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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09. 2018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지 못했을까

큰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게 묻는다

  날이 저물었다. 저녁 6시 30분에 맞추어 둔 알람은 오히려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줄 뿐, 내 잠을 깨우지 못했다. 어쩌면 눈을 감는 순간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 나는 매번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얕은 잠은 오히려 나를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축제를 앞두고 전교생이 들떠 있었는데, 한 선생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내게 공연 기회가 찾아왔다.

  축제 당일 날, 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불렀고 며칠 뒤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내가 누구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그 누군가가 맞았다. 동아리 친구의 도움으로 나는 그녀와 단 둘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고백한다면 고백을 받아주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얼마 뒤에 우리 둘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는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었고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을 뿐이었다.      


  첫 연애였고 처음 느껴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내 생일날, 그녀는 반 친구들에게 부탁해 아주 큰 롤링페이퍼를 만들어서 생크림케이크와 함께 선물했다. 가끔씩 쉬는 시간에 찾아와 몰래 선물을 주기도 했다. 영화관에서는 내 얼굴을 쳐다보느라 영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그녀의 자취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취방 대신 자주 찾아갔던 건물 옥상에서는 수능이 끝난 후에 나와 같이 등교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나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당시에는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그녀를 만나면 자꾸 중학교 때 짝꿍이 떠오른다. 죄를 짓는 기분이라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그건 핑계였다. 그녀가 주는 사랑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내 그릇이 크지 못했던 탓이다. 그리고 사랑을 다 담지 못한다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저울은 항상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녀의 사랑이 더 크다는 이유로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면, 내 사랑이 더 컸을 경우에는 내가 그녀의 이별통보를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겨 이번에도 사랑받지 못했다며 혼자 가슴앓이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을 고결한 감정이라 믿는 사람일수록 연애를 어려워한다고 했다. 내 감정은 나만을 바라보는 이에게 주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았다.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나는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이다. 옹졸하고 한심하다. 사랑을 정의할 수 있다고 믿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가치를 낮추는 중이다.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자세가 나를 점점 더 깊은 고독으로 안내한다.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너무 큰 사랑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로소 그때,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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