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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Oct 04. 2024

1102호



경옥은 1950년생이었다. 경옥은 자신의 나이를 상기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아침마다 관절이 뻣뻣하고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지만, 많은 것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는 나이였다. 아들이 둘이나 있음에도 혼자 사느냐고 물어보면, 요즘 누가 아들네 얹혀 사느냐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경옥도 가끔은 혼자가 싫었다. 아들들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더니, 결국 남은 건 혼자였다. 게다가 나이들면서 찾아온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은 고독과 함께 새벽에 찾아오곤 했다. 종종 새벽에 깨서 덩그러니 혼자 거실에 앉아 있노라면 3년 전 심장마비로 떠난 남편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갑자기 갈 걸 알았더라면, 좀 더 잘해주는건데 싶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가 공지되자 경옥은 덜컥 겁이 났다. 11층까지 어떻게 다닐 것인가. 그렇다고 미국에 있는 큰 아들한테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은 눈치가 보였다. 무엇보다 며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빌 언덕이 있으면 모른 척 비비기라도 해야 할 상황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아내와 상의 후 연락을 준다더니,  며느리가 답을 주었다.


“어디 불편하셔서 계시겠어요? 계단 오르내리다가 더 큰 사고 날 수도 있고요. 그냥 저희 집으로 오세요. 겨우 한 달인데요. 한 달 동안 제가 못 모실까봐서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경옥은 불편했다. 며느리가 친절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말 사고가 난다면 더 힘들 수도 있고, 혹은 돈이 필요해서일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며느리는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친절했는데, 대부분 돈이 필요할 때였다. 큰 집으로 이사해야하니 돈을 보태달라거나, 생활비를 보태달라거나. 아들을 통해 요청해왔다. 대기업 월급으로 뭐가 부족한지 이해할 수 없어 경옥이 머뭇거리면 며느리는 아이들을 내세웠다.

“요즘 학원비가 너무 비싸요. 애가 하고 싶다고 하는데 안 보낼 수도 없고. 애 아빠 월급으로는 두 아이 학원비는 택도 없어요.”

며느리는 아이들 케어 때문에 일을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경옥도 요즘 아이들은 아빠의 무관심과 조부모의 돈으로 큰다는 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내세워 생활비를 달라고 하는 며느리가 얄미웠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이혼이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그런 염려가 경옥에게 있었다. 경옥은 알면서도 속아주며 돈을 보내곤 했다.


가끔은 아들이 가져다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는 며느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애도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자신이 살았던 세월에 비하면 세상 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때때로 생활비도 보태주지 않는가. 줄 돈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경옥은 혹시 미국에 있는 첫째가 알면 서운할까 싶어 돈을 줄때마다 “네 형에게는 말하지 마라”고 일러두었다.


돈은 고부간의 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윤활제였다. 돈이 갈때마다 며느리는 선물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경옥의 집에 방문하거나 경옥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것이 생색내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들내외가 집에 오면 이것저것 챙겨 먹이느라 피곤했고, 여행은 대부분 당일치기 여행이라 다녀오면 더 피곤했다. 며느리는 자신의 집에 경옥을 초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경옥도 함부로 가지 않았다. 며느리의 행동에는 그런 선이 분명히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집에 오라고 한 것이다. 아마 또 돈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경옥은 그 돈으로 호텔을 갈까, 잠시 고민했다. 아니다, 호텔에 쓰느니 그냥 손주들한테 가는게 낫지 싶어 며느리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래, 이번엔 신세 좀 지마.”


뻔한 불편함이 예상되지만, 겨우 한 달 아닌가. 며느리도 그 정도면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이리라. 


아들은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가 시작되기 전 날 경옥을 데리러 왔다. 퇴근하고 온 터라 밤 10시가 넘었다. 경옥은 옷 몇 가지만 가볍게 챙겨서 차에 올랐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야경을 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들과 단 둘이 있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들과의 시간은 사는 이야기, 침묵, 또 사는 이야기, 침묵을 번갈아가며 어색하게 흘렀다.


“참, 지난번에 초등학교 동창회 갔다가 그릇가게 김사장 아저씨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겨울밤의 차가운 침묵을 깨고 둘째가 말했다. 그릇가게 김사장. 경옥은 기억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떠올렸다. 젊은 날의 김사장은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착하고 수더분했던 사람, 말이 많지 않던 사람, 경옥을 보면 수줍게 웃던 사람. 경옥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김사장의 뒷모습이었다. 아들은 김사장과 자신의 관계를 알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래?” 경옥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머니하고 김사장 아저씨 친했잖아요. 저희가 도움도 많이 받고. 알았으면 문상이라도 가는 건데.”

“그러게. 연락 안 한지 오래되니 죽어서야 소식을 듣네.” 경옥은 쓸쓸하게 대답했다. 

"대장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데요."

"그렇구나."

아들의 기억 속에서 김사장은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었지만, 경옥에겐 특별한 남자였다. 경옥의 눈에 눈물이 잠시 맺혔다. 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경옥은 창문을 조금 열고 얼굴을 찬바람에 맡겼다.

“감기 들어요.” 아들이 말했다.

“잠시만. 멀미 날 것 같아서.”

경옥의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김사장을 생각하다가 자신이 과일장사를 했던 시장을 생각했고,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은 경옥보다 한 살 위였다. 부모가 정해준 혼처였지만, 경옥은 남편이 좋았다. 경옥은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지만,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경옥은 남편에게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았다. 다정다감하고, 무엇보다 훤칠한 키가 마음에 들었다. 경옥의 키는 작았지만, 남편의 키는 컸고, 어깨도 넓었다. 무엇이든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어깨였다. 인물도 제법 좋아서 영화배우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경옥은 그런 남편이 좋았다. 그러나 인물도, 키도, 어깨도, 결혼생활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남편의 문제는 책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은 책을 좋아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대학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늘 책을 끼고 살았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주말에도 책을 읽었다. 경옥은 남편이 책을 읽는 동안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잘은 모르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남편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경옥도, 남편도, 공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니 자식들은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주자고, 서로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책이 인생에서 늘 좋은 것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어느 날 한 사이비종교 서적에 심취하더니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녔다. 세상이 곧 망할 예정이니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도 그만두고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다녔다. 그때 경옥 의 뱃속에는 둘째가 있었고, 만삭이었다. 첫째는 세 살이었다.


경옥은 세상을 구하기 전에 가족을 먼저 구하라고 말렸지만, 남편의 뜻은 확고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가족을 구하는 것이라고. 세상에 곧 위기가 닥칠 것이니 기도하고 기도해서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그것이 당신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편은 집 보증금도 빼서 종교단체에 기부하려다 경옥에게 들켰다. 경옥은 그것만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경옥은 만삭에도 막걸리 한 사발을 마셨다. 부엌 바닥에 막걸리 주전자를 내동댕이치며 울고 통곡했다. 남편은 그런 경옥을 보고 더는 집 보증금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을 나갔다. 세상을 구하고 곧 돌아오겠다는 쪽지 한 장을 남겼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 남편은 종교단체에 들어가 집단 생활을 한다고 했다. 


경옥은 남편 없이 둘째를 낳았다. 남편 없는 시간 동안 경옥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이들은 친정엄마가 맡아서 키워주었다. 경옥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았다. 쑥떡을 만들어 등산로 입구에서 팔기도 했고, 식혜를 만들어 공원에서 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시장입구에서 반찬을 만들어 팔았다. 유동인구가 많아 쏠쏠했지만, 시장 상인들한테 쫓겨나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때 경옥의 소원은 시장에 자리를 하나 얻는 것이었다. 쫓겨나도 다시 자리를 잡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경옥의 억척스러움은 결국 노점에 자리를 얻는데 성공했다. 나중엔 대출을 받아 시장 어귀에 과일가게 하나를 인수했다. 그런 과정에는 경옥을 눈여겨봤던 김사장의 도움이 있었다. 김사장은 시장에서 그릇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의 터줏대감이었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 년 전, 상처를 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고 했다. 김사장은 무뚝뚝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경옥을 잘 도와주었다. 경옥이 자기 누이를 닮았다고 했다.


경옥은 그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했고, 그가 베푸는 혜택은 마다하지 않았다. 김사장은 노점 자리를 알아봐주고, 상가 자리가 났을 때 제일먼저 귀뜸을 해주었다. 대출 보증도 서 주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경옥의 과일가게도 없었을 것이다. 과일가게 인수 후에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 납품하는 것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여우같은 과일가게 여자가 김사장을 이용해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옥은 김사장과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다만 김사장이 어느 선 이상 넘어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쳤다. 만남은 딱 시장에서만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경옥도 그가 싫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경옥은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의붓아버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고민을 하다보면 경옥의 애정은 급격하게 식었다. 게다가 법적으로 경옥은 혼자가 아니었다. 집을 떠난 남편은 소식은 없을지언정 법적으로는 아직까지 경옥의 남편이었으니까.


남편이 돌아온 것은 5년 만이었다. TV에서 사이비종교 교주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석하던 때였다. 뉴스에서는 사이비종교 이름과 함께 사기, 폭력 등의 단어가 같이 흘러나왔다.


어느 퇴근 길, 경옥의 집 앞에 그가 서 있었다. 후줄근한 잠바와 구깃한 면바지, 까칠한 수염이 입과 턱 주변을 덮은채로 경옥을 보고 있었다. 경옥은 그를 모른 척 했다. 경옥이 모른 척 지나치자 “미안하오”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경옥은 대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던 사람 아니던가.


남편의 장점이자 단점은 끊임없는 기다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그는 계속 경옥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래도 애들 아부지 아니냐. 도박하는 거, 바람피우는 거, 때리는 것만 아니면 그냥 살라는 말도 있잖니. 여자 혼자 아들 둘 키우는 것도 힘들고. 그냥 데리고 살그라.”


보다 못한 친정엄마가 경옥을 달랬다. 남편의 끈질긴 기다림, 아직 어린 아이들. 시간이 흐른 후, 경옥은 닫혔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편은 대문을 걸어 들어와 다시 경옥과 살게 되었다. 언젠가 큰 아들이 그때 왜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였냐고 경옥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글쎄다. 그걸 알면 인생 다 산거지”라고 대답했다. 자신도 그때 왜 남편을 받아들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냥 살다보니 인연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남편은 5년의 세월을 사죄하듯 경옥과 아이들에게 잘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는 충실했다. 남편은 경옥을 도와 과일가게를 운영했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버지였다. 책을 좋아했던 남편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저녁 늦게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주기도 했다. '그래, 그렇게 앞으로만 잘하면 된다, 그럼 된 거다.' 경옥은 지난 5년의 세월을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온 지 몇 달, 경옥이 혼자 과일가게에 있을 때 김사장이 왔다. 그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릇가게를 정리할 거라 앞으로는 얼굴 못 볼 것 같다고, 그래서 왔다고, 잘 있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섰다. 그날따라 그의 등이 몹시 작게 느껴졌다. 그의 머리위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경옥이 말했다.
“미안해요.”
그가 뒤돌아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좋아서 한 걸요. 뭐.”
그는 긴 그림자를 그리며 사라졌다. 그것이 김사장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후 경옥은 김사장을 잊고 살았다. 오래 기억할 만큼 애정을 나누었던 것도 아니었고, 오랫동안 기억하기엔 현실이 벅찼다. 남편이 돌아왔어도 아이들 키우며 먹고 살기엔 여전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남편과는 그럭저럭 편안한 인생을 살았다. 때론 싸우고, 때론 화해하고, 때론 지쳐서 서로를 피하면서.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과일장사는 접었다. 그동안 아이들 운으로 장사를 한 것인지 아이들 졸업과 동시에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큰 도로가 생기고, 마트가 들어서고,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자 돈 들어갈 곳도 없었고, 모아둔 돈은 둘이서 살기에 충분했다. 가게를 정리하고 경옥과 남편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장사하느라 여행을 거의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나니 결국 남은 건 둘이라는 생각에 여행은 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어느 바닷가에서 경옥은 남편의 옆 모습을 보았다. 같이 늙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짠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망한다고, 세상을 구할거라고 힘차게 말하던 젊은이는 이제 경옥 앞에 없었다. 늙은 남편은 경옥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자주 말했다. 마치 먼저 갈 것을 알았던 것처럼.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그 시간, 종교에 빠졌던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후회는 안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당신에겐 미안해.”


남편과 김사장을 생각하다보니 어느 새 차는 아들네 아파트에 도착해 있었다. 1시간 남짓이었는데, 과거를 회상하다보니 아주 오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김사장과 남편은 이제 경옥에게 과거 사람이 되었다. 경옥은 김사장에게 미안했고, 남편은 경옥에게 미안했다. 경옥은 그때 김사장을 보내고, 남편을 다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각자 후회 없이 좋은 선택을 했다. 사랑, 미움, 미안함, 고마움. 어쩌면 인생은 알 수 없는 선택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그 반복 속에서 인간은 그저 배우며 흘러갈 뿐. 언젠간 경옥도 흘러간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왕이면 미안함보다는 그리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경옥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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