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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08. 2024

고립된 자들의 자기만족

젊어서 거침없이 욕망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축복인가! 그는 젊음에 더욱 자신을 가져도 된다. 젊어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 사람들만 가능한 신기록을 수립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것도 유년기를 포기하고 얻어낸 고진감래일 뿐, 그 창창한 젊은이는 소년등과하고 조기은퇴하겠지.  


성공했다는 감각에 온전히 스며들고 자신감을 여유롭게 관찰하고 주고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삶에 대한 입장이 뚜렷해지면 대외적 성공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한다.* 진정한 성공과 젊음은 양립불가능하다. 젊음이란 다른 의미로,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이며 아직 접근하기 전이다.




강유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료들은 그녀에게 의지한다. 지나치게 복잡한 일을 할 의무도 권리도 없으나 약간의 어려움은 그녀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동료들의 존경이 더해지기에 적절하게 활용한다. 동일임금 동일노동 역시 젠더와 인종처럼 실체를 파헤칠수록 양파처럼 사라지는 개념이다. 자리만 지키고 최저시급을 받으면 꿀알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리를 지키는 일이 가장 쉬운 사람이 있고, 가장 어려운 사람이 있다. 강유는 후자다.


인정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럽지는 않다. 강유는 뭐든지 더 잘하고 싶다.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나 인간관계의 매개가 되는 미적감각 연출, 자기 관리와 취미생활도 더 잘하고 싶다. 연두와 초록처럼 다르게 부를 수 있을 만큼 더 무르익고 싶다. 저평가에 대한 컴플렉스는 초월했다. 더 잘하고 싶은 것을 파고들다 보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목표는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그렇다고 초조하지는 않다.   


실제로는 훨씬 거리가 좁혀졌으나 그동안 너무 아득하기에 오히려 가까워 보였음을 깨닫는다. 지금 더 멀게 느끼는 건 그만큼 현실 거리 감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직 손에 닿을 필요는 없다. 손에 닿았을 때 뛰어갈 순발력과 움켜쥘 악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화중지병이다.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다. 시작하기 전보다 시작한 직후에 품이 더 많이 든다. 미리 사력을 다한 상태로 시작하면 금방 망한다. 많이 망해봐서 안다.




잘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 매일 더 잘하려고 한다. 컨디션이 좋은 아침에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걸 시킨다. 최고의 집중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불식간에 선택한다. 장기적으로 성장폭이 도드라지고 레벨업에 유리한 미션을 부여한다. 무엇이든 성장할수록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되는 쉬운 과제를 병행한다. 시장조사 혹은 상권분석, 인테리어, 영감을 주는 전시와 공연, 무엇보다도 관련 자료를 다방면으로 수집한다. 검색에는 이골이 났다. 지난 세기의 책이 더 많은 도서관보다 현재 유통되는 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고서점을 선호한다. 영화, 넷플릭스 등의 OTT는 우성이 골라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소셜미디어, 특히 유튜브는 검색의 경로에서 꼭 필요할 때만 참고한다. 깊은 정보와 코드를 추출하는 것이 목표다. 쇼츠는 무용하다.


강유는 우성과 복선의 단단한 젊음과 그만큼 단단한 컴플렉스가 자칫하면 고집으로 발전(?)할까 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천성 혹은 요즘식으로 MBTI, 그리고 세대적 특징(에 부합하는 애들은 아니지만)을 고려하면 오지랖일 수도 있다. 강유는 F지만 우성과 복선은 T이기에 똑 떨어지는 답을 원한다. 고작 서너 살 차이임에도 아직 어려서 겪어야 할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강유의 경험에 의하면 컴플렉스는 공감과 치유, 정면돌파를 병행해야 벗어날 수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복선은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주변의 기대가 커서 초조하다. 막연히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손에 쥔 것이 없기에.     


우성은 꿈에 그리던 영화 블로그를 일정 규모 이상 성장시켰으나 다음 단계까지 명료한 계획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 날카로워진 상태다. 우성 자신은 기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복선이나 강유보다 표출하는 감정이 훨씬 다양하다. 강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혼자 간직하는 편이고, 복선은 즉흥적인 대신 뒤끝이 없다. 그에 비하면 매번 복선에 대한 서운함 또는 분노를 토로하는 건 우성이다. 고해성사하듯 강유에게 털어놓고 복선에 대한 마음을 초기화하려는 우성의 진심을 알기에 귀가 아파도 들어주거나, 듣고 흘리거나, 듣는 척하면서 자기만의 몽상에 빠진다.  


(계속)





*도리스 메르틴, 배명자 옮김, <아비투스>, 다산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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