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06 - 08 81번 도로, Formosa
몸이야 천근만근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존에 계획한 루트를 따라 순조롭게 이동 중이라는 것이다. 700km 를 직선으로 곧게 뻗은 81 번 도로를 탔다. 직선에 도로도 깔끔한 것이 쉬엄쉬엄 가면 되겠구나 생각한다.
오전 9시만 넘기만 자전거를 타기 힘들 정도로 너무더웠다. 무엇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해 뜨기 직전과 해 지기 직전에 타기로 결정했다 . 해가 뜨면 적당한 휴식 장소를 찾아 오참을 했는데 말이 낮잠이지 그늘 아래도 너무 더워서 뜬 눈으로 멍하니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오전에 60km 정도를 탄 뒤 작은 마을에 들어왔다. 슈퍼 아주머니가 얼음물을 주셨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방금 구입한 듯한 시원한 환타를 한 모금 주셨다. 물론, 구걸했다. 도가 텄다. 아직도 돈이 한 푼도 없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쉴 만한 곳을 찾다가 교회 앞에서 샤워 시설을 발견했다. 반대편에 사는 아이에게 부탁하여 낮잠을 자는 동안 물도 얼려달라고 부탁했다. 무전 여행이 이런 거구나. 돈을 아끼고는 싶었지만, 무전여행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하하......
해가 서서히 지기를 기다리다 저녁 다섯 시 정도에 다시 출발했다. 배가 고팠다. 다행이도 Dragones 라는 마을이 금방 나타났다. 밥을 해 먹을 곳을 찾다가 슈퍼를 발견한다.
슈퍼 앞에서 빅토리노라는 청년을 만났다. 아르헨티나 부사관인데 오토바이로 휴가 조기 복귀 중에 휴식도 취할 겸 마을에 들렀다고 한다. 우리는 숙련된 손 짓과 발 짓, 그리고 짧은 스패니쉬로 콜라를 얻어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어디서 왔냐, 어디까지 가냐며 우리의 여행에 끼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너무 더워서 해가 떨어지면 이동할꺼란 계획을 듣고는, 밤에는 가로등도 없어 위험하고, 어차피 부대로 가는 길과 비슷하니 자신의 오토바이로 콤보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슈퍼 아주머니는 편히 파스타를 해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내어주셨다. 저녁을 먹는 내내 빅토리노에게 우리는 자전거라서 너무 느리고, 잠도 2 인용 텐트에서 자기 때문에 네가 잘 자리가 없다고, 정말 고맙지만 그냥 먼저 가라고 했다. 하지만 빅토리노는, 자신은 군인이라서 아무 곳에서나 자면 되고, 사람들을 지키는 게 본인의 일이라고 했다. 너무 부담스럽고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불신도 있었다. 결국 함께 출발했다.
빅토리노는 이동하는 내내 우리 뒤에서 쌍라이트를 켜며 길을 비춰줬고, 저 멀리 반대 방향에서 차가 올 때는 비상등을 켜며 앞장을 섰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뒤로 돌아와서 길을 비춰줬다.
다음 마을이 나타났다. Dragones 슈퍼 아줌마에 의하면 이 마을에 ATM 이 있다. 이 그지 같은 무일푼 생활도 이제 곧 청산이다. 빅토리노가 오토바이로 황량한 마을을 부지런히 돌아다녀 보지만 찾지 못했다. 대신에 위로라도 해주듯 콜라를 사왔다.
우리의 모습과 조화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집 앞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가 나와서 시원한 오렌지쥬스 한잔을 내 주셨다. 여행 중 마신 최고의 음료수였다. 우리는 말이 잘 안 통하니 빅토리노가 대신 우리의 스토리를 이야기 해주며 얘기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벌써 밤 11 시다. 아저씨가 시간도 늦었으니 재워 주시겠다고 하셨다. 아, 정말 감동이다.
형제가 사는 집인 듯 보였고, 집 안에는 동생의 부인과 자식들이 이미 자고 있었다. 작은집 규모에 비해 엄청 큰 마당이 있었다. 준비된 물에 샤워를 하라며 나무 그늘을 가리켰다. 나무에 걸친 커튼인지 천막인지를 걷자 물이 담긴 양동이와 빈 통조림 통이 있었다. 아, 통조림통으로 몸에 붓는거구나.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빵을 구웠다며 차와 함께 먹으라고 했다. 집 안에 있던 맥주도 갖고와 함께 마셨다. 맥주가 다 떨어지자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선가 또 사왔다. 직접 사냥했다는 호랑이 가죽도 보여줬다. 호랑이는 죽으면 정말로 가죽을 남기는구나. 내 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빅토리노는 자신의 남방을 나와 진호에게 하나씩 줬다.
바람이 많이 불어 차와 빵에서 모래 씹는 느낌이 났지만, 그 느낌마저도 완벽한 밤 이었다.
차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결코 갈수 없었던 동네들과, 마찬가지로 자전거가 어니었다면 만날수 없었던 따듯한 사람들. 자전거 여행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의 밤이었다.
일곱 즈음 일어나 형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박토리노와 다시 출발했다. 작은 마을에 들어왔는데 visa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출국 비행기 티켓을 끊기 위해 다행히 신용카드를 갖고 있던 터였다.식량을 잔뜩샀다. 물에 타는 과일맛 가루들도 여러 종류로 사뒀다. 어제밤 아저씨께서 주신 오렌지 쥬스의 비결이었다.
마을을 나와 한 시간 정도 더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더워서 도로 옆 나무 그늘로 들어왔다. 저녁까지 버틸 생각이다. 빅토리노는 근무가 있다며 가야한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준 너무 고마운데 ᅲᅮ 파세북(facebook)아이디를 주며, 12월에 한국에 갈 예정이니 그때 보자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휴식을 더 취한 뒤 저녁 다섯 시가 되어서 다시 출발했다.
10 시 즈음 됐을까? 도로 옆 농장으로 보이는 곳에 깊숙하게 들어가 텐트를 치고, 1 리터의 물통으로 샤워를 했다. 어제 이후 1 리터의 물이면 샤워와 양치질, 1.5리터면 비누칠도 가능해졌다.
일곱 시가 되어 일어났다. 새벽이라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자전거 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농장을 나가는 길에 주인인 듯한 부자를 만났다. 사정을 설명하며, 허락 없이 들어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들은 엄지를 들어주었다.
세 시간 정도 달렸을까? 주유소가 있는 Juárez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음식들을 산 뒤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바로 옆 차에서 쉬던 아주머니가 빵을 주셨다.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거지 같은 81 번 도로를 빠져나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수도 없이 시도했으나 자전거가 부담이 됐는지 번번이 거절 당했다.
하릴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은행을 발견하고 들어갔지만, 역시나 출금에 실패. 그 근처에 버스 정류장을 발견하고 찾아갔다. 포르모사(Formosa)행 티켓은 현금으로만 끊을 수 있었다.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양해를 구하고 카드로 400 페소를 긁고 현금과 바꿨다. 드디어 남미의 그 흔한 2 층 버스를 타고 간다. 존나 좋다. 순식간에 포르모사에 도착했다. 포르모사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네온사인이 가득하다. 음식점에 들어가 신용카드로 피자와 맥주를 먹고 방을 잡았다. 싸고 더러운 방을
슈발베 타이어 이용 중
아르헨티나에, Jujuy 에 내려와서는 낮에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오전 아홉시만 되면 기온이 40 도 가까이, 때로는 그 이상으로 올라갔다. 낮에는 쉬고(더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만), 저녁과 새벽에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밤에 달리는 일은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길과 이정표가 잘 안보이기 때문에 사전에 지도상으로 숙지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추월하는 혹은 역 주행하는 차량에도 주의해야 하며,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모기에게 피도 헌납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이어라도 펑크 날 시에는 어둠 속에서 구멍 난 부분을 찾고 때우며(또는 튜브를 교체하며) 이 모든 것과 씨름해야 한다.
파라과이를 달리는 지금 자전거로 2,000km 를 조금 못탔다. 빗길, 비포장 및 포장도로, 고속도로 등 안달려 본 도로가 없다. 당연히 유리파편도 밟아봤다.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펑크가 나지 않았다.
트럭과 버스의 도움을 여러 번 받은 이유도 있지만, 그래 도 이렇게 파이팅 있는 쾌속 질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슈발베 타이어와 튜브 덕분 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