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MZ세대라는 말을 쓰세요?
나는 세대론이 싫다. 세대론을 펼치고 싶어하는 내 안의 분석적 자아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되새기는 전설(?)이 있다. 고대 동굴 벽화에 이런 낙서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아마 어떤 선생님이 웃기려고 해준 이야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확실히 출처를 모르겠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저 이야기를 들은 건지, 읽은 건지도 모르겠고 타인을 통해 각인된 정보인지 내가 지어낸 말인지조차 모르겠다. 세월을 인간의 알고리즘을 뭉뚱그린다.
그러니 부디, 제발 서른이 넘었다면 반드시! 독서와 외국어를 타이트하게 생활화하라. 그렇지 않으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는 건 물론이고 반치매 상태로 반평생 이상(100세에서 30세를 빼면, 최소 70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베이비붐 2세대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오리지널 베이비붐 부모님이 나름 버티다(?) 이십 대 후반에 낳아주신 장녀이다. 그래서 문민정부(?)와 디지털 0.5세대다.
디지털 덕후들이 모여있으면 1000% 아날로그 세대이자, 디알못이지만 평균 연령이 내또래 이상이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는 디지털 담당이다. 한번은 시니어 프로젝트와 같은 사무실에서 파트타이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디지털의 신이었다.
디지털 세대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이론은 앞서 언급한 동굴벽화설과 병치하면, 모순이다. 젊은이들은 새삼스럽게 이기적인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비록 내가 (주로 과외하면서) 관찰한 386세대(대체 언제적 30대냐고!) 또는 586세대(심지어 이제는 60대다!)의 가족관계로 유추해보면, 자녀는 많았으나 육아론이 희소했던 이전 세대에 비해 60년대생 부모가 90년대생 자녀를 우쭈쭈한 건 맞다.
그러나 나의 부모가 그보다 덜 한 것도 아니고, 부모의 부모가 그보다 덜 한 것도 아니다. 어떤 가정은 수백년 전에도 그랬고, 어떤 가정은 수십만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것이 동굴벽화설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 등장하는 선자의 집안도 그랬다. 선자의 아이(지금 읽고 있는 부분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이지만)와 동갑인 나의 할머니도 본인의 부모에게 사랑을 받은 존재로 알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디지털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있지만 그 세대가 꼭 디지털과 독점적, 태생적 관련을 가지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만 유독 그 관계가 끈끈하다. 내가 바로 그 세대다. 문민정부와 디지털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 시점에, 자아를 형성한 세대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모가 사랑을 갑자기 많이 주기 시작해서 버릇없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민주화 정부와 함께 뒤늦게 '개인'이 존재하기 시작한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도 되는 세대였기 때문에 자기중심적 사고가 최초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 시절에 이미 성인이 된 70년대생 선배들이 '신세대'라는 타이틀을 가져가셨다. 그래서 우리는 N세대,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된 것이다.
우리를 N세대라 부를 때, 동시대의 미국인들은 M세대, 밀레니얼로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말은 뒤늦게 수입되었다. 이제 M세대가 신조어이고, N세대는 사어다.
다음 세대라니,
그럼 그 말을 평생 쓸 줄 알았어?
밀레니얼 역시 바로 그런 의미다. 새천년의 주역이 될, 디지털 1세대 또는 0.5세대. 내가 0.5세대라 표현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나 자신이 디지털 덕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기본 하드웨어가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날로그로 모국어를 배웠고 다음 세대인 디지털 원주민들은 디지털로 모국어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은 삼십 대 이후로 계속 업데이트를 해서 부족하게나마 디지털 원주민인 90년대생에 근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 디지털 덕후가 아닌 내 친구의 99%는 업데이트 중이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세대로 편입되면 아날로그인이지만, 아날로그 세대로 편입되면 디지털인이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폴리매스가 아닐 수 있겠니?
이전 세대보다 '개인'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표현은 성격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게다가 미국의 M세대에 비해 한국의 N세대는 (더 어린데도 불구하고) 훨씬 보수적이다.
부모가 pre-386세대인 베이비붐 오리지널이고 그 세대에서 (나름) 가장 급진적인 나의 부모가 20대에 결혼 및 1남 1녀 출산까지 클리어한 것을 보면 말 다했다. 이 분들이 8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 분들이 손주를 얻을 확률을 0에 수렴한다.
미국에서도 M세대가 보는 Z세대는 에일리언이라고 할만한 존재이다. 한국의 N세대는 의외로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하는 중이고 이 중에는 나처럼 88만원 세대와 3포 세대를 거친 사람도 있겠지만, 존버해서 내집마련을 한 사람도 있다. 일단 기성세대로 안착하는데 성공하면, 다음 세대의 눈에는 꼰대로 보일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그 호칭을 억울하게 느끼지도 않는 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Z세대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친구들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느끼고있기 때문일까? 꼰대라고 불릴만큼, 가진 것이 있다는 건 일면 행운이다.
한편 꼰대인 것이 억울하다는, 옛날 신세대 선배님들은 MZ세대라는 말이 안되는 말을 만들어냈다. 뭐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칼퇴 같은 말은 아직 Z세대가 취업하기 전부터 쓰였으니. 그러니까 우리는, 에일리언은 아니지만 최초의 개인주의자였다. 틱톡 세대는 아니지만 직장 선배들과 소셜미디어를 공유하지 않는 세대. 그런데 그거 알아?
개인주의자는 개인이 우선이기 때문에 세대로 묶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 말야. 게다가 꼰대임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보수적인 한국의 M세대랑 묶이는 건 같은 세대인 나도 싫은데 훨씬 젊은 Z세대 후배님들은 얼마나 싫겠냐 이말이야.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