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을 겨우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약을 먹고 하루 종일 쳐져 있던 것에 비하면 몹시 안 좋은 실적이다. 잠자는 걸 실적에 비유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울증과 잠의 상관관계는 높기 때문이다.
약을 그만 끊어야 하나,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하나… 이런 작은 고민에서 시작해, 요즘 아이의 공부와 연말에 필요한 돈과 남편의 사업 매출이 떨어지는 이유를 고민하다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더 고민하면 공황장애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상을 멈추고 일어났다.
새벽3시였다.
뭐라도 들으면 잠이 잘 오던 것이 생각나서 이어폰을 꼽고 전자책을 아무거나 눌렀다. 그런데 젠장… 이어폰 배터리가 방전이다. 하는 수 없이 조그맣게 스피커 폰을 해놓고 전자책을 들었는데, 이번엔 이것도 실패다. 명상 앱을 켰다. 잠자는 수면 명상을 켜고 실행하기를 눌렀더니 결제를 하란다. 작년엔가 한번 결제해서 구독했다가 해지한 것을 깜박했다. 다시 결제할까 싶었는데, 59,000원이 주저된다. 아이 학원비로 60만원은 선뜻 결제하면서 나를 위한 1년치 명상 앱 결제는 주저된다. 과연 이것이 아이 학원비만큼 효용성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팝업 아이콘을 하나 발견했다. 블랙프라이데이로 50% 할인이란다. 버튼을 클릭했더니 클릭이 안 된다. 제발… 새벽부터 누가 이 앱을 개발했는지, 개발자 욕을 하다가 그냥 핸드폰을 껐다.
새벽 4시였다.
일어나 앉아 이것저것 인터넷 검색을 하다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은 잠들기 싫은 것이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가 조금 잠들었다.
많은 꿈을 꾸었다.
누군가 그림을 그렸다. 노란색으로, 형광색으로, 자신의 색채를 자신감있게 그렸다. 그녀가 잠시 딴 짓을 하는 사이에 나는 그 그림에 손을 대고 싶었다. 뭐랄까, 그녀의 그림에는 무언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 공간을 채우고 싶었다. 노란색으로 칠을 하려는 찰나, 그녀가 째려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손대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눈치를 보고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 그림을 그렸다. 둥그런 달에 은하수를 그려 넣었다. 황홀할만큼 예뻤다. 대충 손으로 뚝딱 그렸는데,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 표현하지 못해 절망스러웠다.
나에겐 강박증이 있다. 완벽해지고 싶은 강박증.
잠도 완벽하게 자고 싶다.
잠들기 전에 화장실을 2~3번 가고, 또 간다. 중간에 소변이 마려워 깨기 싫기 때문이다.
집을 나설 때는 가스레인지 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20분 후면 자동으로 잠기는 자동잠금장치가 있는데도 그렇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는 꼭 소리가 날때까지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확인한다.
아이에게 무언가 확인 시킬때는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잔소리가 된다.
사춘기 아이는 이제 나의 강박증을 확인하며 튕겨버린다.
나는 남에게 비난받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말을 하면 나는 풀썩 쓰러진다.
그래, 해볼테면 해봐… 이런 배짱이 나에겐 없다.
그래서 눈치를 많이본다.
언제나 칭찬만 받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이런 기질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아마도 어릴때부터 비난을 많이 받고 자라서일수도 있다.
혹은 부모님으로 물려받은 성향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부모님도 강박증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네가 하는게 다 그 모양이지.
- 너네 집 유전자가 원래 그 모양이야.
- 네가 아빠를 닮아서 그렇게 미련해.
- 네 엄마를 닮아서 싸가지가 없구나.
부모님은 서로의 미운 점을 나에게 투영시켰다.
나는 뿌리가 흔들린채 자랐고, 어디엔가 뿌리를 박고 단단히 서 있는 나무이고 싶었다.
뿌리가 얕은 나무이다보니 비바람에 쉽게 흔들렸고, 쉽게 쓰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죽는 것도 사는 것만큼 두려웠다.
나의 강박증을 되돌아보건대…나는 부모에게도 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부모를 나는 원했다.
항상 따뜻한 말을 해주는 부모,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 돈이 많은 부모,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부모.
완벽한 틀을 갖추어놓고 그 틀안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결핍으로 느끼며 자랐다.
오십이라는 나이를 넘고 보니 그렇더라.
완벽한 생은 어디에도 없더라.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은 삶으로 가고 싶은 강박증은 버리지 못했고, 나를 때대로 괴롭히며, 작은 실수에도 나의 뿌리를 크게 흔들고 있다.
내가 다시금 우울증에 걸린 이유다.
약을 먹고 며칠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중이라…
오늘은 약을 먹지 않고 지내볼 참이다.
아니…
병원에 다시 가보는게 좋을까?
강박증과 비강박증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