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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글리쌤 Oct 02. 2018

타자기 앞에 선 사무원

사무인간의 모험-그들의 밥줄이 된 타자기 

타자기 앞에 선 사무원 

새우처럼 굽은 등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응시하는 이사무. 점심을 먹은 직후라 잠이 솔솔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인 것을 증명이라 하듯 곧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파티션이 차라리 철옹성만큼 높았으면 좋겠는데’, 

‘어중간한 높이군’ 

벌집 구조처럼 보이는 여러 파티션 중 한 공간에 몸을 디밀어 넣을 곳이 있어 행복을 느낀 것도 잠시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따라다녔습니다. 사무실 벽 한편에 놓인 CCTV는 도둑 방지용이었지만 왠지 직원들을 감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CCTV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여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타자 연습하듯 서류더미를 생산해내는 이사무의 일상은 시작됐습니다. 


  
파피루스, 양피지를 넘어 인쇄술까지.. 문자 체계의 완성과 함께 기록 시대가 열리며 누군가는 항상 쓰고 적는 일을 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록하는 업무 공간도 함께 생겨났죠. 지금처럼 구획이 나뉜 성냥갑 같은 사무실 공간이 최초로 언제 생긴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공간은 항상 존재했고 현대 사무원처럼 일하는 사람도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학술도, 도서관, 수도원, 관청이 존재했고 인쇄소에서도 장부 기록 담당이 있었습니다. 손품을 들여 직접 글을 쓰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기계를 도입하려는 여러 시도는 결국 타지기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미국)는 생활고를 겪으면서 글을 쓰던 시절을 회고하며 타자기를 '빵 굽는 타이프라이터'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 1878~1967, 영국)는 타자기로 '시와 산문을 타이핑해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만들어내는 타자기는 여성들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타자 업무는 기계적이고 지루한 일거리였습니다. 1926년 미국 속타(速打) 대회 우승자 스텔라 윌리스는 1분에 264 단어를 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때 타이핑한 문장이 '이 일이 얼마나 지겨운지(How I loathe this work)'였습니다. 그 당시 타자수에게는 우울하고 지겨운 마음이 묻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타자기의 발명은 글자를 찍는 기계를 구상하는 데에서 시작됐습니다. 영국에서 글 쓰는 기계의 제작 방법에 대해 특허가 이루어진 후에는 글쓰기 기계 자체로 특허를 받으려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타자기를 표방한 초기 기계들은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구상하고 고안해낸 것에 의의를 둘 뿐이었습니다. 기계 타이핑 속도가 사람 손으로 필사하는 것보다 훨씬 느렸다는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실질적인 사무업무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타자기 초기 모델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면 활자 막대가 어긋나는 것에 불만이 쌓였습니다. 이에 발명가 숄스(Christopher Sholes, 1819~1890, 미국)는 현재 키보드에도 적용되고 있는 작동 원리를 내놓았습니다. 키보드 맨 윗줄의 6개 글자를 지칭하는 것인 쿼티(QWERTY) 원리였습니다. 주로 함께 눌리는 문자열을 따로 지정하고 분리해서 빠른 타이핑 속도에도 글쇠가 엉키지 않도록 했습니다. 점점 사무직 직원의 목표이자 미덕은 수많은 서류더미 속에서 빠른 타이핑 속도로 자신, 상사, 회사의 업무량을 줄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목표와 미덕은 여성들에게 주로 전가됐습니다. 타자기가 유행하던 당시 기존의 고된 육체적 노동에 노출되던 여성들은 타이피스트라는 신종 직업을 통해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던 것입니다. 사무직은 ‘덜 힘든 일’, ‘여성이 적합한 일’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블루칼라 대비 ‘우위를 점하고 싶어 했던’ ‘화이트칼라’라는 지금은 다소 위기에 몰린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무직’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적합한 직군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타자기는 젊은 여성이 화이트칼라 계층에 진입하는 계기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사설 강습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모든 학원이 새로 인가받게 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1호로 등록된 곳이 타자 학원이었습니다. 국가 기술직 타자 자격시험엔 한 해 100만 명이 몰려들었고 이후 한참 성행을 했지만 이후 컴퓨터 물결에 휩쓸려 1995년 자취를 감췄습니다. 결국 국산 타자기 공장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초기 타자수들은 그저 상사나 계약자가 제시하는 글을 빠르게 써 내려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지만 숙련된 여성 타자수는 자신의 문장 구성 능력을 가미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글자를 생산해 내는 다른 타자수들에 비해 감상과 표현을 적는다는 것은 상위 직군으로의 인정을 받을 위치까지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자기의 등장으로 인해 비서 직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성 직원이 주로 전담하던 비서 업무였지만 타자기가 일반적으로 보급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타자기 직군으로 사회로, 일터로 나온 여성들이 점차 고위직 군의 옆자리로 선망을 받던 비서 업무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전동 타자기가 개발되면서, 수동식 타자기는 전동 타자기에 그 자리를 내어 주다가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국내는 1970년과 1980년 사이 타자기 시장의 주 고객층이던 기업들이 사무실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게 되며 타자기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은 타자기의 설자리가 더 이상은 없음을 알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부 작가나 애호가 등은 타자기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으며, 미국의 경우 몇몇 정부 기관에서는 여전히 공식 서류 작성에 타자기를 사용합니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아프리카,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전기 없이도 작동하는 수동식 타자기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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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동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사무인간의 모험>을 쓴 이종서 작가입니다. 이 매거진은 <사무인간의 모험, 이종서, 웨일북> 中에서 일부 발췌해 재구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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