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도로

<레베카 스톤> 23화

(전편에서 이어짐)



마르셀은 호수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줄리앙이라면 이곳에서 어떤 모습을 할지 상상했다. 헨리크는 줄리앙과 마르셀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목격하기 전에는 자신이 마르셀을 경계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줄리앙이 조금은 장난스러운 미국 경찰 같은 분위기라면 프랑스 귀족 분위기를 풍기는 마르셀은 마르셀만의 병약한 매력이 있었다.


“줄리앙과 친했니? 제이미는 잘 모르더라.”

“아, 제이미는 그렇죠. 지금쯤은 알 때가 됐는데.”

“알게 됐을거야. 넌 알고 있었지?“

”제가 알고 있는 걸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둘의 대화는 처음부터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헨리크 본인이 메러디스를 통해 마르셀과 줄리앙을 초대했고 그로 인해 마르셀과 줄리앙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기가 두려워졌다. 마르셀은 줄리앙을 향한 헨리크의 시선이 신경쓰일 뿐, 정작 자기도 비슷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만 줄리앙은 그 모든 것에 조심스러웠다. 제이미에게 능글맞게 장난쳤던 것은 다 위장이었나. 헨리크에게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심지어 마르셀의 시선도 마주 받지는 않았다. 줄리앙은 마르셀이 다른 데-예를 들어 헨리크를 경계하는 데-정신이 팔렸을 때 남몰래 마르셀의 옆모습을 시선으로 어루만질 뿐이었다.


문득 헨리크는 마르셀과 하루종일 함께 있었던 제이미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상상해버렸다. 어쩌면 메러디스 할머니도 그래서 제이미를 데려갔을 것이다. 할머니도 헨리크의 페이스를 따라오기 힘들어했지만, 제이미야말로 마르셀의 페이스를 영문도 모르고 따라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헨리크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만.




조르주는 자신이 정해준대로 마르셀과 헨리크를 만날 때까지 서쪽을 수색해야 했다. 폴은 지도를 보면서 점점 낙심하고 있었다. 베키는 포털에서부터 문제의 숲까지 이어지던 흥분이 잠시나마 가라앉은 이 시간에서 숨 돌릴 틈을 찾고 있었다.


”순환도로가 보이니까 곧 선생님을 만나겠죠?“


베키의 말을 듣고 폴은 다시 지도를 열어 도로가 나누는 호수의 현을 돌아가는 거리를 측정했다. 출발지가 서북쪽이었으니 현을 거의 다 돌아야 마르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길어도 300미터 정도만 더 걸으면 된다. 대신, 마르셀 팀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냥 선생님께 마저 오시라고 하고 우리는 돌아가면 안되나요?”

“아빠가 호수를 같이 돌자고 제안했는데 우리가 맡은 곳을 떠넘기고 가버리면 안되잖니.”

“시간이 없는데요.”

“미안하구나. 너희 감각을 믿었어야 하는데.”


폴의 재촉에 조르주는 초조해졌다. 비록 조르주가 그림 속 지도를 발견하고 읽어냈다고는 하지만 막상 현장에 와서 마르셀과 헨리크에게 자세한 설명 없이 수색지를 나누는 역할을 맡자니 일이 더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호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었을 거예요.“


베키는 이 또한 누군가가 넛지한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마르셀 팀에게 다른 능력이 없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들에겐 사랑이 있고, 그들 자신과 팀 전체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들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도 있었다. 폴은 저 멀리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한시바삐 상황을 공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조르주는 마르셀과 줄리앙을 향해 달려가는 폴의 뒷모습을 보며,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을 떠올렸다.




마침내 조르주의 위치를 알게 됐다. 그보다는 폴이 실수로 볼로뉴 숲의 사진을 보냈기 때문에 그로부터 추론한 것이다. 르네는 폴과 조르주에게 같은 문자를 보냈다.


-볼로뉴 숲 남쪽에 있어?


르네는 메러디스 디너에 메리를 데려다 주면서 줄리앙과 마르셀에게 인사하고 나오던 날을 떠올렸다. 그게 그 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미나가 마르셀과 줄리앙을 지켜봐달라고 했지만 조르주와 폴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집이라 르네는 원격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치고 방심했다.


줄리앙과 마르셀을 가까이하는 것이 르네에게도 좋다는 걸 르네는 몰랐다. 미나는 멀리서도 자신의 공백이 가져올 여파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나 자신이 불러낸 원혼과 그 일부가 흑화된 악령이 숲을 떠돌고 있었다. 그 악령은 미나가 없는 틈에 강력한 영매에게 들러붙고자 르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줄리앙이 친부에게 상속받은 강한 퇴마력이 르네의 유일한 방어수단인데, 르네는 줄리앙을 방치했고 기어이 잃을 위기에 처했다.




갔던 길을 돌아와 다시 빽빽한 숲에 가까워졌다. 베키는 아까의 두근거림을 다시 느꼈다. 어쩐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줄리앙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듯했다. 마치 베키 자신이 어느 숲속에 버려져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16시 57분이야. 지금 못 찾으면 돌아가야 돼.”


지도를 확대해 아까 그 자리인지 확인하고 있던 폴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마침 숲을 헤치고 들어간 뒷길에 숨어있던 작은 창고처럼 생긴 건물을 발견한 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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