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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Dec 21. 2022

미국의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의 실내 풍경들

우리가 몰랐던 미국의 대표 화가 시리즈입니다. 체이스에 이어서 잔잔한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 미국 대표 여성화가들을 소개해볼 예정인데요. 지루해지면 갑자기 유럽 인상주의나 르네상스가 등장할 수도 있어요.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1869-1941)은 예술여행의 베타버전부터 노리고 있었던 화가입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관람한 그의 그림은 고요함과 디테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책을 읽는 하녀의 초상화, 장식용 청화백자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구도, 게다가 일본 피규어라니요.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서 만난 팩스턴


예술여행을 업그레이드하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사진첩을 정리해 보니, 당연히(?) 팩스턴의 그림이 나왔습니다. 체이스나 카사트는 물론 비슷한 화풍의 화가는 아주 많지요. 존 싱어 사전트와 메트로폴리탄의 초상화가들, 특히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그린 초상화가 대표작인 인상주의 화가들, 심지어 르누아르까지.


그런데 팩스턴의 그림을 더 봐야겠습니다. 대표작에서 캐치한 요소가 그의 시그니처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요즘 제 여술여행 루틴이에요. 이미 어느 정도 분류하고 원작자 검색을 마친, 실물을 감상했던 그림을 사진으로 보고 그 화가의 다른 작품을 통해 시그니처를 재확인해요. 그 시그니처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를 찾기 위해서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만난 팩스턴


팩스턴은 일하는 여성들을 그렸습니다. 미국 대표 초상화가니까 귀부인들도 그려서 부와 명성을 확보했겠죠. 그가 활동한 시대와 장소의 귀부인은 다프네 브리저튼보다는 데이지 뷰캐넌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체이스가 그린 초상화의 모델들처럼 기모노 스타일의 화려한 가운을 입은 여성이 많아요. 그러나 제가 주목한 그림은 제목부터 <하녀>였잖아요? 팩스턴의 가사노동자 시리즈를 보겠습니다.


사실 <카나리아>라는 그림은 여성의 정체보다는 그녀의 옷과 도자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팩스턴의 시그니처가 드러나요. 제가 확대촬영한 <하녀>의 디테일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어서 <꽃꽂이 하는 소녀>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도자기가 없고 인테리어의 강조색이 레드와 퍼플이네요. 팩스턴의 색감을 잘 드러내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저는  꽃꽂이 소녀가 그와 어떤 관계인지도 궁금해져요. 그림 도자기 피규어를 닦고 있는 하녀가 등장하는데, 일단 꽃꽂이 소녀랑 똑같이 생겼거든요.  여성은 누구일까요?



팩스턴의 인물과 소품 시리즈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하녀와 도자기'라는 시그니처가 그림을 압도하고 있네요. 심지어 제목도 <작은 피규어>입니다. 그런데, 이 피규어는 이 집에만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성과 그녀가 꾸민 듯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같은 피규어가 등장하거든요.


이번에는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피규어를 응시하고 있는데, 배경은 전체적으로 다크톤이지만 뒤에는 팩스턴이 자주 그리는 도자기가 있고 앞에는 의자 위로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코트로 보이는 옷이 흘러내리고 있어요. 귀부인이지만 아까 그 소녀가 닦고 있던 피규어를 보고 있는 그녀는 또 어떤 관계일까요? 팩스턴이 피규어를 갖고 다니면서 같이 그리게 한 것일까요?



팩스턴의 귀부인 초상화


<초록 드레스>가 나왔으니 팩스턴의 노란 드레스도 소개해봐야겠습니다. 다른 그림들의 연도를 계산해 보면 주로 팩스턴의 40대, 일부는 50대 시절이었고 이 후기작이 바로 1921년, 같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분을 그린 비슷한 구도의 작품들이었어요.


하지만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크리스탈을 들고 있는 <크리스탈>이라는 그림은 1900년 팩스턴이 갓 서른이 넘었을 때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의 감도 차이도 있겠지만, 확실히 붓터치가 다르네요. 팩스턴이 표현하고자 했던 가구나 소품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죠.


저는 다시 그의 시그니처로 돌아올게요. 도자기가 있는 방을 청소하고 있는 하녀를 그린, <비질하는 소녀>입니다. 그녀의 옷과 그녀가 청소하는 방의 인테리어 모두, 팩스턴의 시그니처인 블루와 피치 컬러로 하나가 되어있어요. 소품의 특성 또는 명암 차이에 의해 배경은 톤다운된 청록색과 브론즈가 많이 보이지만, 마치 이렇게 인테리어가 된 방에서 그릴 것이니 이런 옷을 입으라고 스타일링을 해준 것 같지 않나요?



팩스턴 시그니처 총출동


하녀 시리즈 대표작도 다 감상해 봤는데요. 이들이 무언가에 몰입하느라 거북목이 되었으나, 도자기 피부를 한껏 드러낸 목덜미와 진짜 도자기를 반복해서 그린 것을 보면 1910년대의 미국 동부에서, 특히 일본풍 도자기가 정말 유행했거나 화가 팩스턴이 도자기(와 여성의 목덜미)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네요.


블로그 <줄리아의 친절한 미술관>에 의하면 팩스턴은 파리 유학 후, 보스턴 스쿨(보스턴 학파)의 대표화가로 활동했으며 프랑스 인상주의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링크​ 참고)


그래서 팩스턴의 뷰가 익숙했던 것이었어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일하는 여성을 다소 멀찍이서 관찰한 듯한 화가의 시선. 저는 스칼렛 요한슨(조핸슨)이 출연한 영화를 통해 그 그림을 접했기에 요하네스 베르메르(페르메이르)와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이 그림의 모델에게 포즈를 주문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목을 좀더 꺾어봐요!'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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