 때, 잠시나마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잠을 참고 기다리고 있어요. 어디론가 데려가 줘요. 나날이 저무는 나의 거리에서


- 쏜애플 '은하' 中


  좋아한다. 좋아한다. 너를 좋아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2년간 짝사랑했던 그녀를 앞에 두고 속으로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좋아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지금 내가 말을 내뱉은 게 맞는 건가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미안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백을 받아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가 내 손에 쥐어준 딸기맛 막대사탕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가 우리 집에 두고 갔던 교복을 쇼핑백에 담아 그녀의 집 앞에 가져다 두었다. 현관문 앞에 옷을 두었으니 가져가라고 문자를 보내자 알겠다는 답문이  돌아왔다. 인사를 건네고 싶지도 않았고, 아쉬운 소리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비상구 계단에 30분을 앉아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그녀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몇 번 고백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 저질러버린 고백은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일방적인 사랑고백은 항상 실패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타율과 상관없이 자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 혼자 속앓이를 하는 일이 잦다. 그래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두지 않고 있는데 나 역시 끌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면, 고백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 그래서 아무리 그녀가 좋아도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그녀가 나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내 끌림의 지속시간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은 내가 악역이 될 거라는 생각. 그래서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때, 그녀가 나를 계속 좋아하지 않도록 힘써야겠다는 생각.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운명처럼 앞에 나타날 리 만무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지만, 운명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은 누군가가 애처로워질 거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빈집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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