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레베카 스톤> 24화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전편에서 이어짐)



이번에는 베키와 폴이 시계방향으로, 조르주는 반시계방향으로 건물을 한바퀴 돌았다. 입구는 서북쪽에 숨겨놓은듯한 기둥 속 철문 하나 뿐이고 단단하게 잠겨있었다. 시간은 이미 마감을 초과했다. 어둠이 드리운 숲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상한 행동을 하기에 더욱 부적절한 시간이 오고 있었다.




조르주의 연락을 받은 마르셀은 헨리크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헨리크를 소외시켜봐야 사건만 더 복잡해질 뿐이다. 게다가 미나의 후계자인 베키와 절친이니 머지않아 이 세계를 내부자만큼 알게될 가능성이 크다. 미나와 상의해볼까? 애초에 미나가 베키에게 소개시켜준 아이라는 건 어쩌면 헨리크의 집안에도 초월적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메러디스의 집안은 성실한 문지기일 뿐일지라도.


“줄리앙은 마르그리트가 입양한 아이였어.”

“알고 있어요. 미나 이모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줄리앙이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꼈거든요.”

“친부모는 나도 모르지만 퇴마하는 사제의 숨겨둔 아들인 걸 누나랑 측근 두 명 정도만 알고 있었대. 누나가 수녀였을 때 수녀원 근처에 살던 제르멘이라는 여성과 진지한 관계였거든. 그런데 누나와 제르멘의 밀회가 발각되어 누나도 파문당하고 누나의 비밀을 지켜주던 노수녀 선생도 같이 파문당했어. 그 선생의 본가에서 줄리앙을 몰래 키우고 있었지.”

“줄리앙이 얘기한 할머니와 다른 엄마가 노수녀님과 제르멘인가요?”

“그럴거야. 줄리앙의 출생배경을 아는 사람은 그들 뿐이니까. 난 누나가 상속변호사에게 맡겨둔 편지로 알게 되었고. 미나와 조르주처럼 이세계를 읽는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아도 곧 알게 되겠지. 어쩌면 줄리앙의 보호를 받는 르네도. 그들은 영매거든.”

“저희 부모님도 어쩌면 보호하는 쪽이겠네요. 할머니가 아빠를 낳고 불가에 귀의하셨다는데 지금까지는 그게 미나 이모나 선생님과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르셀은 말없이 헨리크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지었다. 역시 내부자였다. 미나가 베키와 폴 다음으로 아끼는 아이, 베키의 동생들을 대신 데리고 다니는 아이, 줄리앙을 지켜봐주는 아이. 그 모든 조건에도 티나지 않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이.


“확실히 넌 보호하는 쪽이네.”

“줄리앙도 그런가요?”

“타고난 퇴마력이 있는 듯해. 르네를 따라다니는 악령이 줄리앙 근처로 오면 한동안 기력을 상실한다고 했거든. 르네 본인은 아직 모르지만.”

“폴과 선생님을 연결한 이유가 따로 있었네요.”

“폴은 베키에게 보여주려고 맡겼지. 일석이조나 일석삼조 아닐까? 베키는 폴을 발견하고, 조르주는 베키를 발견하고, 줄리앙은 르네 가족을 지켜주고. 그런데 르네가 자주 안 와.”

“제르멘은 어떻게 됐어요?”

“참, 원래는 제르멘이 입양을 추진했는데 제르멘도 수녀와 사귀는 걸 부모가 알게 되어 미국으로 추방유학을 가게 되었어. 누나와 난 어린 고아들이어서 의지할 곳은 변호사와 가정교사밖에 없었지. 막 스무살이 된 누나는 줄리앙을 여기 데려와 살면서 자신의 친아들로 출생신고를 정정했어. 제르멘은 소식이 끊겼고, 노수녀는 얼마 후 돌아가셨어.“


헨리크는 미약한 영력으로 짐작했던 줄리앙의 배경을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차가운 귀공자라고만 생각한 마르셀과 줄리앙의 깊은 외로움이 헨리크에게도 겨울 바람처럼 사무치게 파고들었다. 그들이 오랜 시간 가꾸어 온 사랑은 부자, 형제, 친구, 연인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누나와 단둘이 남겨진 마르셀은 이제 줄리앙과 단둘이 남겨졌다. 줄리앙의 부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리라.




조르주와 폴은 베르트 모리조에게, 베키는 초희에게 돌아왔다. 시간이 촉박했다. 도시는 밝았으나 미술관의 퇴장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베키가 벽을 통과해 눈 앞에서 사라진 직후 폴은 눈에 띄게 떨기 시작했다. 조르주는 폴을 안고 지도가 나타났던 그림을 응시했다.


”줄리앙이 많이 위독해요. 아까보다 더.”


폴이 먼저 지도를 발견했다. 조르주는 지도 위 줄리앙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자리에 표시되던 빛이 희미해진 것을 확인했다. 직관적이긴 하나 이것의 의미가 줄리앙의 생명력인지 확실하진 않았다.




초희를 다시 만나려면 심신이 안정되어야 했다. 베키는 마음의 요동을 가라앉히고자 서두르려는 발걸음을 의지로 늘어뜨렸다. 여기서 뛰면 안 돼. 처음 이곳에 도달했을 때 미술관의 법도 따위는 생각도 안 했지만 포털 안에서만큼은 차분하게 빛을 찾아 들어왔었다. 복도와 전시실에서 무슨 짓을 하든 포털 안에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했다. 그건 들어와보면 알게 된다. 그래,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 베키는 폴을 다시 볼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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