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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Sep 24. 2024

1101호

  미라의 집은 11층이었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5살 아이였다. 걸을 수 있는 나이라지만 아이가 11층까지 걸어온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앞집에 사는 노인은 한 달간 아들네 집에 들어가 같이 산다고 했다. 미라에게 5살 아이와 어떻게 걸어다니냐며 어디든 빌붙을 데 있으면 한달간 신세 좀 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미라는 조용히 웃고, 뒤돌아서 한숨을 쉬었다. 빌붙을데라... 시댁은 지방에 있었고, 친정은 미라가 편치 않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정엄마와 한달을 같이 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참는 것이 나았다. 미라는 무엇이든 잘 참는편이었다. 다만, 아이가 걱정되었다. 다른이들의 조언대로 시댁에라도 가 있어야 하나 고민되었다. 


“앞집 어르신은 한 달간 아드님네 가서 산데. 우리 보고도 어디 가 있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던데.”


  미라가 말했을때, 남편의 눈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웹툰을 보는 모양이었다. 귀는 미라를 향해 열려있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라는 더는 묻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다음 웹툰 스토리가 무엇보다 중요할테니.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자신의 퇴근을 걱정했다. 일도 힘든데, 11층까지 어떻게 걸어 올라오느냐는 것이었다. 미라는 무언가 말하려다 참았다. 그는 하루에 한 번만 올라오면 된다. 퇴근 할때만. 하지만 미라는 아이 등원할 때, 장보러 갔다 올 때,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올 때 등 남편보다 빈번했다. 운동삼아 다닌다고 하기엔 미라의 집은 너무 높고, 계단은 많았다.


  공사 시작 후, 미라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음식물쓰레기를 부탁했다. 출근하는 길에 버려달라고. 원래는 미라가 모두 담당하던 것이었지만, 한번이라도 오르내리는 걸 줄이고 싶어 부탁했다. 남편은 문앞에 두면 출근하면서 가져가겠다고 하더니, 그대로 출근해버렸다. 나중에서야 깜박했다는 문자가 왔다. 그는 미라의 부탁을 종종 잊었다. 미라는 한숨을 쉬며 문앞에 놓고간 음식물쓰레기를 치웠다. 미라는 그날 저녁, 볶음밥을 세 그릇에 나누어 담은 뒤, 아이와 자신의 볶음밥에만 참기름을 듬뿍 뿌렸다. 그리고 달걀 후라이를 덮었다. 남편은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킨채 볶음밥을 열심히 먹었다.


  남편이 자신의 퇴근 다음으로 걱정한 것은 아이였다.

  “하은이가 여기를 어떻게 올라왔데?”

  엘리베이터 공사 첫날, 퇴근한 남편은 현관문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물었다.

  “5층에 있는 현주 이모네서 놀다 올라왔어.” 아이가 미라대신 대답했다. 아이가 말한 현주 이모는 동네에서 친하게 된 언니였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다. 5층까지 간신히 올라와서 조금 쉬고 있을때, 현주 언니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들어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마침 마감 끝나고 여유가 좀 있다고 했다. 5층에서 조금 쉬니, 11층까지 올라오는데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러네, 조금 쉬다가 올라오면 낫겠네.” 남편이 말했다.

  그러더니 남편은 바로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다. 계단 중간에 의자를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5층, 10층 중간참에 의자가 놓였다. 편의점 앞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파란색 의자였다. 남편은 자신이 뭔가 큰 일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마치 이 집을 샀을때처럼.


  집은 남편 명의였다. 신혼집은 시댁에서 전셋집을 마련해주었다. 몇 년 후, 남편은 모아놓은 돈과 대출을 합해 집을 샀다. 회사에서 가깝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수도권 외곽이라 산이 가까웠다.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의 성향과 딱 맞는 조건이었다. 서울만큼 집값도 비싸지 않았다. 오래 살다보면 재건축도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집값도 오르지 않겠냐는 남편의 의견이 있었지만 재건축 이야기도, 집값도 꿈적하지 않았다. 아주 먼 미래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미래의 이야기는 미라에겐 쓸모가 없었다. 미라에게는 오늘의 밥과 반찬, 아이, 한달 생활비가 중요했다.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때, 미라네 집값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남편은 약간 후회를 하는 듯 했다. 그러다 "그래도 여기서 아이 낳고 별 탈 없이 살고 있잖아, 그럼 된 거지"라고 위안을 했다. 


  미라는 남편과 8살 차이였다. 미라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고, 남편은 같은 회사 대리였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회사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회사가 낯설다기보다는 사회생활이 낯설었다. 그때 미라가 의지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미라의 고장난 컴퓨터를 고쳐주었고, 엑셀을 가르쳐주었으며, 종종 밥을 사주었다. 미라가 실수를 하면 괜찮다고, 다 해결될거라고 했고, 정말로 해결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은 그가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의 다정함도 좋았지만 미라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그가 직장인이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지 않는 그가 좋았다.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했다.


  미라의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집에 돈을 가져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라는 말은 미라의 집에서는 보기 힘든 말이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 어이없이, 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즉흥적으로 사업을 했고, 감정적으로 일을 했으며, 어이없이 사기를 당하곤 했다. 덕분에 미라의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해 닭발공장, 봉제 공장에서 일을 했다. 돈을 더 많이 준다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직업을 옮겼다. 미라에게도 공부를 하라고 재촉하기보다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라고 재촉했다. 미라에겐 동생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라는 엄마의 말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다 바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었다. 말로는 육아휴직이 안 되어서, 회사에 눈치보여서, 라는 변명을 했지만, 미라의 퇴사는 의도적이었다.


  미라는 돈을 버는 것에 지쳤었다. 아무리 저축을 해도 돈은 모이지 않았다. 돈 귀신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리라. “어머 돈이 모였네? 써야겠네?” 돈 귀신은 그렇게 말하며 쓸 곳을 마련해 놓았다. 아버지의 빚을 갚는다거나, 젊어서부터 고생한 엄마의 병원비를 써야 한다거나, 동생이 사고를 쳐서 합의금을 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미라는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라의 돈이 아니라면, 남편의 돈이라면, 친정에서 함부로 달라고 하지 못할테니,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엄마의 소원이었던 그 월급을 남편이 벌어다준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살림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미라에게는 따박따박 월급을 가져다 줄 남편감이 바로 옆에 있었다. 대리님이라 불렸던 남자. 지금은 자신의 남편. 그는 미라의 예상대로 성실하게 집으로 월급을 가져왔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오래될수록 성실한 월급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해결해주던 남자는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 현주언니는 그렇게 성실한 남편을 두고 무엇이 불만이냐고 물었다. 글쎄,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미라는 잘 몰랐다. 잘 모르는 것은 그냥 덮어두는 것이 나았다. 굳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평화롭게 유지해야 할 일상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둔 미라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결혼식 축의금을 한푼도 갖지 않고 모두 친정에 주었다. 친정엄마는 “하긴 내가 뿌린 경조사비가 얼마냐”라며 당연히 자기것인 양 가져갔다. 미라의 직장동료와 친구들이 보탠 축의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라는 그 금액이 얼마인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피곤했고, 좀 쉬고 싶었다. 친정으로부터.


  미라의 의도대로 친정에서 돈을 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줄었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미라는 남편 몰래 비자금으로 숨겨두었던 돈을 친정으로 보내곤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진짜, 정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결혼할 때 마련해두었던 비자금은 그렇게 야금야금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참는 걸 잘하는 미라도 가끔은 폭발하는 날이 있었다. 참을성이라는 그릇에 용량이 넘치는 날,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미라가 돈을 보낸 날이었다. 동생이 밤에 술을 먹고 걷다 넘어져 팔과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어떻게 넘어져서 팔하고 다리가 둘다 골절되냐고 잔소리 끝에, 미라는 마.지.막이라며 돈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 아파트 1층 현관 입구에는 새벽배송된 박스가 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저녁 찬거리가 들어있었다. 미라는 한숨을 한번 쉰 다음, 그것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은 “맛있겠다”라고 말하며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었다. 미라도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남편은 핸드폰에 자신의 눈을 고정시키고 입은 국그릇을 향해 있었다. 미라는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 힘들어.”

  이번엔 남편의 귀가 미라를 향했다.

  “응?”

  “힘들다고. 정말 힘들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어느새 미라는 울먹이고 있었다. 아이는 미라의 고함을 듣고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은 "애도 있는데"라며 우선 아이를 달랬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미라는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라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질거라고, 다 괜찮아질거라고. 그날 저녁, 남편은 오랜만에 설거지를 했다. 늘 잊던 음식물쓰레기도 잊지 않았다.

  “힘들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설거지를 끝낸 남편이 말했다.

  미라는 생각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주었을까? 힘들다고 말하면 시댁에 내려가 있으라고 말해주었을까? 힘들다고 말하면 쉬라고 해주었을까? 


  미라는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알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 참는 걸 더 잘할 수 있었다. 

  “힘들다.” 미라는 조용히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역시 힘들었다.

  “힘들다, 힘들다, 힘들다.”

  미라는 연습했다. 힘들다고 말하기를. 

  “엄마,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해.” 아이가 미라를 보고 말했다. 

  미라는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웃었다. 힘이 부족했다. 힘들다, 도와달라.


  미라는 다음날, 소고기를 샀다. 힘들다고 말하려면 힘이 필요할 것 같았다. 미라는 한번도 쉬지 않고 11층까지 올라갔다. 파란색 의자는 아이 하원때만 이용했다. 아이는 쉬어도 미라는 쉬지 않았다. 11층까지 올라가는 힘이, 앞으로는 울기 전에 자신을 돌볼 힘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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