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스톤> 21화
(전편에서 계속됨)
베키와 마주한 반투명 존재, 초희는 미나도 본 적이 있었다. 미나는 베키보다도 초희가 반가워서 다가갔으나 초희도 베키도 미나에게서 미묘하게 더 멀어져있었다. 미나는 그들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몰입의 정도를 조절했다. 감정이 지나치면 꿈에서 깰 것이며 너무 무심해도 다른 꿈으로 넘어갈지 모른다.
미나 역시 자신의 할머니를 직접 본 적도 없었고 할머니와 함께하던 초희라는 존재는 파리에 와서야 겨우 만났다. 미나가 파리에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숨진 혼령들이 동요한 것인지 그들의 한을 읽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할 때 마침 미나가 도착한 것일지는 모르겠다. 그게 그거인가.
미나가 그 역사를 따라잡을 수 없는 파리의 유명한 혼령들이 미나를 두고 다투는 바람에 미나는 초희를 자꾸만 놓쳤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혼령들을 먼저 달래야 했다. 미나는 작지 않은 서점에서 입지를 굳혀가며 창고와 다락 등 관계자 전용구역을 장악했고 주인이 급성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에 서점을 인수했다. 미나를 찾는 혼령들은 철학과 문학계의 고인이라 서점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영업사원처럼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객의 발길을 끌었다.
“줄리앙은 어떻게 된 거죠?”
마음이 급했던 베키는 자기소개도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했다.
“줄리앙은 목숨이 위태롭단다. 시간 안에 찾기 힘들거야.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에서 위치를 알아내야 해. 나도 이곳을 알 만큼 알지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을 보는 것이 빠를거다. 두 시간 안에 못 찾으면 반드시 여기로 돌아오거라.“
말을 맺자마자 초희는 사라졌다.
벽을 노려보던 폴이 일어났다. 폴을 안고 있던 조르주도 덩달아 일어나며 투명해진 벽에서 베키가 걸어나오는 걸 지켜봤다. 베키는 눈이 부신듯 잠시 찡그렸다가 폴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베키와 폴은 몇년만에 만난 오랜 친구처럼 꼭 안고 한참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조르주는 미나를 다시 만났던 날을 생각했다. 미나의 포털 입장은 미리 설명을 들어서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잠적했던 사건은 여전히 큰 충격으로 남아있었다. 돌아온 미나를 발견했을 때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 마음이 복잡했다. 반갑고도 서운했으며 그 모든 감정을 열정으로 표현했던 청춘이었다.
조르주는 베키에게 환영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다 옆방으로 살짝 물러났다. 저 둘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촌각을 다투는 와중에 조르주라도 단서를 수집해야했다. 그런데 옆방에도 수상한 그림이 있었다. 꽃이 핀 정원을 배경으로 야외테이블 반쪽과 의자 한 개가 놓여있는 풍경화였다. 정원의 뒤쪽으로 암전되는 숲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보던 그 그림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묘하게 더 흐려졌고 전체적으로 어두워진 그림 위로 거미줄 같은 것이 겹쳐있는 듯했다. 더 가까이 가보니 그림은 검은 유리를 덮은 듯 희미해졌고 지도가 좀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볼로뉴 숲이었다.
미나는 파리에 처음 신당을 마련한 날을 떠올렸다. 그날 밤 환영회를 하며 파리의 원혼들을 모셨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초희를 기억한다. 어느덧 미나는 그때 그 시공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원혼들이 물러갈 무렵 초희가 미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조카에게 너의 일이 가겠구나.”
미나의 꿈은 갑자기 암흑이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암전에 무의식이 요동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은 겨우 30분 정도 지나있었다. 아기방은 고요했고, 거실에서는 낮은 볼륨으로 지우가 보는 드라마의 대사가 흘러들어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