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더 셜리 클럽>
내가 등장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가장 정직하게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
-219p, 작가의 말
어린시절 일기에 쓰고도 한없이 되새기던 '할머니와 고구마와 동치미'가 생각난다. 셜리 할머니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행운과 불운 사이의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설희'의 워홀 이야기.
<더 셜리 클럽>이 포함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는, pre-82년생 조남주 작가,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젊은 작가가 되었다'고 하시는 장강명 작가가 포함된다.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니 두 분은 70년대생이고 <더 셜리 클럽>을 쓴 박서련 작가는 89년생임을 알게 되었다. 아, 이게 장강명 작가가 말씀하신 '젊음'의 온도차인가?! 현대의 젊음이란 심리적인 개념이지만 같은 '젊음'으로 부르기에는 어쩐지 서로서로에게 죄송한(?) 기분이 드는 걸.
젊은 작가들은 조금 늦게 데뷔한 70년대생부터 (아직 많이 못읽어서 죄송함) 에세이로 접했던 90년대생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읽어본 세 분(같은 시리즈로 읽지는 않음)의 교집합이 있다면, 담담하고 담백하고 덜 처절하게 진솔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샬럿은 화가 많아'라고 지적했던 부분(샬럿 읽은지는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남)에서 괜히 내가 울컥했던, 한국 여자라면 뱃속에서부터 안고 태어나는 '한의 정서' 말이다. 그걸 좀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또는 살짝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추세다. 여성작가 뿐만 아니라 여성인물을 묘사하는 작가를 포함하여. 이후에 읽은 다른 책들도 이와 같은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한다.
읽는 속도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책이 출간되는 속도가 느렸고 젊은 작가가 없어서, 직접 책을 써야 겠다는 결심을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덕분에 더 많이 읽고, 뭐라도 써보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책이 너무 많고 작가라는 문턱이 또 달라졌다. 읽힐 기회가 생겼지만, 많이 쓰고 잘 써야 한다.
'그냥'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97p
"No worries."
호주 사람들이 유어 웰 컴 대신 쓰는 이 인사가 처음으로 완전히 이해되었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127p
언젠가 또 누군가 불쑥 내게 말도 안 되는 모욕을 하는 일이 생기면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DON'T YOU DARE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이미 한번 일어난 덕분에. -189p
쿼카는 전 세계에서도 호주에만, 호주에서도 퍼스 앞바다 로트네스트섬에만 사는 작은 동물이었다.
-197p
나도 호주에 와서는 자주 실제보다 훨씬 어린 나이로 오해를 받아서 불편할 지경이었는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200p
<더 셜리 클럽>을 읽으면서, 여행과 문학이 주는 위로를 담뿍 받았다. 퇴사나 이직과 콤보가 되는 경우가 많은 해외여행에서 대리만족과 공감을 느끼면서도 이야기가 조금은 드라마틱하길 내심 바란다. 소설 같은 여행기, 여행기 같은 소설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