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을 빙자한 오랜 소원
여러분은 어떨 때 SNS를 하세요? 저는 어떤 말을 꼭 하고 싶은데 할 만한 사람이 안 떠오를 때, 너무 뜬금포거나 어처구니없거나 때론 너무 진지하거나 무거워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글을 씁니다. 오늘도 그래요.
저는 늘 어떤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요즘 말(?)로 하자면 'X언니'라고나 할까요. 힘들 때, 심심할 때, 내 맘을 모르겠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 맛없는 걸 먹어도, 시답지 않은 얘길 해도 그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고 힘이 나는 그런 사람. 내가 아무 말이나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그런 사람 말이죠. 좀 이기적이죠?
돌이켜보면 나한테도 한때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언니 같은 친구가 있었고요, 진짜 언니이거나 선배이거나 선생님 뻘인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조금 잃어버렸어요(내가 그들을 버렸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소셜미디어 여기저기에 자꾸 외롭다는 투의 글을 올리게 되는데요.
그러다 오랜만에 여행가 김남희 작가님의 책을 읽었어요.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김남희 작가님은 저 혼자 동질감을 느끼면서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분이에요. 20대 초반에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이라는 책을 처음 읽었는데요. 제 최애 여행기인 이 책에서 여행자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 여행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할까. 젊은 여자 혼자서도 여행해도 괜찮다는 걸 많이 배웠어요.
몇 편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남희 작가님이 국내 여행 중에 (밟혀 죽었던가. 말라죽었던가. 아무튼) 길가에서 죽은 개구리를 보고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그 부분을 읽다가 나도 따라서 울음이 터졌지 뭐예요. 하필 도서관 열람실이었는데, 호다닥 도망나와서 엉엉 울었어요. 그런 감정을 공유했던 사이(?)라서 그런지 저 혼자 애틋한 그런 분인데요.
그런 김남희 작가님의 책과 한동안 멀어져 있다가, 이번에 백수 생활을 하면서 다시 만난 거죠. 책의 초반에는 ‘와... 내가 찾던 X언니가 바로 요기 있었네’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읽다 보니 반성했어요. X언니를 찾기 위해서는, 아니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 중요한 사실을 내가 잊고 있었다는 걸 번뜩 깨달았거든요. 받은 만큼 돌려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마음씀을 내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잖아요. 근데 나는 일방적으로 바라고만 있었던 거예요. 나는 이만큼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왜 나를 돌봐주지 않아!라고 혼자 서운해하고 힘들어하면서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볼게요 여러분은 왜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시나요? 혹시 저와 같은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려고요. 제가 앞으로 살게 될 곳은 전주인데요. 집이 크지 않아요. 오신다면 따로 편히 내어드릴 게스트룸도 없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마음이 일렁거릴 때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내어드리고 싶어요.
고민했어요. 내가 지나친 인연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열지 못해 그저 흘려보낸 인연들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근데요, 저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 이름도, 나이도, 때로는 국적도 불명인 그런 타인들에게 오히려 더 솔직해지고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내가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도 안전할 거라는 믿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의 주어가 ‘나’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거라는 그런 안정감 같은 걸 느꼈어요.
그래서 내 공간도 그런 곳으로 만들어보고자 해요. 혹시 저와 오프라인에서의 인연이 없는 분 중에, 하루이틀 쉬어갈 만한 쉘터가 필요하신 분이 계시다면, 아니면 그냥 새 친구가 필요한, 외로운 분이 있으시다면 연락 주세요. 우리 서로에게 X언니가 되어줄, 그런 인연일 수도 있잖아요?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