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첫 문장을 쓰고 현주는 한숨을 쉬었다. 첫 문장이 무척 구리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은 해야했기에 쓰기는 했다. 새 작품을 시작해야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현주는 이 모든 것이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담배를 피워야 다음 문장이 진행되지 싶다. 겨울이라 담배 피우러 외부로 나가기도 귀찮았는데,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까지 하니 더욱 담배피우기가 번거로워졌다. 중학생 아들 동현은 이참에 담배를 끊는 것이 어떻냐고 권했다.
“그러다간 네 다음달 학원비를 낼 수 없을지도 몰라.”
현주의 말에 동현은 어깨를 으쓱 하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는 동안 작품을 쉴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돈이 아쉬웠다. 이번달에도 남편이 돈을 가져올까? 현주는 남편을 생각하자 담배가 더욱 고파졌다. 아무래도 1층까지 내려갔다 와야 할 것 같다.
현주가 패딩을 입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기자 아들 동현이 물었다.
“엄마 또 담배피러 가?”
“일이 잘 안 돼.”
“한 대만.” 현주는 아들을 보고 찡긋 눈 윙크를 했다.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부쩍 지 아빠를 닮았다.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현주는 쑥쑥 크는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성격만큼은 자기 아빠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겨울 바람은 꽤 차가웠다. 담배를 한모금 빨아 있는 힘껏 숨을 내쉬자 연기가 밤하늘에 구름처럼 퍼졌다. 묵은 체증이 뚫리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는 순간만큼은 아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현주는 웹소설 작가였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자신이 웹소설 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 동현도 몰랐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프리랜서라고만 둘러댔다. 19금 웹소설. 현주가 쓰는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19금 웹소설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꿈은 작가였다. 지금도 작가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작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현주가 생각하는 작가는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뭔가 철학적이고 사람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글이 세상에서 대접받기란 연예계에서 아이돌이 되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일이었고, 그런 아이돌이 되기엔 현주의 재능은 부족했다. 수년간 노력했지만, 당선작에 현주의 작품은 없었다.
가벼운 로멘스 소설이나 써볼까?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돈도 필요했다. 잘해서 대박터지면 드라마도 되고, 웹툰으로도 제작되고, 짭잘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터였다. 하지만 이 분야도 만만치는 않았다. 꾸준히 쓰니 읽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간혹 달리는 댓글은 대부분 악플이었다.
- 가난한 남주라니, 남줘라!
- 여주도 처음, 작가도 처음인듯?
지속되는 악플을 받고나서야 현주는 공부했다. 사람들이 어떤 글을 원하는지, 요즘의 경향은 무엇인지. 공부를 하게 하는 동력은 돈이었다. 돈이 궁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현주의 글을 읽는 사람이 늘어났다. 거기엔 현주의 과감한 19금 묘사가 한 몫했다.
소설을 쓸 때 현주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이 힘들었지 하다보니 19금 묘사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겼다. 현실에선 섹스리스 부부였지만, 소설 속에선 완벽한 남자와 불타는 밤을 보내곤 했다. 소설 속 남주를 쓸 때, 현주는 드라마 속 연예인을 떠올렸다.. 공유, 이도현, 김수현, 현빈 등.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들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묘사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잘생겼고, 운동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돈도 많았다. 그런 남주를 설정하니 19금 묘사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 이런 남자라면 나라도 자고 싶겠어.’
모든 것이 매력적이다. 남주는 여주에게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다고 말한다. 다만 성격이 좀 차갑고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여주가 열고, 남자의 모든 것을 갖는다. 돈도, 마음도, 몸도.
현주는 대박은 아니었지만, 웹소설로 어느 정도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다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불법적인 일도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밝히기가 꺼려졌다.
“언니는 무슨 일 해?” 처음 미라가 물었을때 현주는 프리랜서라고 대답했다. 무슨 프리랜서냐는 질문에 현주는 “그냥 출판 관련된 일”이라고만 둘러댔다.
“출판? 그럼 책 만드는 거야?”
“응? 뭐 비슷한 거.”
“동화?”
“아니, 그냥 어른들 책이야.”
어른들 이야기라고 말해야 정확하겠지만, 어른들 책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더 캐물으면 곤란한데? 라고 생각하는 사이, 미라가 이어서 말했다.
“난 일년에 책 한권도 안 읽는데, 그게 돈이 돼?”
미라의 말에 현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이 안 되긴하지. 그래서 웹소설을 쓰는 거니까.’
미라는 현주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변명하듯 말했다.
“전엔 요리책 정도는 봤는데, 요즘은 유튜브에도 워낙 잘 나오니까.” 미라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 재미있는게 넘쳐나는 세상이긴하지.”
성인 웹소설을 쓰는 현주와 1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미라가 친해진 계기는 아이들 책이었다. 현주는 아들 동현이가 읽던 책을 동네 맘카페에서 몇 번 무료로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미라가 받아갔다. 미라는 고맙다면서 자신이 만든 반찬이나 빵을 나누어주었다. 책과 음식의 나눔. 어울릴 수 없는 그들이 친해진 계기였다.
현주가 나눔을 한 책은 하은이가 읽기엔 다소 글밥이 많은 책이었음에도 미라는 나중을 생각해서 모아둔다고 했다. 미라는 자신의 책은 사지 않아도 아이 책은 많이 사들였다. 어릴때는 무조건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책을 전혀 읽지 않으면서 아이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상하게 여겨졌는데, 그 바람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포커스 되어 있음을 알았다. 책을 많이 읽어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람. 공부를 잘해서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안착하기 위한 바람. 현주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책을 좋아했던 현주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책을 좋아했던 남편은 여러 번 사업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미라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현주와 남편은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둘은 책을 좋아했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현주는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좋아했다. 현주의 꿈은 소설가였다. 남편은 현주의 글을 읽어주는 유일한 독자였다. 남편은 언제나 현주를 응원했다. 그는 현주에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할 때도, 자신이 돈을 벌테니 너는 너 하고싶은거 하라면서 청혼을 했다. 너의 꿈을 지원해주겠다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너의 꿈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은 나의 꿈도 지원해달라는 말의 다른 의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주가 작가의 꿈을 품고 있었던만큼 남편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는 사업가가 꿈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싶다고 했다. 책을 많이 읽은만큼 이상도 높았다. 한참 벤처붐이 일던 시기, 남편은 잘 다니던 중소기업을 나와 대학 선후배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현주는 강력하게 반대할 수 없었다. 그가 현주의 꿈을 응원하는만큼 왠지 현주도 그의 꿈을 응원해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그렇게 같은 곳을 보고 가는 것이라는 철학이, 개똥 철학이 현주에게 있었다.
세상은 초보 사업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은 2년만에 폐업을 선언했다. 한 번 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사업을 하던 사람도 그 꿈을 내려놓지 못했다. 남편은 재기를 꿈꾸었다. 사업은 그동안 모은 돈과 집 보증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남편의 실패가 쌓여갈수록 현주의 집은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서울 전세에서 월세로, 수도권 월세로 이사를 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원래 약속대로 너는 돈을 벌고, 나는 글을 쓰고. 그렇게 살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주가 남편에게 19금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네가 무얼 쓰든 응원할게”였다. 결혼 전에는 응원한다는 말이 힘이 되었는데, 결혼 후에는 그 말에 답답증이 일었다. 현주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 시점이 그 즈음이었다. 답답한 속을 풀고 싶었다. 술은 마시면 취해서 글을 쓸수 없었지만, 담배는 피우고 나면 글이 잘 써졌다.
지금 남편은 제주에 있다. 제주에 있는 친구가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데, 자신도 거기 가서 숙식을 하며 기술을 배워오겠다고 했다. 겨울에 제주라. 하필이면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는 시점에.
“좋겠네.” 현주가 말했다.
“사업차 가는 거야.” 남편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뒤에 이어진 말은 “돈은... 생기면 보낼게”였다.
“생기면, 이라니? 그럼 얼마 받을지 이야기도 안했단 말이야?”
“일을 배우러 가는게 먼저라고 생각해서...숙식도 제공해주니까...” 남편은 말끝을 흐리고 고개를 숙였다.
예쁜 말을 쓰는 남편은 정확하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특히 돈에 관해서는 쑥맥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업이라니. 현주는 한숨을 쉬고 이야기했다. “그래, 응원할게.”
우리는 응원하는 사이니까. 현주는 그날도 조용히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현주는 담배를 피우며 11층 미라네 집을 올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는 기간만큼은 자신의 집이 미라네 집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현주는 미라를 은근히 부러워했었다. 5층보다 11층 전망이 좋았고, 현주는 월세였고, 미라는 자가였다. 돈을 벌기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부러웠다. 하지만 미라는 늘 남편에게 불만이었다. 얼마전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부탁했는데 잊었다며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그 불만을 들으며 현주는 생각했다.'그렇게 돈을 성실하게 벌어오는 남편이라면, 음식물쓰레기는 그냥 내가 버릴텐데.' 현주는 남편을 떠올렸다. 그는 음식물쓰레기도 잘 버렸고, 분리수거도 알아서 잘했다. 동현에게도 다정했다. 하지만 돈버는 능력이 없었다. 현주가 원했고, 애초에 약속했던 그 능력.
어느 새 담배끝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현주의 쉬는 시간이 끝나감을 알리는 표시였다. 현주는 마지막 남은 꽁초를 손가락으로 툭툭 털고, 신발로 불씨를 밟아 껐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앞집 여자가 퇴근하는 것이 보였다. 현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직 담배냄새가 현주의 몸에 남아있을 터였다. 현주는 19금 웹소설만큼이나 담배 냄새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현주는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여자는 명품백과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현관 입구에서 멈춰서더니 종이가방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운동화였다. 여자는 힐을 운동화로 갈아신더니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참으로 찰랑거리는 포니테일과 H라인 스커트 아래 하얀 운동화가 보였다. 그녀의 씩씩한 걸음걸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실패 따위는 모른다는 당당한 걸음걸이.
여자의 걸음걸이를 보고 있자니, 현주는 자신의 젊은시절이 떠올랐다. 호기롭게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젊은 날, 쓰고 싶은게 넘쳐나서 쓰지 않고는 못배기던 나날들. 현주의 명치 끝에서 어떤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실패에 대한 기억을 비집고 젊은날의 꿈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때 입금문자 알람이 울렸다. 남편이 보낸 생활비였다.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 알람은 현주의 꿈을 머리에서 어깨 정도까지 빼내 주었다.
'그래, 딱 한달만 해보는거야.'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가 끝날때 까지만, 중간에 멈추더라도, 다시 실패하더라도.
곧이어 남편의 톡이 도착했다.
- 다음엔 더 노력해볼게.
‘그래, 너도 노력하는거겠지, 하지만 잘 안되는 거겠지. 나도 너도, 지난한 올 겨울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현주는 집으로 돌아와 커피와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밤새워 욕구를 불태우리라 다짐하면서. 커피를 마시자 달고 쓴 맛이 느껴졌다. 마치 결혼처럼. 현주는 아까 썼던 첫 문장을 지웠다. 그리고 떠오르는 문장을 다시 썼다.
'그들은 봄을 기다렸다.'
제목은 <겨울을 건너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