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스톤> 19화
(전편에서 이어짐)
폴은 자신이 포털에서 튕겨나온 것보다 잠시나마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조르주는 미나가 입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감히 따라 들어갈 생각도 못했고 미나 역시 포털 근처에서 기다려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미나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까?
조르주가 보기에도 베키의 능력은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물론 폴의 능력도. 이 둘이 만났어야 하는 거였나. 그렇다면 조르주는 르네를 만났어야 하는 거였나. 어쩌면 르네가 조르주를 가로챈 것이 아니라 미나가 조르주를 보내준 것이었을까.
조르주의 아이를 제 아이처럼 생각하고도 남을 미나가, 생물학적 조카인 베키의 페이스메이커로 다른 여자가 낳은 조르주의 아이를 만나게 하다니. 조르주는 별 생각이 없는 척 하면서 방어해왔지만 자신이 평생 미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설마 르네를 만나게 한 것도 미나의 큰 그림이었을까?
르네와 조르주의 능력이 만난다면 상상한 것 이상으로 폴의 잠재력이 거대할 수 있다. 조르주는 꿈도 꾸지 않았던 포털 입장을 아무 정보 없이 시도한 지금의 폴을 보면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미나의 미국계 조카 베키와 미나의 서자나 마찬가지인 폴이 함께 있는 동안 미나를 수호하는 파리의 원귀들이 지원사격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미나 이모한테 베키가 벽으로 들어갔다고 말씀드렸어요.”
폴이 조르주의 상념을 깨웠다. 미나는 꿈을 통해 읽고 있을 것이다. 조르주와 폴이 안내자가 되어 베키는 자신의 포털을 알아차리고 다른 가족이나 친구를 놀라게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입장했다.
조르주가 알게된 부분적인 사실에 의하면 미나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운명을 물려받아 한국에서 신내림을 받을 때까지 아팠다고 한다. 미나는 수능을 치르고 파리에 와서 조르주를 만나기 전에 이미 개업한 무당이었다. 하지만 조르주와 파리는 미나의 세계를 바꿔놓았다. 엄밀하게는 파리의 원혼들이 미나의 발목을 잡은 셈이지만.
학창시절 내내 미나는 신엄마와 함께 새벽마다 치성을 드리고 심야에는 굿을 하며 원혼을 달래왔다.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안다고 착각할만한 시기에 파리에 왔다가 첫사랑인 조르주와 함께 포털을 만난 것이다. 조르주 역시 자신의 혈통에 그림을 읽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미나를 알아봤다. 그녀의 신력과 자신에게 맡겨진 조력이라는 임무를.
판테온에 있는 포털 안에서 ‘초희’를 처음 만나고 돌아온 미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조르주는 정성껏 간호했고, 미나의 병명이 임신이라는 게 밝혀진 후 이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르주가 잠시 이탈리아에 다녀오는 동안 미나는 잠적했다. 조산했고, 아이는 곧 죽었으며 미나 자신은 슬픔을 추스리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편지를 남기고 연락처는 알리지 않은채로. 조르주 본인이 슬픔에 잠식되어갔지만 미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렸다. 쉽게 헤어질 운명이 아니라는 건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미나가 나타날지 몰라 급한 일이 없는 한 매일같이 판테온을 방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의 뒷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환영인 줄 알았다. 미나 역시 몸을 추스르자마자 조르주를 수소문하고 다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20세기에 헤어져 21세기에 다시 만난 그들은 이제 영원히 함께 할거라고만 생각했다. 폴과 베키는 커녕 르네와 베키의 아빠인 샘도 등장하기 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