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우울감은 같으면서 다르다.
예전에 상담받을때를 복기해보면, 우울감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인데,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그 감정의 진폭이 크다고 했다.
일반 사람은 작은 파동을 느끼는 반면, 우울증을 앓는 환자는 그 파동이 깊고 높다고.
깊고 높은 파동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예전에 회사 다닐때, 상담을 받는다고 했더니 동료가 자기도 우울하다고 했다.
내가 말해주었다.
우울한것과 우울증이 뭐가 다르냐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야.
동료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자살 충동.
처음부터 자살을 대차게 실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씩 자신의 몸을 가해하기 시작하다, 그것이 점점 더 과감해지고, 어느 날 내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파동이 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고이고, 사고가 날 확률이 정상인보다 큰 것이다.
어떤 큰 사건이 나에게 밀려올때, 내가 감당하기 힘든 어떤 순간이 나를 덮칠때, 이번 생이 너무 답답해서, 너무 지루해서, 미칠것 같을때 나는 손목을 긋는 상상을 종종 한다.
그렇다고 당장 손목을 긋지는 않는다.
그럴 정도로 과감한 성격은 되지 못한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손목을 자해 해 본 적이 있다.
시원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정말로 사고가 일어나게 될까봐.
이때는 내가 약을 먹어야겠군, 이라는 생각에 도달할때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때다.
약을 먹으면 일단 자살충동은 가라 앉는다.
손목을 긋는 상상도 가라앉는다.
나를 자해하고 싶은 충동도 가라 앉는다.
일단 뇌가 멍해지니까.
그러나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현실로 돌아오면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힘을 내서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이 올 때까지, 행운이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복기한다.
로맹가리, 슈테판 츠바이크,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많은 연예인들.
그들이 마주했던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중간에 생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내가 지금 죽는다면, 언젠간 다가올 나의 행복을, 나의 행운을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약의 효과, 상담의 효과는 여기까지다.
이후 시간을 버티는 것은 나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나는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는 살고 싶다는 말과 같다.
오늘도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 하루.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약을 바꿔야 하는데, 귀찮네.