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닉네임은 ‘강남건물주’였다. 줄여서 '건물주'라고도 했다. 남편의 소망을 담은 것이었다. 그 닉네임이 활용되는 곳은 부동산카페 였다. 남편은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고, 실행력도 좋았다. 각종 부동산 강의를 듣고, 관련된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갔다. 이 아파트에 이사오게 된 것도 남편 때문이었다. 주거비용을 줄여서 종잣돈을 만들고, 투자를 해야한다고, 돈은 굴려야 한다고. 남편은 명주를 대상으로 부동산 강사처럼 말했다.
“이 낡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산다고?”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명주의 반응이었다. 명주의 안색이 바뀌는 것을 보며 남편이 급하게 둘러댔다.
“나중에 강남에서 살게 해줄게.”
“난 강남 같은 곳은 관심 없어. 그냥 편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명주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뭐든 한번 정하면 흔들림없이 불도저처럼 직진하는 남편의 성격을 막을수는 없었다. 그들은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신축 아파트의 전세금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왔다. 장점이라면 직장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었다.
이사 온 후 몇 달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시나리오에도 없던 일이었다. 명주는 이런 낡은 아파트에 살게 된 것,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 이런 남편을 선택하게 된 것, 모든 것에서 짜증이 났다.
또 명주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입사동기였던 남편의 연봉이 명주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두 번째 이직을 했다. 연봉을 2천만원 올려받았다. 명주는 그런 남편을 보면 든든하기보다 뭔지 모를 질투감이 속에서 올라왔다.
둘은 신입사원 연수원때 만났다. 한동안 사내커플로 지내다 남편은 2년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몸값을 높여서. 그리고 이번에 한번 더 이직하면서 명주의 연봉과는 3천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명주도 이직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연봉상승을 보면서 깨달은 바도 있었고, 아이 없을 때 많이 모아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도 있었다. 게다가 작년에 새로 부임해온 팀장과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컸다. 남편도 명주의 이직을 부추겼다. 이직시장에서는 가장 옮기기 좋고, 몸값 올리기 좋은 직급이 대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쉬울거라는 예상과 달리 명주는 번번히 이직에 실패했다. 남편과 비슷한 수준의 서울의 중위권 대학 졸업, 비슷한 토익점수, 비슷한 경력이었다. 같은 회사에 다닐때도 명주가 일은 더 잘한다고 평가 받았다. 남편은 과도하게 회사 일에 몰입하는 경우가 없었다. 거절할 줄 알았고, 절제할 줄 알았다. 모든 마음과 몸을 회사에 올이하는 명주에게 가끔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회사 일과 자기를 좀 분리해보는게 어때?" 등 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집안일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고, 집안일과 자신을 잘 분리할 줄 알았다. 그런 남편이 얄미웠고, 짜증났다.
명주는 헤드헌터를 통해서도 이직을 시도했다. 카페에서 만난 헤드헌터는 닳고닳은 업계의 고수처럼 기선제압을 했다. 부정적인 의견을 먼저 깔고 시작했다. 연봉을 많이 높이지 않으려는 심산인것 같았다.
“너무 큰 목표는 가지지 않는 것이 좋아요. 이직시장에서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를 가장 반기지 않거든요.”
“왜죠?” 명주가 물었다.
“언제 임신할지 모르기때문이죠.”
워킹맘보다 더 반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명주는 뭔가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아무튼 열심히 노력해볼게요.”
헤드헌터는 뭔가 큰 아량을 베풀듯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헤드헌터가 떠난 카페에서 명주는 남은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너무 쓰다고 느껴졌다.
명주의 남편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이를 미루자고 제안했다. 명주도 아이를 급하게 가질 생각은 없었다. 한참 일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고, 이런 낡은 아파트보다 좋은 환경에 자리잡고 아이를 갖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전업주부로 보이는 여자와 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가 계단을 오르다가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을 보며, 남일같지 않았다. 만약 명주도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았더라면 같았을 것이다. 명주는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겪으며 새아파트에 대한 욕망이 더 확고해졌다. 남편에게 새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여전히 낡더라도 입지가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강남에 새아파트로 가야겠네.”
“그렇지! 그래서 재건축이 될만한 아파트를 사야하는거지.”남편은 개포동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개포동이 강남이었나? 명주는 그만큼 강남이라던가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 개포동을 이야기 하고나서야 명주는 부동산 앱에 들어가 아파트를 검색해 봤다. 명주는 깜짝 놀랐다. 40년 된 20평대 아파트가 20억 정도였다. 개포동에 자리잡으려고 하다간 명주 생물학적 나이가 더는 아이를 가질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혹은 아이를 갖지 않더라도 그곳에 집을 살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명주가 이직에 몰두하지만 소득이 없는 것만큼, 남편도 재테크에 몰두하는 것에 비례해서 큰 소득은 없었다. 남편은 부동산 강의를 듣고, 지방 몇 군데 투자했다. 모두 오래된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방의 구축 아파트는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고, 그동안 서울과 신축 아파트는 천정부지로 값이 올랐다. 아파트값 상승으로 언론과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자자를 좋게 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세금만 많아졌다.
아파트를 보는 안목은 명주가 훨씬 좋았지만 남편은 늘 자신의 안목을 고집했다. 입지가 좋아서, 재건축이 될 것 같아서 등을 강조했다. 남편이 말하는 입지는 대부분 교통편에 집중된 자신의 감각이었고, 재건축은 시기상조인 아파트 뿐이었다. 오히려 명주가 언급한 신축아파트가 잘 올랐다. 남편의 전략은 지방 아파트가 오르면 하나씩 팔아서 점점 중앙으로 접근한다는 논리였고, 그 논리를 꺽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에게 “왜 하필 강남이야?”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고향이잖아. 돌아가고 싶어.” 남편이 대답했다.
강남이 고향이라니? 돌아가고 싶다니?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빽빽한 그곳은 고향의 이미지와 멀지 않나? 명주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인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말한 고향이라는 감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이 고향이라고 하기엔 좀 삭막하지 않아?" 명주가 말하자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라고. 정도 있고, 추억도 있어"라는 남편의 응수가 돌아왔다.
남편은 개포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남편의 집은 넉넉한 편이었다고 했다. 대학입학 후 금융위기가 왔고, 남편의 아버지는 비자발적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개포동 집을 팔고, 수도권 새아파트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아이도 대학에 입학했고, 퇴직도 했으니 더는 강남에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집을 팔고 남는 돈으로 뭐라도 해보겠다는 의욕도 있었다. 집을 판 돈과 퇴직금으로 시아버지는 의욕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설렁탕집을 인수했다. 회사 다니면서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설렁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쌓아온 직장인의 성실함은 장사에서 빛을 발하기 힘들었다. 설렁탕이 썰렁탕이 되었고, 손님들은 점점 발길을 끊었다. 쓰러져가는 가게를 보며 계속 힘을 내기엔 시아버지는 늙은 나이였다. 젊은 날의 모든 열정과 힘을 직장에 쏟은 탓이었고, 배웠던 모든 지식도 직장에 놓고 나온 탓이었다.
남편은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직장일에 너무 올인하지 말 것, 한 회사에 오래 머물지 말 것, 일찍부터 회사 밖의 생활을 준비할 것. 그가 과도하게 회사생활에 몰입하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명주가 보기에 남편은 부동산 투자보다는 회사일에 더 재능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에 대해 거절도 잘했지만, 맡은 일은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사내정치도 좀 한다면 임원도 어렵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강남건물주’였다.
그는 엉뚱한 곳에서 성실했다. 평일 저녁에는 부동산 강의를 듣거나 재테크 카페 회원들과 만나느라 늦게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를 직접 수리해서 세를 놓는다거나, 주말엔 지방으로 임장을 다니느라 바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특히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는 부분에서 명주와 큰 의견차이를 보였다. 명주는 그 시간에 돈을 써서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조언했지만 남편은 한푼이라도 아껴야한다며 직접 수리했다. 얼마전 지방 아파트를 수리하는 날에는 명주까지 가서 페인트칠을 해야 했고, 명주의 머리에는 페인트자국이 남았다. 그날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 그 뒤 남편은 혼자 다녔다. 남편은 미래에 살았고, 명주는 현재에 살았다. 둘의 마음은 평행선처럼 만날 수 없는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그날은 헤드헌터로부터 불합격 메일을 받던 날이었다.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에서 “아이는 언제 낳을 예정이냐”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불합격 메일을 받고 보니 기운이 빠졌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강남, 새집, 이직. 아이를 낳으면 그것들을 누릴수는 있을까? 그것들을 누리면 행복할까?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퇴근길이 너무 멀다고 느껴졌다. 명주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거절 메일을 한 번 받을때마다, 직장생활이 우울하다고 느껴질때마다, 남편이 타인처럼 느껴질 때마다 명주는 쇼핑을 했다. 그렇게 쌓인 쇼핑목록에는 명품가방, 악세사리, 화장품 등이 있었다. 이번에도 명주의 발길은 백화점으로 향했다. 좋은 향기를 풍기는 백화점 1층에 들어설때마다 입구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돈을 버는 이유가 분명해지기도 했으니까. 남편이 강남건물주가 되고 싶은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장소가 명주에겐 백화점이었다. 명주는 그날 운동화를 샀다. 매번 운동하리라 다짐하면서 실천을 못했었다는 게 떠올랐다. 운동화를 사면 운동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힘을 내야 하니까, 그런 마음이 운동화를 사게 만들었다.
명주가 퇴근 후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식품코너였다. 마감세일을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팩에 만원 세일하는 전과 반찬 몇 가지를 담았다. 식품코너에는 마침 연말이라 와인세일도 하고 있었다. 명주는 와인 구경을 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무스카토에서 눈이 머물렀다. 저렴하면서도 달달한 와인을 좋아했다. 자신도 모르게 무스카토에 눈이 머문 자신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났다. 회사 입사동기이자, 질투의 대상이었으며, 낡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는 남자.
그래, 그래도 너밖에 없지. 당장 술 같이 마셔줄 사람. 얼굴이 벌개지도록 마셔도 창피하지 않은 사이. 마시고 바로 퍼져도 좋은 사이.
명주의 카톡 친구리스트 제일 상위에 그가 있었다. ‘남푠’이라는 단어가 하트 사이에 있었다. 둘이 찍은 다정한 사진 아래에는 ‘강남건물주와 그의 아내’라는 프로필명이 보였다. 강남 건물에 미쳐있어도 아내는 잊지 않을 모양인가보다. 명주는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 언제 와? 와인 사갈건데.
- 오! 와인? 좋지! 치즈도 있나?
- 사갈게.
쇼핑을 마치고나자 명주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운동화로 갈아 신고 계단오르기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오늘은 남편이 조금 늦게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와인은 상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