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파 여성화가 메리 카사트
그녀는 미국에 인상주의 열풍을 몰고 온 프랑스 유학파였다. 지금은 고전에 가깝지만, 텍스트 예술보다는 전 시기에 골고루 분포해있는 시각 예술의 역사에서 인상주의는 고전과 현대 사이에 흐르는 넓은 강처럼 느껴진다. 범접할 수 없는 르네상스와 그냥 좀 운이 좋은 관종 같은 팝아티스트 사이에 우뚝 선 모네와 고흐.
인상주의라는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분석하는 성향-그보다 분석 덕후라고 봐야겠지만-때문에 편의상 화가들을 나이, 아니 출생 연도 순으로 정리해본다. 사조가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머리 아프게 느껴진다면 사조 따위는 잊는게 맞다.
그리 생각했으나 비전공자, 그저 22년차 교양 수업 킬러인데다 예체능 컴플렉스까지 있어서-아니 이정도면 자기보다 많이 알 거라고 말씀해주시는 전공자 분들도 계시지만-어디가서 역사덕후 암기천재에게 뺨맞고 분노할까봐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초고 상태로 서랍에 있는 다음다음 포스팅에 등장하실,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님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조 몰라도 돼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경우 사람에 따라 인상주의로 규정되고 싶지 않았던 이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화가들 스스로 사조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 스승과 동료의 화풍을 닮아가다보니 평론가들이 임의로 분류한 것이다. 분류했으나 경계선이 똑 떨어지는 분절은 아님이 분명하다.
인물화의 달인이자 인상주의 라인업에 빠지지 않는 에드가 드가의 절친이기도 한, 미국 대표 화가 메리 카사트(1844-1926)는 아이들을 돌보는 젊은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녀의 이름이 생소하다는 것 만으로도 미술사가 여성 화가, 그리고 미국 화가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알 것 같다.
시카고에서 메리 카사트의 옆에 있던 존 싱어 사전트 역시, 미국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서는 드가만큼 자주 등장하는 레전드. 그러나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문제작 <마담X>에 대한 풍문을 듣거나 그 작품을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접하기 힘든 존재다.
사전트는 미국스럽지 않은 미국화가로써 미국인들의 자랑이 됐다. 그는 합스부르크를 포함해 19세기 중반에 왕족 초상화를 그렸던 궁정화가인 프란츠 자버 빈터할트와 함께 패션계에서도 알아주는 패션화보의 전신을 그렸다. (리베카 아놀드, <패션>,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 한편 프랑스 연수를 갔지만,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미술 여행보다는 그냥 여행만 하고 돌아온 미국 화가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글을 쓰는 작가들, 미국보다 한 세기쯤 늦게 도시적 쾌락과 허무를 맛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다.
메리 카사트를 드가의 친구라고, 사전트와 같은 전시실에서 봤다고, 그런데 사전트는 이런 사람이라고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각인을 시켜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야 할 사람이니까.
사전트는 자의로 귀국하지 않았다. 카사트는 미술에 대한 열정을 고국에 퍼뜨렸고, 그리하여 미국에도 개성있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인상주의 계열인 화가들이 성장했다.
카사트의 그림은 마치 브런치스토리에서 보는 일상에세이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가 색채감각을 타고났거나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그림을 모아보니, 같은 인물을 그린 것 같기도 하지만 에메랄드빛 실내복과 창밖의 풍경이 특히 돋보인다.
카사트는 스캔들이 많은 미술계에서 평생 비혼임에도 이미지 관리를 잘 했다. 다른 여성화가들이 그림에 대한 열정을 위해 가시밭길을 걷다 스캔들로 유명세를 얻지만 정작 작품이 과소평가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스캔들이 없으니 유명세도 없다. 유명세가 없으니 과소평가 당하고 물어뜯길 일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녀를 모르고 지나간다.
그녀는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는 대신 화가의 길을 선택하여, 합리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모성애를 표현했다. 종교적인 성모화의 느낌을 여성 관찰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그림이 많다.
은근히 관능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느껴저서 항상 불편했던 그런 어머니들, 성녀인 것도 모자라 신격화된 모성 그 자체인 성모가 아니라 현실세계의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은 진짜 어머니들을 그렸다.
그녀의 시그니처일수도 있는 일상생활 속 상류층 여성들의 민낯은 남성 화가에게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여전히 여성을 그린 초상화, 하면 남성 화가가 그린 치장한 귀부인이나 헐벗은 하층민 여성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규방을 직접 관찰한 카사트 같은 여성 화가가 존재했음에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백스테이지 전문 관찰자인 에드거 드가도 훌륭하다. 그럼에도 드가와 카사트의 이름의 무게 차이를 떠올려보면, 음.
드가와 카사트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의 시선보다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관찰자' 역할에 충실했다. 철저하게 관찰자로 존재함으로써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한 화가들이 참으로 위대하다.
글을 쓰는 작가는 글에서 자신을 걷어내기가 참 어렵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작가들조차 놓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 한편 그게 눈꼴시린 내 자랑이 될까봐 걱정스럽다. 그러나 어차피 자랑이라면 당당하게 하고 싶다. 모든 화가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프리랜서 작가가 성공하려면, 아니 먹고 살려면 유명세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셀프 홍보를 해야한다.
관종의 미학을 연구하고 있다. 아바타로 은유한, 사회적 자아를 중심으로 자아 성찰 에세이를 쓰면서 평행 우주인 셀럽 브랜딩 방법론에 대한 실용서를 쓰고 있다. 여행에세이의 한 파트로 시작한 '미국 화가와 미국에서 직관한 화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왜 이 사람을 이제야 알았을까?'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메리 카사트는 텀블벅에서 펀딩 중인 <인상파 미술관>이라는 화집에 실릴 예정이다. 이 책의 킬링 포인트는 바로, 인상파 '남성화가' 파트와 인상파 '여성화가' 파트를 동등하게 배치했다는 점.
주최자와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 오픈런으로 펀딩에 참여했다. 아직 목표금액 달성 전이고, 펀딩은 4월 17일까지다. 이 글을 보고 펀딩을 하게 된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란다. (전혀 대가 없는 홍보다. 다만 책이 나오길 바랄 뿐. 펀딩 성공에 힘을 보태 내가 이 책을 소장하게 해주신다면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기에, 알리고 알려지는 행위가 이 세계에 조금은 필요하기에.) 심상용 관장님의 말씀을 또 한마디 가져와본다.
투자용 미술책만 넘쳐나는 세상
미술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심심하면 미술이나 사람까지 경매하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우리 나라도 머지 않았다.
좋은 미술책을 쓰는 분도 많다. 명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도 좋고 개성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현대화가를 소개하는 이야기는 더 좋다. 하지만 가장 궁금하고 중요하게 느끼는 부분은 그 사이의 림보다. 존 싱어 사전트나 에드워드 호퍼처럼 유럽파에게는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해 비교적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 화가, 그들과 옆집 화가 이화백 언니 사이에 있는 수많은 화가들.
물론 이화백이 내 지인이고 추천할만 한 사람이면 지인 찬스로 홍보를 해드릴거다. 그런데 나름 나도 체면이 있어서 지인이라고 다 해드리거나,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해드리고 싶지 않다. 선의로 자발적 홍보를 해드렸는데 내성적이거나 소셜 미디어가 어색한 작가님들과는 합이 맞지 않아서 서운한 경우도 있었다.
<가벼운 예술여행> 매거진에는 실시간 전시도 포함될 예정이다. 전시 기간 내에 인스타 리뷰를 해서 실시간 홍보가 가능했는데, 브런치로 옮겨오는 동안 전시 기간이 끝나버린 경우도 있다. 이번 4월에, 그간 쌓아둔 서랍글을 다 발행하고 아직 진행 중인 전시들, 중에서 아직 다녀오지 않은 전시의 리뷰는 실시간으로 동시 발행할 예정이다. (이미 다녀온 전시도 기간은 넉넉하니 4월 안에 발행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