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아바타

아바타, 그리고 덕질의 역사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인스타그램 입성 전으로 잠시 시간을 돌려보자. 우리의 온라인 자아를 대표하는 화면은 그때도 온라인 신분증의 기능을 했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프로필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식별 가능함'이다. 바로 옆에 앉아서 번호나 계정 교환을 하지 않는 이상, 친구추가를 한 바로 그 '친구'가 내 친구임을 알 수 있는 '프사'는 필수다. 카톡의 경우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 페이스북의 경우 함께 아는 친구가 '식별 가능함'에 큰 역할을 하지만 얼굴 사진만큼 직관적이지 않다.


잘 나온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모두가 원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고양이 사진, 아기 사진, 근사한 음식(?)과 상차림, 풍경 속 작디작은 전신 사진 등으로 자신의 근황이나 관심사를 표시한다. 좋아하는 셀럽이나 웹툰으로 세계관을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불특정 다수와 연락을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괜찮다. 상대방인 내 입장에서 바뀌는 프사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고, 그들의 데이터가 모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프로필 사진: 이날 찍은 셀피로부터 미국 여행기가 탄생했다


좀더 시간을 되돌려보자. 올드 밀레니얼, 그러니까 대략 81년생부터 84년생까지(어디까지나 '대략'이다.)를 아우르는 반(half)-디지털 세대라면 페이스북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대는 흔히 '싸이월드 세대'라고도 불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싸이월드에서 프사, 아바타, 심지어 마이룸까지 설정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도 텅텅 빈 마이룸에 무지 내복만 입은 대머리 아바타를 보유한 친구들이 있었다. 한편 한 대학 동기가 화려한 내 미니홈피에 남긴 한줄평에는 '도토리 부자'라는 언급이 (지금도) 있다. 미니홈피를 꾸미려면 도토리, 즉 사이버머니가 필요했다. 귀찮기도 하고 프리첼 유료화를 피해 둥지를 틀었던 싸이월드의 교묘한 상술에 빡치기도 해서 무지로 남겨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배경음악에 목숨거는 감성파였고, 아이덴티티 표현은 프사로도 충분했지만 <심즈> 덕후로써 방 꾸미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진짜 가구를 구입하려면 모양새와 계약서를 갖춘 집을 얻어야 한다. 고시촌 미니룸에 원래있던 가구와 플라스틱 서랍장으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야. 미니홈피 마이룸을 채울 수 있는 도토리 5천원 어치는 대리만족을 하고도 남는다.



시카고 이전에는 공간 욕구를 사이버 세계에 가두어 두었다


최근 싸이월드풍 방꾸미기 어플(이너써클 소셜미디어라고 하던데)도 등장했다. 그리 새로운 기능은 아니라서 아직 들여다보진 않았다. 또한 그전에 메타버스에 들어갔지만 어쩐지 조작이 잘 안돼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여전히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완전한 신뢰를 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조금 다른 성격의 소셜미디어인, 클럽하우스는 정말 좋은 날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라디오에 열광하는 성격이 아니어서일까? 비디오형 인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인스타그램처럼 보이고 보여지는 매체가 중심인 내게 음성기반 미디어는 벅찼다. 기존 클친들(초기에는 이들이 인친, 블친인 경우가 많았으나)과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로만 소통하게 됐다. 여담이지만 이번달에는 내 클럽하우스에서 최대 지분을 차지했던(?) 지금은 인친이 된 '미미시스터즈' 언니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후기 예고)




메타버스가 재미없던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도 가능하지만, 귀찮아서) 주로 오프라인으로 혼자 꾸려가는 <심즈>의 내가 만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편안했기 때문이다. 저가의 어린이용 태블릿 PC에서 스팀버전 <심즈3>를 3년 정도 굴렸더니 더이상 게임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즌을 견디게 해 준 나만의 사이버 부동산들에 더이상 입장할 수 없게 되었다. 보다 쾌적한 글쓰기를 위해서 아이패드를 사기로 (7년 넘은 폰보다 3년된 태블릿을 먼저 교체하기로) 결심했는데, 방꾸미기가 다시 유행한다고 하니 갑자기 <심즈>를 굴릴 수 있는 노트북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심즈> 덕후라면 환장하는 라임색 다이아몬드(?)


아이패드는 PC 게임 구동이 복잡하니까 (윈도우가 깔려있는) 기본 사양의 PC를 먼저 사야겠다는 심리다. 어차피 글쓰기는 무선키보드로 이루어질 것이고 약 1만원에 구입한 현재의 무선키보드도 업그레이드 해야한다. 그런데 이미 손에 익어서 딱히 불편한 건 없으니(사실 오타가 많지만) 당장은 계획이 없다.


아바타가 대신 인생을 살게하는 게임을 취미 생활에 중심에 둘 정도로 내게 아바타는 가장 오래된 친구다. 나를 닮았지만, 내가 못한 것을 하고 내가 못 가진 것을 갖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실패도 기꺼이 감수하는 내 친구. 스팀에는 2019년에 설치한 <심즈3>와 <프린세스 메이커5>가 깔려있는데, 두 게임 모두 CD를 먼저 구매했고 스팀으로 이중구매했으며, 두 게임 모두 시리즈의 1탄부터 해왔다. 그러니까 나는, 아바타 덕후이기도 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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