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스톤> 29화
(전편에서 이어짐)
조르주가 경찰을 상대하는 동안 마르셀은 줄리앙의 방을 다시 확인하기로 한다. 베키의 딴청을 보고 폴과의 시간을 기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헨리크는 조용히 줄리앙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르셀을 보고 조금 놀랐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 있었구나. 베키랑 폴은 같이 있는거지?”
마르셀은 줄리앙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늦게 하려고 베키를 먼저 언급했다. 헨리크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베키와 폴의 활약으로 줄리앙을 거의 찾았고 그에 대해 경찰이 추가조사를 하거나 의심하는 일을 피하려고 미나 이모의 전달을 거쳐 마르셀이 신고를 했다. 볼로뉴 숲에 대한 정보는 은근히 전달되어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르셀의 집으로 경찰이 출동했다. 마르셀은 줄리앙의 학교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고, 극장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되 줄리앙이 볼로뉴 숲에도 가끔 가는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서 가보지 못했다고만 했다.
남은 경찰 중 한 명이 헨리크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을 때 베키 일행이 돌아왔고, 조르주가 경찰의 주의를 돌려서 헨리크는 마침내 이 문제에서 놓여났다. 마르셀은 주요 증인이자 참고인, 무엇보다도 용의자 후보이기 때문에 줄리앙을 찾을 때까지 경찰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집안을 돌아다닐 수는 있었다. 진짜 용의자라면 경찰들조차 한숨 돌리는 이 순간에 도망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놓여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줄리앙을 안전하게 발견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아마 헨리크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집에 데려다 달라거나 데리러 오라는 부탁을 하는 대신 줄리앙의 방에 있는 것이겠지.
”베키도 힘들었을 거예요. 폴이 있어서 오히려 신나 보이기까지 하지만요.“
”둘의 도움이 컸으니, 좀 즐겨도 되지 뭐.“
마르셀은 헨리크의 시선을 마주하기 불편해서 헨리크의 발을 멍하니 바라보다 소파 밑에서 빛을 반사하는 책을 발견했다.
”미안한데 발을 좀 들어볼래?“
헨리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발을 들어 웅크린 자세를 만들었다. 마르셀은 책을 꺼내서 헨리크에게 표지를 보여준 뒤 앞표지를 펼쳤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었다. 겉면이나 책 내부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지만 책 중간 부분에 끼워진 종이에 시간표 같은 느낌이 드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6월 17일 오후 4시 12분
6월 29일 오후 7시 8분
7월 3일 오전 8시 46분
7월 14일 오후 2시 33분
8월 1일 오후 8시 21분
메모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었다. 마르셀이나 헨리크라면 요일과 날씨 같은 참고 사항을 적어두었을 것이다. 줄리앙은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 있는 메모에 그런 치밀함을 노출하지 않는다. 그게 줄리앙의 철저함이자 비밀스러운 면이기도 했다.
”이 날짜들은 저희가 오기 전부터 시작했네요.“
메모를 발견하고 생각에 빠진 마르셀의 곁으로 다가온 헨리크도 메모를 읽었다. 헨리크가 이 집에 오게 된 건 수업 때문이라 자연스럽게 수업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간 것이다.
”폴이 수업을 들으러 온 날들이었어.“
헨리크 덕분에 수업에 생각이 미친 마르셀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휴대폰을 쥐고 안절부절하는 르네를 무심하게 바라보다 손님이 끊긴지 오래된 것을 깨달은 메리는 르네에게 어떻게 마감공지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손님이 많지 않은 서점이라 종종 르네가 손님인 척 하면서 적적함을 달래주는 건 고맙지만 그만큼 이만 나가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르네는 별로 할일이 없어보였고, 일이십분 일찍 끝나는 것에 해방감보다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아서 메리에게는 사장님의 대리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장님이 있을 땐 오히려 사장님이 메리를 먼저 보내주는 날이 많다. 그 사실을 고려하면 르네는 감시자의 느낌만 있고 실제로는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인 건가. 하지만 메리는 일하면서 책을 읽으면 그다지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르네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거나 르네가 책방을 둘러보는 걸 보면서 멍때리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는 좋았다.
“이만 가볼게. 오늘도 고마웠어.”
메리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르네는 갑자기 작별인사를 했다. 의중을 찔린 느낌을 소화하는 동안 르네는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잠시 메리를 바라보다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건이 너무 많아서 길고 긴 하루였는데, 메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지루하게 긴 하루였다. 어제 파티를 했으니 오늘은 할머니네 집에 들러서 남은 음식을 먹고 올까? 르네의 퇴장과 상관없이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사무실에 가방을 가지러 갔다. 이 시간에 불청객이 등장할 일은 없지만 혼자 가게를 지킬때는 좀더 긴장해야 한다. 아직 르네도 있는 것 같아서 메리는 평상시의 주의력으로 사무실을 점검하고 소등했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니 르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