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시그니처를 통해 짐작하는 인상파 계보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할리퀸>이라는 작품으로 시선강탈을 한 이 작가는 폴 세잔이다.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동안 그의 스타일은 모르고 살았다. 내셔널 갤러리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그림 중에서 세잔의 이름표와 함께있는 그림과 세잔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모아서 폴더를 만들어봤다. (만드는 김에 다른 작가들 중에서 좀더 공부해보려고 하는 미로, 샤갈, 쇠라 등도 만들었다.)
그의 그림은 주로 모네-고흐 존에 있었고, 르누아르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어느 정도는 구별이 가능했다. 반면에 세잔 스타일인데 자세히보면 세잔이 아닌 요소가 강하고, 결정적으로 그림이 걸린 벽의 색깔이 다른 경우(!)에는 일단 제외했다. 이 모네-고흐 존에는 익히 알려진 모네와 고흐, 드가, 고갱, 르누아르 등이 있는데 완전히 순서대로 촬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순서에는 오버랩이 있다.
모네와 세잔이 뒤바뀌거나 고갱과 르누아르가 뒤바뀐 경우(는 거의 없지만) 폴더로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그림들을 확인하기 위해 핀터레스트(이후에는 구글) 이미지 검색 기능을 사용하고 있지만, 작가의 대표작이 아닌 경우에는 다른 업로더들도 사진만 올리고 작품명을 올리지 않아서 서로 마찬가지인 상황, 어정쩡한 집단 지성이 되어버린다.
핀터레스트로 대부분의 작품을 미리보기 했었고, 일부는 블로그 썸네일로 사용하기도 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데이터가 무궁무진할 것 같지만, 정작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실물영접한 그림이 이미지 검색에서 제목 없이 한 건 밖에 안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주요 작품이 거의 유럽에 있는 세잔의 경우, 미국에 걸린 대표작이 아닌 작품들의 정보를 구하기 쉽지는 않다.
내가 보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촬영해서 묶어놓은 세잔의 그림들은 그나마 유명한 인물화, 세잔의 시그니처로 통하는 사과 정물화 시리즈와 다른 버전의 세잔이 그린 듯한 풍경화가 있다. 노년에는 누드화도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그림을 찾아보니 피카소의 프로토 타입이었다. 두번째로 세잔의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피카소가 유일한 스승으로 여겼다네.
피카소와 고흐가 동시에 느껴지는 세잔의 그림에서 약간의 우울함과 절제하려고 애쓰는 욕망이 보였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에밀 졸라와의 비극적 결말은 더욱 안타까웠다. 예쁨보다는 드러낼 듯 말듯 스며드는 고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라서 그런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근현대 미술의 양대산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흐와 피카소의 특징을 모두 가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세잔 그 자체의 시그니처가 제대로 빛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박혀버린 그 이름. 그거면 성공한 것 아닐까.
이미 나올만한 충격적인 예술은 다 경험해 본,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최초의 시도보다는 이미 있는 것의 조합이라도 현대인의 공감대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기존의 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1%의 변형된 스토리가 더 필요한 것 같다.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파격적임을 너무 내세우기보다는 그 필요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