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여행지에서 짜증이 터져버리다
마지막 근무일로부터 만 3주.
한국을 떠나온 지 이제 딱 보름이 지난 오늘.
결국 묵혀두었던 짜증이 터져버렸다.
모든 것이 갖춰진, 식사 걱정 따윈 할 필요 없는 부모님의 집보다
매 끼니 무엇을 먹을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나의 작은 집이 더 그리운 이유.
나는 엄마에게 딸인 동시에 보호자였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실적을 내면서, 지친 엄마를 돕고 위로하는.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 가면서도, 살뜰하게 식구들을 챙기는
한 마디로 엄친딸. 난 늘 엄마의 자랑이어야 했다.
하지만 난 엄마가 바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빨리 지쳤고, 실증은 그보다 더 빨랐다.
엄마는 그런 내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마다 우린 크게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때 엄마는 무척 좋아했다.
비로소 엄마의 궤도 안으로, 내가 다시 돌아왔으므로.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나의 결정은 그래서 그녀에게 더 충격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내 엄마가 되어주면 안 될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당장 자신의 딸이 살아있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고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지를 염려하는.
그냥 내 편. 나를 판단하고 재단하지 않는,
자랑거리가 아니어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보호막 말이다.
이제 엿새 뒤면 끝나는 이번 여행.
귀국 후 목적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