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픽션의 형식으로 미국 이민 1세대의 속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브로드웨이에서 목격한 한인교회 전도사, 수선집을 겸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하버드에 보내는 부모들과 영어를 거의 못하는 한인 커뮤니티에 편견이 있었고 그에 대한 뜨겁게 부끄러운 자각이 시작됐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고생할거면 그들처럼 세계를 개척할 기회라도 가졌어야 할 나의 할머니들이 생각나고, 교포 2,3세로 영어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경험치와 그 유산를 동시에 부러워하던 짧은 과도기를 거쳤다.
특히 영어에 대한 욕구가 '파도타기'를 했던 얼마전까지도 교포나 이민자에 대한 주제는 불편했다. 게다가 여성의 결혼이민은 <작가의 말>에도 언급되는 것처럼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다. 이주하는 여성들의 원래 국적이 달라졌을 뿐.
예지몽을 통해 일생의 작품(내가 쓰게 될 장편 판타지 소설, 2023년 6월 현재 집필 중)을 품은 직후에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 집안의 배경과 묘하게 겹치는 인물이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기에 더 빨리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도 스쳐갔지만 그보다 이 시점, 이 타이밍에 행운을 느꼈다. 역사소설이면서도 인물의 여행경로, 동선과 하와이의 지역별 분위기를 간접체험하는 즐거움이 역마살에 불을 지른다.
어진말과 조선을 벗어나서야 말과 글의 위력을 제대로 안 버들은 공부하기 위해 태완과 결혼하는 것이 정말 잘한 결정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55p, 알로하 포와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334p, 와히아와의 무지개
자기 이름보다 성을 먼저 쓰는 한인들은 개인보다 가족을,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 말이다.) 날짜를 표기할 때도 연도가 먼저다. 오늘보다 과거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343p, 판도라 상자
훌라 선생님은 춤뿐 아니라 알로하 정신과 레이의 의미도 가르쳐 주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365p, 판도라 상자
하와이 그리고 LA를 거쳐 미국에 자리잡은 한인들에게 무심했다.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로 이 땅의 이주 외국인과 이방인들에게 대체로 무심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평균적인 마음이 은연중에 특정 지역과 특정 민족(계보)을 우선시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