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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글리쌤 Oct 16. 2018

일을 해도 땀이 안 나는 사람들

부여받은 혜택인가, 그들의 한계인가 

또 한 번의 계급사회, 사무원의 등장


아침 8시.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한 이사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제 급한 약속으로 일거리를 끝맺지 못하고 서둘러 퇴근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시간 내내 마음은 불편했고 아침에 부랴부랴 1시간 일찍 출근해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 것이죠. 


사무실 형광등을 켜며 자신의 한 칸짜리 지정석으로 이동해 짐을 풀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동료들의 빈자리를 둘러봤습니다. 직위에 따라 책상의 넓이가 다르기도 하고 각방을 쓰는 임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직원에게 주어진 공간은 ‘한 칸’으로 동일해 보였습니다. 
이 한 칸짜리 자리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치열하게 취업전쟁을 치르고 또 누군가는 이 자리를 견디지 못해 떠나고 또 누군가는 시한이 다 돼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언제 생겨나고 누가 첫 사무업무를 시작한 것일까. 이사무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현대의 사무실이 생겨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무실 비슷한 공간은 수없이 존재해왔기 때문이죠. 기록업무를 기준으로 보면 벽에 기호를 그려 넣었던 선사시대 동굴도 사무실로 부를 수 있습니다. 고대 수도원, 학술서를 사무실이라 일컫는다면 이때부터 사무실 개념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공간 자체를 떠나 사무업무에 중점을 두자면 아무래도 종이와 관련한 서류 작업이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일반 사무직원의 서류 작업 빈도는 상당하고 일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하죠. 
그나마 현대 사무실과 비슷한 모습을 갖춘 ‘사무공간’은 언제 나타났을까요, 전 세계 6억 명 직장인들에게 집보다 익숙한 장소인 그곳. 한 칸씩 부여된 파티션 공간 속에 둥지를 트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기보다 회사로부터 시간을 부여받은 사무원들.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사무실’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급작스럽게 서류 작업의 양을 늘렸던 계기는 은행의 등장 때문이었습니다. 회계 사무에서 발전해 은행이 설립되면서 사무직 직원들은 회계를 기본적으로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회계 부서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사무업무의 기본은 숫자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옮겨 쓸 줄 알아야 했습니다. 

회계 업무 특성상 반복되는 업무가 주를 이뤘고 초창기 사무실의 사무원들은 지루함과 짜증 속에서 생활을 영위해 나갔습니다. 받아쓰기와 같은 계속되는 베껴 쓰기는 머리보다 손품을 파는 ‘복사 인간’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류 작업 관리의 체계성에 대한 필요성이 사회적 흐름을 탄 것은 산업화와 연관이 깊습니다. 산업화의 요충지였던 미국과 영국에서 서류 사무가 많아졌고 거래 대장,  원가 장부를 기록할 직업군의 증가가 불가피했던 것이죠. 역사적으로 그 직업을 갖고자 하는 수요가 많아진다거나, 사회가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특정 직업군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대 필경사(원본을 베껴 쓰던 사람-노예가 대부분)가 하찮아하던 쓰기 업무였지만, 산업화 이후 사무원들에게는 특정 계층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더 이상 작가의 시종처럼 따라다니던 소수의 필경사가 아니었습니다. ‘다수’라는 집단의식이 자신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는 이제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이죠. 산업화 초기에는 내면적으로 약하고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보기에 하찮은 업무를 하면서 의기소침했지만, 종사자 수가 많아짐에 따라, 환경의 변화가 그들의 성격을 외형화 시켜갔습니다. 
    


 
차츰 존재의식과 자존감을 찾아가던 사무 직장인. 하지만 전통적인 노동 종사자들은 그들과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저들의 얼굴은 햇볕을 쐬지 않아 허옇고 네모난 감옥 같은 곳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이렇게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사무원은 어색하고 이질적인 존재 자체였습니다. 

밭을 갈고, 건물을 짓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을 하며, 나무와 철근을 수송하며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눈에 사무원들은 노동에 살포시 얹혀가는, 무임승차한 존재였습니다. 1800년대 후반 미국 인구통계를 보면 전체 직업별 비중이 사무원의 경우 4~5% 안팎이었지만, 도시별로는 5위권 안에 드는 인구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든 그들 집단은 점점 무리를 형성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새로운 계급에 사람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농부의 입장에서 볼 때 사무원은 작물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기계부품을 만드는 공장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 사무원은 손에 종이는 들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 생산하는 부품이 없었죠.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의 입장에서 볼 때 얼굴에 그을음 하나 묻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사무원은 생산 결과물이 미비했습니다. 그들은 적고, 쓰고, 같은 것을 만들어내길 반복했죠.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는 기존 노동자들의 눈에는, 사무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조용하기도 했습니다. 서류 뭉치만 만들고 없애길 반복하는 존재였습니다. 언론 또한 사무직원들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산업화 전후 노동은 주로 남자들이 이끌었기에 ‘남자스러운 노동’을 고급 노동으로 여겼습니다. 노동 다운 노동은 짐을 수레에 싣거나 먼 거리로 이동시키는 것이었고 흐르는 땀과 비례하는 노동의 가치에 점수를 매겼습니다. 이에 반해 사무 노동자는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근육은 퇴화한 듯 야위어 보였습니다. 야윈 근육을 잘 다려진 하얀 셔츠로 가리고 덮고 있는 가식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산업화 초기 사무원 계급의 노동력과 외모에 대한 주위의 조소는 조금씩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대한 표출이었습니다. 초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농경 중심의 사회가 상공업으로 재편되며 사무직종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사무원이 점차 산업의 중심 영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감에 불편함을 느끼는 언론과 전통 노동자들의 의식이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차츰 변화한 것입니다. 고대 사회가 하위 노동으로 여겼던 그 하찮은 필경사의 업무가, 산업화를 맞이하며 어색해 보이는 사무 노동자를 거쳐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태풍의 눈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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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매거진은 <사무 인간의 모험> 中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해 재구성했습니다. 현직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사무인간의 모험> 도서 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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