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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25. 2024

이 슬픔에 가장 가까운

단편소설 <나머지정리>

무엇을 가장 사랑했는지 자문한다. 꼭 한가지여야 할 필요는 없다. 이게 중요하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변화 그 자체일수도 있다. 역사는 생물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문장을 사랑한다. 표현 수단 그 자체의 경지를 사랑한다.


회화의 최대 매력은 무한가지 색으로 표현되는 가능성과 그 무한성, 그 무한함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과 그 조합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인데, 이 세계의 외부는 무채색인가? 검은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다. 언어라는 개념은 개념이라는 정의(?)로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글씨 그 자체와 일치하지 않는다. 글씨는 글씨대로 그림의 연장선이 아닌가. 글씨를 표현할 수 있는 색은 그림과 마찬가지로 무한하다. 의미가 형태를 지배해서 그렇지.


굳이 말하자면 서체도 중요하다. 일부러 멋을 냈는데 기본 서체나 기본 편집보다 못하다면 그런 치장은 사족이 된다. 가장 참기 힘든 조합은 주제가 예술인데 (특히 도록!) 디자인이 말도 못하게 후진 인쇄물이다. , 됐고. 그럼 인쇄업을 하던가, 귀결될  같은 생각들이다. 실무의 어려움을 안다고  수도 없지만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니.




흥망성쇠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 그 자체를 삶으로 끌어안는다고 해도, 망하면 짜증나고 쇠하면 우울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를 변태라고 부르는 표고도 어쨌든 분류상 사람(?)이기에 악재에 상처받고 위축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왜 부끄러움은 항상 나의 몫인지, 표고는 의아했다.


영신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그 방향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목표를 가질 수 없었다. 원래도 별 생각이 없던 중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들과 평생 부비적거리고 싶었다. 그런 밑바닥에 놓인 유산지 같은 감정마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곳에서 살 수 있을까.




표현수단을 찾고 싶었다. 손에 물감이 묻고 칼자국이 나는 것은 상관없었다. 까다롭다면 까다롭고 털털하다면 털털하게 살아왔는데, 먹고 입고 씻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보통 산만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루틴으로 정비하고, 라이프스타일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왜 삶은 점점 복잡해지는 걸까?


맥시멀리스트 같지만 그런 것은 감히 한번도 꿈꾸어보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정신적으로' 고려하는  뿐이지, 그걸 실행해보려고  적은 없다.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기저에는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만 (비유적으로) 사랑했는데 그가 무심히 떠나버리면 남은 인생은 그의 부재가 남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데  바쳐야 한다.


이미 그 소용돌이에 있지만. 이미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남은 삶의 전부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자. 섬광처럼 나타나 각인되어버린 장면들. 그대가 내게 마음을 열었던 그 순간 그대 얼굴에 피어나던 빛, 향기로 기억되는 목소리, 기분 좋은 두려움. 그 아름다운 장면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가식적인 것들을 도려내면 될까?


사랑했던 날들, 슬퍼했던 날들을 소환하는 이야기는 심장을 찌르지만 우회적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야기를 찾는다. 이 슬픔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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