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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05. 2024

있어보여도 행복하지 않아

카페는 화려했다. 불안한 충격을 주는 그래피티는 아니었다. 이곳은 딱 우성의 취향이겠다. 복선이 또 한마디 하겠네, 강유는 30분 안에 우성의 인스타그램에 바쳐질 새로운 카페의 문을 열다가 뒤늦게 복선을 떠올렸다. 복선은 디테일을 볼 줄 모르지만 일단 사치스러운 공간을 추구하는 편이다. 진짜 19세기 고가구의 모양만 따라한, 앤틱스타일 가구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강유의 무난하고 키치한 빈티지 취향에 반발하지 않는다. 대신 우성의 지나치고 노골적인 괴랄함에 비명을 지를 때가 있다. 우성이 좋아하는 아방가르드풍 팝아트적 공간을 제대로 갖추려면 앤틱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물론 뭐든 제대로 갖추려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차이를 알아보려면 면세점에서 입생로랑 립스틱을 선택하는 취향과 다른 차원의 안목과 계획, 예산이 필요하다. 복선은 대체로 짹짹거리다 입생로랑 립스틱을 꺼낸다.


"우와, 언니 여기 어떻게 찾았어?"


카페 주소를 카톡으로 보낸 후 약 7분 뒤에 도착한 우성의 얼굴이 활짝 폈다. 강유는 만족했다. 누구 하나 행복하면 그걸로 된 것이다. 강유는 우성의 밝아진 얼굴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이제 복선의 지저귐을 한 귀로 흘리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


"지나가다 보여서 들어왔어. 너 좋아할 거 같아서."  

"너무 좋다. 여기서 작업하면 전투력 상승할 듯."

"그래그래, 여기 커피도 안 비싸더라."

"이렇게 좋을 수가. 언니, 커피는 내가 살게."

"좋지."


우성은 쌍따봉을 만들면서 키오스크로 갔다. 둘 다 쪄죽뜨(쪄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파라서 일단 뜨아 두 잔을 결제하고 돌아서는데 복선이 막 문을 열었다. 아까 강유에게 스쳤던 생각이 우성의 머리로 순간이동했다. 커피를 사주고도 욕먹을 것이냐, 욕먹을 게 뻔하니 커피를 안 사줄 것이냐. 


"너 아아 마실 거야?"


일단 키오스크 앞에 서 있는 것을 들켰으니 복선의 반응을 보고 생각해보려 한다. 복선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비명을 지를 타이밍인데?


"어어."

"아아가 아니구 어어야?"

"아이스 민트초코."


우성은 자신의 만족감을 좀 더 편하게 누리기 위한 추가 비용이라 생각하며 음료 세 잔을 결제하고 돌아왔다. 복선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그보다는 값어치가 있는 것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 있어서, 비싼 음료를 대접받겠다는 것은 온순해지겠다는 시그널로 읽히기를 바랐다. 우성이 자리에 와 앉는 동안 복선은 강유에게 손을 맡기고 새로 받은 네일아트를 자랑하고 있었다.




복선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오래 산 만큼 오랜 시간 스타일을 연구하고 타인의 스타일을 스캔해 온 강유에게 예쁘장하되 개성이 없는 존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들의 하이패션에 익숙한 우성에게 일반인 얼짱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복선의 욕망은 부대꼈다. 우성은 자신의 패션보다 인테리어와 환경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기에 친구들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는다. 때와 장소에 적합하고 자신의 매력을 최대화하는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강유는 언제 봐도 행복하다. 그러나 복선은 차려입을수록 태가 무너진다. 우성에게 그 얘기를 들은 후로 강유도 복선이 다르게 보였다. 


"관종이라고 감각이 좋다는 보장은 없지."

"우리 다 타고난 경우는 아니잖아? 언니는 경험치가 쌓인 거고."

"그래, 맞아. 나는 많이 입어봤어. 그리고 빨리 배우지."

"나는 내 몸에는 과감한 시도를 안 하는데 하더라도 일단 공주풍은 아닐 거야."

"나는 샤랄라한 거 잘 어울리는데 내가 그게 싫다?"

"언니는 며느리처럼 입어도 CEO의 포스가 나오잖아. 적당히 나풀거려도 선녀 같을 걸?"

"진짜 진짜 있어 보이고 싶었는데, 있어 보여도 별 거 없더라."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의욕이 넘쳤다. 강유는 다양한 업계에서 다양한 역할에 적응해 보는 동안 삶의 비밀을 터득했다. 그보다는 터득해 가는 중이다. 다만 지금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미 알고 있거나 영원히 모를 것 사이에,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무한대인데 내 몸에 붙일 수 있는 기술이나 태도를 필요한 순서대로 발견할 수 없다. 그저 잘하고 싶은 것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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