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03 - 05. San Pedro
일어나니 부모는 없었다. 어제도 못 뵙고 잤는데...... 어느새 정든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후후이를 빠져나왔다. 고속도로를 라이딩하던 중 수영장이 달린 캠핑장을 보았다. 캠핑을 하기엔 시간이 일렀지만 수영장에서 기분 좀 내보려 캠핑장에 들어갔다. 캠핑장 손님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우릴 반겨줬다. 곧 주인인 호세를 만났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하니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하고, 이곳에서의 캠핑도 무료로 허락해 주었다.
호세가 키우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우리가 밥을 먹으려 하는 내내 옆에서 알짱거려 고추장을 조금 짜 주었다. 너무 매웠는지 바닥에 얼굴을 비벼댔다. 미안해ㅜㅜ
해가 지기 전까지 독서를 하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호세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한 시간 빨라졌다.
새벽이 되도록 바디랭귀지를 나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무한 반복되며, 땀을 엄청 흘렸다. 전 날 새벽, 캠핑장에 비가 오는 바람에 널어놓았던 옷도 다시 다 젖었다. 휴식 겸 옷을 말리기 위해 도로 옆에서 잠시 낮잠을 청한다.
네 시가 넘어 다시 길을 나섰다. 길가에 공사장과 강이 있었고, 관리인 같은 분에게 캠핑을 허락받았다. 강물에 몸을 씻고 밥을 먹었는데, 모기가 정말 많았다. 엄청 많이 물렸다. 아저씨는 벌레 물린 곳에 바르라며 버물린 같은 바르는 약과 물도 새것을 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고양이를 먹어 봤냐, 정말 맛있다 등의 얘기이다. 기분도 나빴지만 왠지 모를 공포감에 휩싸였다. 얼른 자고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식칼을 가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긴장감을 깨뜨린 건 내가 먼저였을 것이다. 나의 방귀 소리에 아저씨가 “앵?” 하며 빵 터졌다. 이번엔 아저씨가 답례로 방귀를 뀌셨고, 우린 아저씨 흉내(앵?)를 내며 꾸역꾸역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뀌고 터지고, 뀌고 터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사진까지 기분 나쁘게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도망치듯 서둘러 출발하려는데 아저씨가 달려 나와 미쳐 챙기지 못한 내 티셔츠를 갖고 가라며 챙겨주셨다. 여행 내내 여러모로 불안하고 예민했기 때문에 아저씨의 호의에 크게 감사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 역시 모기는 많았다.
며칠 째 돈이 없다. 우리는 캐나다의 TD bank 체크카드로 100 불에서 200 불씩 필요할 때마다 U.S 달라고 출금을 했고, 현지 돈으로 환전을 해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이후로는 출금을 할 수가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자비로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16강 진출의 좌절을 맛보며 당대 최고의 스타라이커 중 한 명이었던 바티스타의 닭똥 같은 눈물을 기억한다. IMF 이후 아직까지 국제적 신용을 얻지 못해서 타국 은행 카드를 쓸 수 없는 게 분명하다며, ‘와~ 우리 진짜 똑똑해!’라는 자화자찬도 해본다. 파라과이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며 자위한다.
Yuto라는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과수원을 하는 듯, 주변에 큰 과수원들이 정말 많았다. 돈도 다 떨어졌고 마음 같아서는 서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가다가 과일을 진열해놓은 수많은 사람 들 중 아가씨가 있는 곳을 선택했다.
과일을 먹고 싶은데 우리 돈이 없어. 내 침낭과 네 과일을 바꿀 수 있을 까?(새벽이 되어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기에 침낭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침낭이 얼마야?
몰라(캐나다에서 주운 것이라 가격은 정말 몰랐다). 나 이거, 이거 먹고 싶어
침낭을 오렌지 한 망, 복숭아 14개와 바꾸며 수줍은 미소도 주고받았다. 유토를 빠져나와서 과일도 먹을 겸 휴식을 취했다. 정말 인생 최고의 과일이었다. 너무 맛있었다.
날도 덥고 휴식을 취할 겸 옷을 벗었다. 내 등에 땀이 맺힌걸 진호가 확인했는데, 땀이 아니었다. 화상으로 인한 물집이었다. 상의를 벗고 탄 이후로 몸이 계속 뜨겁고 땀도 잘 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전의를 상실했다. 두어 시간 정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기서 캠핑을 하기에는 도로 바로 옆이라 위험했고, 해는 이미 중천이었다.
여기서 타 죽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하자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그나마 멈춰 선 차들은 우리의 자전거를 보며 자전거 여행을 잘 하라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차를 타고 싶다고요 ᅲᅮ
우여곡절 끝에 히치하이킹에 성공. 자전거도 싣고, 피차 날까지 갔다. 피차날은 큰 주유소가 있는 마을이었다. 편의점에 있던 손님 중 한 분에게 부탁하여 물과 콜라를 공짜로 얻어 마셨다. 구걸하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앞에 있던 빵 가게 아주머니는 수제 바게트 샌드위치를 싸주셨다. 감사의 표시로 유토에서 얻은 오랜지를 하나 드렸다. 아이들도 몰려들었다. 동양인의 자전거 여행이 신기하겠거니 했지만, 목적은 오렌지였다. 조금 나눠줬다.
교외로 나와 주유소 옆 편의점에서 캠핑을 했다. 허벅지가 많이 얇아졌고, 온몸은 벌겋게 달아올랐고(화상과 모기 물린 자국), 등에는 물집이 가득했다. 남미는 도로가 잘 발달해있다. 큰 땅덩어리의 주 운송 수단이 대형트럭이며, 대부분의 주요소는 기사들을 위한 샤워 시설 등 편의 시설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