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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02. 2023

조지아 오키프는 홍대 출신이 아니야

미국 대표 추상화가 조지아 오키프

유럽 미술계는 물론, 유럽땅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던 미국의 대표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시그니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고 있다.


조지아 오키프의 시그니처는 시카고 미술관에서 처음 각인되었다. 시카고 미술관은 겉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모던한 인테리어를 갖추어 국내 미술관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물론 인천발 시카고행 국제선이 도착한 지 16시간 만에 미술관에 입장했기에 현실감이 없기도 했다.


캔와인까지 갖추어진 관내에서도 추상화, 팝아트가 모여있는 전시실은 더욱 모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조차 '어, 저 그림은 미드에서 많이 봤는데?'의 느낌이었고 데이비드 호크니와 조르주 쇠라의 대형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서도 화가의 이름을 몰랐다.


시카고 미술관의 조지아 오키프


내겐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추상화 전시실 안에서 작게나마 개인전 분위기를 발하고 있던 이 구역이 조지아 오키프였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약 2주 후, 가장 넓지만 가장 만만하기도 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이름표와 함께 촬영했다. 그리고 잊었다.




미국 미술관 사진을 대부분 방치한 채, 1년이 지나갔고 가끔 인스타에 자랑을 하더라도 모네, 고흐, 사전트 아니면 사실주의 풍경화 정도를 올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찍은 작품 사진만 500장이 넘는데다 시카고 미술관과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도 어지간한 화가들의 대표작이 걸린 곳이라 쉽게 열지 못했다. 보다 눈에 익은 건물 사진을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또는 마이애미의 벽화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조지아 오키프


귀국 2년차, 즉 팬데믹 2년차에 홍대 갤러리 카페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모작이고 심지어 거꾸로 걸렸다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됐지만, 또 한번 조지아 오키프의 시그니처에 반했다.


여전히 같은 사람의 작품인 것은 몰랐다. 왜 자꾸 모르고 반하냐고? 아직 이전에 반한 작품들을 정리하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지. 그 그림, 저 그림, 이 그림의 색감이 또 다르지 않나.  


그러나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모아서 보고 있으면 자주 등장하는 컬러 팔레트가 보인다. 아이보리색과 살짝 따뜻한 하늘색의 조합, 그린과 핑크, 블루와 핑크, 짙은 녹색과 연두색. 그 전의 어느 순간, 조지아 오키프라는 이름과 화풍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라 이름 조지아와 사람 이름 조지아라는 키워드가 필터링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조지아 오키프의 시그니처
홍대 갤러리 카페의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은 내 사진첩에도 있었다. 미국 대표 추상화가인데 없을 리가 없었다. 다섯 군데의 미술관에서 적어도 두 곳에는 있어야 했다.


조지아 오키프는 20세기 미술계의 어떤 흐름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추구했다. 미국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는 화가로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오키프가 말년을 보낸 뉴 멕시코 산타페에는 '오키프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목적지가 생겼다.


뉴 멕시코의 산타페. 지명은 멋있지만 멕시코의 칸쿤을 먼저 가고 싶었다. 그 모든 선입견은 가보기 전에 생긴 것이다. 마이애미를 다녀온 이후, 중남미를 작정하고 가겠다는 목표의식이 사라졌다. 그보다는 마이애미로의 장기 여행-워케이션을 자주 가거나, 아예 이민을 가서 그 곳을 거점으로 중남미 투어를 여유롭게 하고 싶어졌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조지아 오키프


비혼 여성인 메리 카사트와 달리 조지아 오키프는 정부와 후처를 거쳐 과부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스캔들이 있었으나 이겨냈다. 조지아는 결혼 후에도 남편 성을 쓰지 않고 원래 성을 썼다.  


그녀는 말년에 시력을 잃고도 10년 정도 작업을 계속했으며, 98세까지 장수했다. 탁월한 색감이 시그니처인 화가의 시력 상실은 안타까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20세기를 살아간 노화가와 같은 시기를 살아봤다는, 최근까지도 몰랐던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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