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도 지구는 돈다

에고이스트에서 관찰자가 되기까지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걸어 다니는 관찰자는 걸어 다니는 빅데이터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3인칭 시점을 즐기게 됐다. 어쩌면 1인칭 시점을 너무도 알차게 우려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순간부터 내리 30년을 1인칭 시점으로 살았다. 좋을 때도 많았고 당연히 힘들 때도 많았다. 지동설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해도 우주는 그대로겠지만 천동설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하는 게 곧 우주멸망이다.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끝나버리는 일장춘몽이니까.


길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은유다.




너무도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었던 시절이, 그것도 꽤 오랫동안 이어졌었다. 그 특권을 기억하지만 그 조바심도 기억한다.


뭐 하나라도 뺏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가장 창피한 에피소드는 학예회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다가 연습 중에 역할이 바뀐 사건이다. 나는 주연을 맡은 것이 너무 당연했던 아이였고 일말의 쑥스러움도 없었다. 내 실력이 형편없어서 다른 친구에게 역할을 뺏겼는데, 하필 친한 친구였다. 이런 이야기에서 보통 나라는 아이는 난동을 부렸겠지만 그럴 정도로 안하무인은 아니었다. 그저 뒤에서 복수의 칼을 갈았을 뿐이다.


세월이 조금 지나, 주인공병에 걸린 내게 몇 가지 시련이 있었고 최악의 시기를 거쳐 전화위복의 시기가 왔다. 그때 나를 좌절시킨 그 친구는 나의 전성기가 못마땅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그 친구를 '초딩따위'로 취급하면서-나 자신도 초딩이었다.-그 불만을 묵살했다. 우리 사이를 눈치챈, 불화의 원흉이 선생님-나를 극심하게 편애했고, 그래서 베프가 화난 상황이었다.-은 친구랑 좀 잘 지내면 안 되겠냐며 부드럽게 설득했지만 그 말이 관계를 악화시켰다. 감히 내 선생님의 눈길을 끌어?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친구를 내 사전에서 지웠다. 원래 베프와 질투는 한 몸인데 그걸 누군가 눈치챈다면 끝이다. 더 이상 그녀를 질투하지 않고 무시했다. 이제 그녀는 내게 아무도 아니니까.




큰 싸움은 없었다. 가끔 절교하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부분이 드러나서 종종 대세가 되고, 실패를 참지 못하고, 그럼에도 결국 해내는 날들이 계속됐다.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지만 못되진 않았다. 못됨이 드러날 때도 있었지만, 기본 하드웨어가 너그러운 한편 인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나의 완벽한 스펙'에는 세련되게 착한 젠틀함이 포함되었다.


그런 나를 물로 보고 순진하게 착한 멍청이로 취급한 헛똑똑이들은 물을 먹었다. 이를 어쩌나, 난 조용히 복수하는데. 혹시 궁금할까 봐 알려주는데, 조용히 복수하는 방법 중 하나는 조용히 내 할 일을 넘사벽으로 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애초에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은 그릇이 작은 이들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별 볼 일 없는 세계에 묶여버리는데, 그 와중에 욕심까지 많아서 질투를 한다면? 자기 무덤 자기가 파게 될 것이다. 내 손에 피는 물론, 물을 묻힐 필요도 없다. 역시 은유다.




시간이 흘러 관찰자 역할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왔다. 주인공이 지겨웠거나 타입 캐스팅이 지겨웠을 것이다. 어차피 이런이런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정해져 있다. 드라마에서도, 인생에서도.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싶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암시했듯이, 내 연기력이 꽝이라. 타고난 미인이었어도 몇몇 배우들처럼 매번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어쩌면, 덜 예쁜 건 행운이었다. 다른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관찰자 라이프의 시작은 아이러니했다. 소설가라는 꿈을 잠시 미루고, 약 1년 동안 진짜 별거 안 하고 놀았다. 아마 평일에는 스릴러 소설 또는 한국 사극을 보면서 취향을 확정했을 것이다. 주말엔 춤추고, 뭐. 아직 춤과 어색한 결별을 하기 전이었다.


탈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뮬레이션으로 소설을 쓰기보다는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자는 암묵적 다짐이 있었다. 그 고민의 일부가 춤을 좀 줄여보자는 것이었다. 춤이 내 세계를 한정시키고 있었기도 했다.


다른 세상, 뭐. 해보지 않은 모든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해볼 만한 것들은 무한했다. 머지않아 미국 여행이라는 목표가 생겼고, 덕분에 고난의 시간이 빨리 갔다. 그땐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3년 동안 여행 준비하고, 여행 다녀와서 또 3년 동안 여행 준비하고, 여행 다녀와서 또 3년 동안 여행 준비하고 있는 상태.


이렇게 요약된다, 나의 삼십 대가.




이야기를 좋아했고, 이야기 속에 살고 싶었는데 이야기를 짓는 사람과 재현하는 사람 둘 다 놓지 못했었다. 그건 괜찮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넉넉잡아 약 15년 전 까지는 세상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오만했다. 그 후로는 게을렀다. 더 정확하게는 춤을 추고, 춤을 추기 위해 낮에는 보통 사람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벅찼다. 춤이 아니었으면 아마 못했을 것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글쓰기를 잠시 휴업했는데 오히려 생업으로 계속 원고를 썼다. 춤추는 나 자신을 림보에서 구출하기 위해 음악을 좀더 공부하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쳐서 성과가 별로 없었다.


다시 노바디가 되었다. 아니지. 삼십 년 만에 처음 노바디가 되어보니 처음엔 엄청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였다. 그러나 매인 곳이 없어서 여행 계획을 세우기는 좋았다.


이제라도 여행을 좀 해보는 거야.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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