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스톤> 30화
(전편에서 계속됨)
마야가 아이들을 막 재우고 나왔을 때 드디어 베키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는 미나를 통해서 겨우 최소한의 정보만 문자로 받아왔다. 딸의 연락이 반가우면서도 한쪽에 눌러두었던 서운함이 밀려왔다.
“응, 엄마야.”
“저희 응급실에 왔어요.“
”누가 다쳤어? 줄리앙은 찾았고?“
”줄리앙은 혼수상태래요. 마르셀이랑 있어요.“
”넌 누구랑 있니? 아직 조르주 있지?“
”조르주 삼촌이 르네 이모 찾으러 가야한대요. 엄마가 저랑 헨리크를 데려가주시면 출발할거예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마야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기보단 베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베키는 자기만의 보호자가 없어도 잘만 다니겠지만 친조카처럼 챙기는 조르주의 기색으로 봤을때 르네의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조르주가 아빠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르네를 찾으러 간다니 이번에는 르네가 사라진 모양이다. 르네와 미나의 관계가 영 찜찜했다. 그집 아들이랑 베키가 사귀는 걸 둘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마야는 병원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조르주를 발견하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폴과 베키, 헨리크를 확인했다. 조르주가 있으니 폴은 상관없지만 베키가 부쩍 커진 느낌인데다 헨리크는 얼굴이 수척했다. 대체 하루종일 어딜 싸돌아다녔는지 역마살이 낀 마야가 봐도 이 아이들은 방랑자가 따로 없었다. 어서 욕조에 비눗물을 풀고 인형 빨래하듯 목욕시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가자, 얘들아.“
”안녕하세요, 어머님.“
”엄마 오셨어요?“
”저 화장실만 금방 다녀올게요.“
마음은 급하지만 아이들을 넘겨줘야하는 폴과 조르주가 동시에 인사를 했고, 긴장이 풀려 멍하게 앉아있던 베키와 헨리크는 마야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긴 하루가 끝난 것이다. 마야는 긴 육아를 마치자마자 연장근무에 돌입했지만 쉬는 시간이 기약없이 길어지느니 마저 해결하는 것이 차라리 속편했다.
”헨리크는 천천히 다녀오고, 베키는 안 가도 돼?“
”저는 괜찮아요. 삼촌이랑 폴 먼저 출발해요.“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르네가 연락이 안 돼서.“
”미나한테는 별말 없었어요?“
”아, 미나한테도 물어봐야겠네요.“
”베키가 별말 없는 것보면 미나도 아직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니 연락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조르주와 마야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베키와 폴은 손을 맞잡고 눈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보조 서재에서 헨리크가 자리를 피해준 덕분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때 이미 숲에 도착해서 사유지 확인 후 줄리앙을 구출한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고, 마르셀 하우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응급실로 이동하느라 정작 베키와 폴이 단둘이 있었던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베키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폴의 얼굴을 꼼꼼하게 뜯어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쩐지 가슴이 허전했다. 마침내 폴이 고개를 돌려 베키에게 더 가까이 왔을 때 마르셀이 노크를 했고,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빵을 입에 넣고 일어섰다. 아무 일 없었던 것은 맞지만 아무 일이 있을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헨리크는 자고 갈거니? 할머니 주무실텐데.”
“할머니께 문자 드렸어요. 아직 안 주무신다고 빨리 오라고 하세요.”
“그래, 가서 할머니께 인사하고 빨리 목욕해라.”
“네. 저희 좀 꼬질꼬질하죠?”
“그래! 베키는 그렇다치고, 넌 누가 보면 우리가 학대하는 줄 알겠어. 얼른 씻고 뭐좀 먹고 자.”
“베키는 멀쩡한데요? 그래서 제가 더 불쌍해보이는 거겠죠.”
“오빠도 멀쩡해. 마음이 아프니까 지쳐보이는거지.”
헨리크는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다. 메러디스 할머니는 우유를 데우고 계실 것이다. 할머니의 문자에 이어 제이미에게도 문자가 왔다.
-줄리앙 찾았다며?
-아직 혼수상태야. 미안.
모두와 마찬가지로 이제 제이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헨리크는 줄리앙이 발견되기 직전에 찾은 시간표를 떠올렸다. 마르셀이 폴에게 확인하려고 옆방을 노크하자마자 경찰들이 다 내려오라고 해서 그 메모는 아직 마르셀의 주머니에 있을 것이다. 베키랑 이 얘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지금은 마야 이모나 할머니에게 둘만 할 얘기가 있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이따 목욕하러 가면서 문자할까? 바로 답이 안 오면 궁금해서 어떡하지. 베키는 줄리앙을 찾았으니 사건을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참, 미나 이모한테도 얘기했니?”
“줄리앙 찾았다고 했어요.”
“르네가 연락 안 되는 것도?”
“지금 물어볼게요.”
베키가 르네를 잊었을리 없다. 조르주는 르네가 연락을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따로 시간을 내서 알려주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폴은 폴대로 엄마를 항상 기다리게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베키와 르네는 특별히 경계하지도 않지만 아직 애정이랄게 형성되지도 않은 사이라 어려웠다. 폴과 조르주가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찾았으면 좋겠지만 르네에게 이미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나쁜 소식을 빨리 알게 되는 것이 좋은걸까?
-르네 이모랑 연락이 안 된대요.
-줄리앙이 사라진지 거의 하루가 됐어. 이제 르네의 방어력이 약해졌고 그에 비해 르네를 원하는 존재는 줄리앙을 제압할 수 있는 체력을 아직 갖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거야.
-줄리앙을 찾기 전에 공격해야하는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르네에게 원하는 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어. 혹시 서점에 가봤니?
-조르주 삼촌이 찾고 있으니 알려드릴게요.
-메리에게 전화해둘게. 서점 근처에 있을거야.
베키는 조르주에게 전화해서 이모의 지시를 알렸고, 미나 역시 바로 메리에게 전화해서 서점에 가 있으라고 전달했다. 메리는 퇴근 직전에 르네가 갑자기 사라진 걸 떠올렸다. 서점 안에서는 르네가 자발적으로 이동한 것 같지만 서점 밖으로 나갔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서점에는 메리도 내려가보지 않은 지하실이 있었다. 청소하면서 한번씩 궁금했지만 지하실 입구에만 가도 일명 악마의 기운 같은 게 느껴져서 메리는 감히 계단실을 열어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르네는 가끔 그쪽을 기웃거렸다.
오늘 르네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메리가 찜찜했던 이유는 밖으로 나가는 문에서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리는 퇴근하던 길이라 별 생각없이 문을 잠그고 왔는데 그렇다면 르네는 메리에 의해 갇혀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서점으로 향하는 메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