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항우울제의 효과

by 이틀

어제 드디어 병원에 가서 약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받은 약은 졸로푸트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졸음이랄까.

항우울제의 부작용 중 하나가 기력이 없고, 멍해지면서 약간 졸음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이전에 복용했던 약은 푸록틴이다.

프리스틱도 잠시 복용했다가 안맞아서 다시 푸록틴으로 복용했다가 불면증이 심해져 이번에 다시 졸로푸트로 바꾸었다.


의사쌤이 말하길, 어떤 항우울제도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고.

2주 정도 지나야 효과를 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복용하고 지켜보라고 했다.


사실 푸록틴을 끊고 불면증이 너무 심해 트립토판 영양제를 먹었다. 이것도 사실 먹을때는 잠이 잘 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띵해서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다. AI에게 물어보니 항우울제와 같이 복용하면 안된다는 말도 있었다. 같이 복용하면 세로토닌 증후군이 생길수도 있다고. (불안, 떨림 등)


이 질문을 의사쌤에게 했더니 같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 용량이 작아서 괜찮다고. 고민했던거에 비하면 너무 쉽게 이야기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전문가의 말을 신뢰해야 하는데, 과연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위하는 걸까 하는 의심.


처방을 받고 집에 와서 졸로푸트에 대해 검색하니 푸록틴보다 반감기가 짧고, 불면에 대한 부작용은 덜하다고 했다. 강박증에도 더 좋다고 했다. 다만 입마름이 심해질 수 있다고. 2주 정도 지나면 그런 부작용은 서서히 없어진다고도 했다.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정말 이 약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의사는 제대로 알고 처방한 걸까? 나는 의사를 왜 믿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의심을 하고 있는 걸까?


최근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다. 푸록틴을 먹지 않고도 일주일동안 그다지 심한 감정기복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푸록틴의 효과일까? 아니면 문제가 일부 해결되었기 때문일까?


나에가 가장 무서운 건 돈 문제다.


돈으로 얽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마음이 조급해지며 온통 어두운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한다. 최근 여러 돈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고, 그로인해 우울증이 재발했다. 최근 그 중 하나가 해결되었고, 생각보다 가볍게 지나간 것도 있었다. 이것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했나 싶을 정도로 지나간 문제들이었다.


그럼 나의 상태가 좋아진 이유는 항우울제때문일까? 아니면 문제 해결때문일까?


결국 약을 먹어도 현실은 변하지 않으면 우울증은 잘 낫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면 우울증은 나을수도 있다.


어떤 문제를 직면함에 있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늘 궁금했다


직장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퇴사를 하면 우울증이 해결된다. 사업으로 어려워진 사람은 사업으로 성공하면 우울증이 해결된다. 빚이 있는 사람은 돈이 있으면 우울증이 해결된다.


그럼 약은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약은 보조제다.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약하면서도 강한 존재라,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지나고 나면 또 어느 순간에는 살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때도 있다. 가장 가벼우면서도 가장 무거운 존재다. 마음은 시간을 흐르며 다른 무게를 지닌다.


직장에서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에 퇴사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마음, 어려워진 사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문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마음, 빚이 산더미 같아도 오늘 당장 끼니를 해결하고 내일의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용기를 일으키는 마음. 용기를 일으키는 마음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때는 그저 조금 엎드려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음. 그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항우울제 아닐까.


약과 현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되었을때 우울증은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약만으로도 안 된다.


학원에 간다고 해서 모두 1등급을 받고, 모두 서울대를 가는 것은 아니다.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죽을만큼 노력해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 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다시 마음이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내 앞에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떠올리니 그렇다.


아직은 약을 더 복용해야 할 때인가보다.

오늘은 졸로푸트를 복용하고, 마음이 일어나는 때를 기다려야겠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3화우울증과 우울감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