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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남미 자전거 여행 ⑫ Paraguay

03. 09 - 11. Argentina - Paraguay

by 임성모 Sungmo Lim

0309. 27일 차. 11번 도로


모텔을 나와서 와이파이가 되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여학생들은 우월할 정도로 예뻤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고지를 내려오니 장난 아니다. 역시 카드로 막 긁어먹었다.

예정보다 빠른 일정으로 여행하고 있다. 한국 갈 비행기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사기에는 이미 한도 초과. 캐나다에서 인연이 된 박 사모님의 도움으로 한국 행 비행기 티켓(3/28)을 예약할 수 있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지인들에게 편지도 썼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려는데, 직원이 얼음을 담아가란다. 물통 하나를 비우고 막 담았다. 갑자기 지구촌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파라과이로 가는 도로는 북쪽으로 100km가량 곧게 뻗어 있었다. 잠시 81번 도로가 생각나 겁도 났지만 100km 면 끝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해보자!!

달이 구름에 가렸는지 정말 캄캄했다. 차선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에 반딧불이 정말 많아서 길을 밝혀 주었다. 이윽고 붉게 물든 가득 찬 달이 떠올랐고, 셀 수 없을 만큼의 별들도 반짝였다. 진호는 여기가 우주 같다고 했다. 스물여덟, 내 인생의 화양연화이다. 그런 순간을 모기 때문에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자전거를 세우는 순간 모기떼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다.

그렇게 50km를 더 달려 불빛이 있는 집을 발견했다. 개들이 엄청 짖자 주인이 나왔다. 사정을 설명하고 집 앞에 캠핑을 허락받았다. 시원한 얼음물도 주셨다. 어김없이 1 리터 물병으로 능숙하게 샤워를 한다.


자전거를 타며,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정말 힘이 든다.



0310. 28일 차. Asuncin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왔다. 9 시 즈음되어 파라과이 국경에 도착했다. 미그라시온에서 도장을 받고 아순시온으로 가려는데, 40km를 더 가야 한다고 했다. 해는 이미 중천인데......

근처에 ATM 도 없다. 당연히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순시온에 도착하게 되면 요금의 3 배를 출금해 줄 테니 자전거를 실어 달라는 요구와, 안 된다, 너무 싸다는 등 버스 기사와의 실랑이 끝에 버스 기본요금의 5 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어렵게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도착했다. 버스에는 기사와 요금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이영자의 오라이가 생각났다.


국경


높은 건물들이 하나 둘 보이는 게 거의 다 온 것 같다. 버스 기사는 친절하게도 ATD 이 있는 정류장 앞에 우리를 세워줬다. 하지만 출금이 또 안됐다.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됐다. 진호는 내려서 자전거와 짐을 지켰고, 나는 버스 기사가 붙여준 오라이와 함께 시내에 있는 ATM을 모두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돌아다니며 십 여 개 정도의 ATM에서 출금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되지 않았다. 결국 오라이도 포기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거짓말쟁이가 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도 버렸다. 나는 지금 신고 있는 내 나이키 프레스토 신발을 주겠다고 했다. 많이 닳기는 했지만 메이커와 환율을 감안했을 때 버스 비는 충분히 될 것이라 판단했고, 정말 어렵게 설명했다. 오라이는 나에게 껌을 하나 주고는 썩소를 날리며 떠났다.

다행이다. 물론, 가방에 시내 투어용 메이커 신발이 하나 더 있었지만, 천만다행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침낭을 물물교환 한 뒤로 기회만 생기면 뭐든 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출금을 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식량도 거의 떨어져 갔다. 언제까지고 신용카드를 긁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계산 상으로 한도에도 거의 도달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피자헛이 눈에 들어왔다. 출금도 식후경이다. 역시 신용카드를 펑펑 긁으며 TD 뱅크에 이메일을 보냈다. 분명 캐나다를 떠나기 전에 남미를 수개월 간 여행할 거라고 미리 얘기해놨는데 왜 출금이 안 되는지, 지금 돈이 없어서 곧 죽을 수 있다는, 최대한 빠른 조치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해가 지기를 기다려 다시 라이딩을 한다. 아순시온 대학이 보였다. 캠퍼스의 열기도 느낄 겸 들어갔는데 운동장에서 풋살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이 아니라 교직원들이라고 한다. 한 시간 넘게 함께 볼을 차고, 수돗가 옆에서 캠핑도 허락받았다.








0311. 29일 차. Caacupe


다섯 시에 일어나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출발했다. 어제도 그렇고 지나가는 내내 큰 주유소들이 정말 많았다. 딸려있는 편의점은 대부분 샤워실이 있었고 와이파이가 됐다. 파라과이가 선진국으로 느껴졌다. 내친김에 11 시까지 달려 주유소 옆 나무 그늘에서 siesta. 마실 물도 얼려주셨고,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다시 출발하려는데, 진호 자전거 뒷타이어가 푹 주져 앉았다. 바람을 넣으니 이상이 없어서 다시 출발. 5km도 채 안돼서 계곡이 나왔다. 계곡에서의 휴식을 항상 상상했는데 한참을 자다가 이제 출발하니까 나오다니 ᅲᅮ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 나아간다. 적당한 길이의 내리막길과 그 탄력으로 오르막을 오르길 반복한다.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고 정말 즐거운 라이딩이다. 해가 진다. 휴대용 라이트를 켜는데 부품이 손실되어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낮에 맥가이버칼도 잃어버렸는데......



밤 8 시 즈음 저녁도 먹을 겸 들른 마을에서 우린 완전 구경거리가 됐다. 슈퍼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캠핑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려 본다. 깔끔한 단독주택 앞에서 세차를 하고 계시는 아저씨께 주차장에서의 캠핑을 허락받았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이메일 주소를 받아 찍었는데 잘 안보인다





누군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려고 이메일 주소를 받아 찍었지만 역시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지대에서 내려온 뒤로는 계속해서 무더위와 씨름 중이다 성모는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는데 난 요즘 쉽게 잠들지 못한다. 우리는 보름 전부터 모텔을 이용하지 않고 매일 밤 적당한 곳을 찾아 캠핑을 하고 있다(갖고 있는 카드로 현금인출이 안돼서 본의 아니 게 무전여행이 됐는데 돈이 없으니 꼴도 마음도 남루하다). 이제는 물 1리터로 개운하게 샤워를 할 수 있으며 텐트 치는 일, 짐 정리하는 일은 일사불란하게 꼭 기계같이 움직인다.


현재는 파라과이에서 이과수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남미에서 두 번째로 못 산다는(첫 번째는 볼리비아) 이곳이 참 인상적이다. 지나는 곳마다 신기한 듯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며 수많은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준다. 인사를 할 땐 ‘에헤 아미고’ 이러면서 악수를 청하는데, 진짜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남자는 이런 식이고 여자들 은 쑥스러워하거나 헤벌쭉 웃고 만다)파라과이안들은 아침에는 떼를 마시며 유유로이 시작하고(쇠로 된 스푼을 이용하는데 빨대 기능도 있다. 컵 안에 코카나 다른 잎을 넣어 놓고 찬 물만 리필해서 하루 종일 휴대하면서 마신다. 가끔 자기가 빨던 스푼을 권하는데 기꺼이 달게 마신다.) 저녁이 되면 더위를 피해 온 가족이 마당에 빙 둘러앉아 있거나 마을 한쪽에 마련된 배구장에서 남녀가 섞여 발리볼을 즐긴다.


아시아의 부탄이라는 나라는 국가 경제지수보다 행복지수를 우선 시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린 요즘 한 병에 3,000 과라니(한국 돈 700원) 하는 1리터짜리 환타 파인애플 맛을 달게 즐겨 마시고 있다. 나는 이전에 한국은 살기에 정말 힘든 나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많이 틀렸다. 우리 신세대들은 조금 더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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