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성
나의 어린 시절, 수명을 다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 세계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때 인류는 갓 환경오염의 문제에서 벗어난 터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밤과 낮, 육지와 바다, 숲과 길가 어디든 눈을 감지 못한 휴머노이드 시체가 보였다. 사람의 모습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은 그들이 썩지 않는 상태에 사람들은 불편해했다.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수거차량이 매일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으로 빛나는 압축기가 시체를 빨아들인 다음 분쇄하고 압축하는 모습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구경하는 모습을 어른이 지켜보고, 그 어른을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도 수줍어하지 않았다.
휴머노이드의 손가락 반절이 굴러 나의 발 앞에 멈추어 섰다. 나는 슬그머니 무릎을 굽혀 손가락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는 동안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카레 냄새가 나의 방문으로 먼저 들어온 후 아빠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은석아. 밥 먹어, 은석아.
집에 온 후 내내 방문을 닫고 휴머노이드의 잘린 손가락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돋보기로 들여다보던 나는
상상과 공상을 오가며 휴머노이드 손가락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중얼거리며 놀이에 빠져 있다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얼른 손가락을 책상 서랍에 넣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닫았다.
알았어, 지금 나가.
아빠 옆자리에 앉은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맛있게 먹어.
응.
엄마는 휴머노이드이다. 병에 걸린 엄마를 잃고 1년 후, 아빠는 휴머노이드 엄마와 재혼했다.
엄마의 처음 이름은 p-6655322였다.
그때 도시에서는 휴머노이드와의 결혼, 재혼, 연애, 입양, 이런 일들에 익숙했다.
내가 살던 시골의 바닷가 마을에서도 조심스럽게 번져가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각자의 그릇을 정리했다.
엄마는 아무 불평 없이 모아진 많은 양의 그릇과 접시를 혼자서 치웠고 나는 엄마의 건강한 뒷모습을 볼 때면 죽은 엄마가 아파서 몸을 떨던 모습이 떠올랐다.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서랍을 열었다. 손가락이 잘린 단면에 정교한 부분을 제외하면 손가락을 둘러싼 피부는 사람의 피부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의 손가락처럼 부드러웠다. 잘린 단면에 메두사의 머리카락처럼 복잡한 회로들을 솜으로 닦아주었다. 나는 다시 어떤 연극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이번 연극은 손가락 공주가 의사인 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설정이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이 아랫부분이요.
네, 잠시만요.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겠습니다.
아빠가 책상 위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나를 보고 침대로 옮기려고 했다.
은석... 아...
책상 위에 놓인 손가락을 보고 나를 부르던 아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빠는 손가락을 들어 들여다보았다. 은색빛으로 반짝이는 회로를 보고 휴머노이드의 것임을 알고는 그대로 한참 바라보다 다시 제자리에 둔 후 아무것도 옮기지 않고 방을 나갔다.
아침이 되어 집에 있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아빠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출근길에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빠와 제방 위를 걸었다.
휴머노이드의 시체들이 모래 위에 겹쳐져 누웠다.
서로에게 한쪽 팔이나 다리를 걸치거나 몸 전체가 겹치거나. 긴 머리카락을 푼 젊은 여자의 몸이 배영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는. 그런 풍경들로 바다가 출렁거렸다. 물방울무늬 티, 넥타이를 맨 셔츠, 체크무늬 코트, 짧은 반바지, 크롭티, 요란스러운 원피스... 전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로봇 회사들이 앞다투어 휴머노이드의 항구성을 선전하며 인간과 친화적인 외모, 경량성, 성격, 능력 등을 강조하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달콤한 쿠키냄새가 코에 닿았다.
엄마의 웃는 얼굴은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내가 돌아올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진 쿠키의 온도가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식탁에 앉아 쿠키를 먹는 동안 엄마는 맞은편에 앉아 어느 시대에 유행했을 뜨개에 집중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가 반짝거렸다. 죽은 엄마의 것은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은 후 들리지 않게 서랍을 열어 손가락의 상태를 살폈다.
매체에서 선전하던 항구성 때문인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서랍을 닫고 급한 숙제를 끝낸 뒤 한 주뒤에 있을 독서 감상 발표를 위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부모를 잃고 외딴섬에 표류된 소년들의 이야기였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왔다. 책을 덮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앉아 놀이를 위한 준비물을 올려놓았다.
"오늘 연극의 제목은 '손가락 공주의 장례식'입니다." 조용히 중얼거려 연극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책상 위에 손가락 공주, 계단으로 사용될 소설책, 종이로 만든 흰 왕관, 주례 선생님이 된 풀, 바닷가 휴머노이드의 시체 사이에서 찾은 빛바랜 반지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손가락 공주의 장례식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손가락 공주님 입장하세요.
또각또각또각. 계단 아래 멈춘 손가락 공주에게 주례선생님이 말했다.
다시는 죽지 않기로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자, 반지를 끼워주세요.
손가락 공주의 첫째 마디에 영원히 썩지 않는 반지를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